'거식'과 '폭식'의 이유
흔히 '거식증'이라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은 체중 증가와 비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인해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거식)' 섭식 장애(eating disorder)의 일종이다. 음식을 거의 먹지 않거나 매우 극소량의 식사만 하고 체중이 급격히 감소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체중 감소'는 언뜻 들으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면에 잠재된 체중 증가에 대한 자가 인식 장애로 인해 생명의 위험이 초래되기도 한다. 음식 섭취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건강의 균형이 무너지는 탓에 거식증 환자의 사망률은 10%를 넘으며, 자존감 저하, 무력감, 우울증 등이 동반되어 아사(餓死)나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체증 증가에 대한 자가 인식 장애'란 충분히 날씬하고 건강한 보기 좋은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비만으로 여기거나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때문에 반복적으로 체증을 측정하고 거울 앞에서 강박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며 불만스러운 부분을 견디지 못해 과도한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식사를 거부하고 음식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기 때문에 저체중과 더불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가 고갈되고, 무력감에 시달리며 우울감이 함께 찾아온다. 예민해지고 작은 불편도 참아내지 못하게 되며 불면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외형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탓에 '신체 자존감(body esteem)'이 저하되고 타인 앞에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며 방어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대해 관계적으로 고립되고 사회활동이 위축된다.
거식증은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남성의 경우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무용수'나 '모델'처럼 몸매가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평가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거식증은 청소년기나 성인 초기에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집을 떠나 타지로 독립하거나 교육, 대학 진학 등을 목표로 부모의 곁을 떠나는 등 생활환경의 극적 변화가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거식증의 원인을 행동주의적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체중 증가, 뚱뚱한 몸매에 대한 과도한 공포라는 '혐오 자극'을 감소시키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 행동이 '강화'된다고 볼 수 있다. 인지주의적 측면에서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앞서 언급했던 '체중 증가에 대한 자가 인식 장애'와 같이 자신이 충분히 건강하고 보기 좋은 외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자신을 뚱뚱하다고 여기거나, 끊임없이 몸매와 체중을 확인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삶에 대한 통제감(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느낌, 내 주변에서 혹은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 정도)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의 신체와 식습관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방식으로 결여된 통제감을 충족하려는 시도로 분석되기도 한다.
거식증의 치료는 정신과 의사 + 임상심리전문가 + 영양사가 한 팀이 되어 이루어지는데, 영양부족으로 면역, 기력, 체력, 정신력 등 모든 건강지표가 저하되고 합병증 등 2차적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입원 치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양상태 회복과 더불어 신체 자존감의 회복이 중요하다. 신체상에 대한 왜곡과 불만감을 다루고, 신체상에 대한 둔감화, 비합리적 신념, 인지적 왜곡 등에 도전하는 기법이 적용된다. 자신이 가진 '몸매'에 대한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직면하고, 그 비합리적인 기준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하고 있는 '거식'이라는 행동이 스스로의 건강을 무너트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체중이 서서히 증가되면 칭찬, 격려 등 정서적 지지행위를 통해 섭식 행위를 강화하는 행동주의적 접근도 병행되어야 한다.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이 마른 몸매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확인하고, '뚱뚱한 사람은 무가치해, 뚱뚱해지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와 같은 역기능적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예컨대 '몸매=사람의 가치'와 같은 왜곡된 공식을 논박을 통해 교정하는 것이다.
거식증과 유사하지만 대비되는 섭식장애 유형으로 '폭식증(Bulimia)'이 있다. 폭식증은 일정 시간 동안 보통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분명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증상을 보이며, 폭식 증상이 나타나는 동안 섭식 행위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심리적 특징으로 예컨대 먹는 것을 도저히 스스로 멈출 수 없고, 그 양을 조절할 수도 없는 느낌을 받는다. 폭식이 일어난 후(폭식 삽화(episode) 발생) 스스로 구토를 유발하거나 이뇨제, 관장약 등 약물을 남용하고, 일시적인 금식 행위를 하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는 등 폭식에 대한 반복적이고 부적절한 '보상 행동'이 이루어지는데 체중 증가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 체중과 체형이 자기 평가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거식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거식증은 많은 경우 폭식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체 자존감은 '자존감(Self esteem)'에서 파생된 용어다. 자존감은 자신이 이미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며, 현재의 모습에서도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신체 자존감은 그 대상을 유기체적 인간(신체-사고-정서)에서 '신체'나 '체형'의 국지적 개념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거식'과 '폭식'은 낮은 신체 자존감에서 출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낮은 신체 자존감은 신체 각 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대단히 낮은 것으로, 자신의 외형이 뚱뚱하거나 볼품없고 무가치해서 사람들의 인정이나 호감을 얻을 수 없고, 극단적으로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말 것이라는 역기능적 가정이 뒤섞인 불편한 느낌이다. 이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응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 느낌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러한 가정이 초래할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
신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첫 번째 대응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외모나 몸매가 한 사람의 가치를 온전히 대변하지 않음을 알거나, 외형이 만족할 만큼 빼어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누군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접근에 자신감이 있고, 외형을 통한 호감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치로서 사람들과 관계 맺음 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두 번째 대응방식을 선택하더라도 극단으로 치우치거나 역기능적인 삶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사실 약간의 불안과 초조, 열등감은 긍정적 변화를 위한 개인의 노력을 촉진시키고 성과의 질을 향상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첫 번째 대응방식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렵다. 외형에 대한 자기 평가가 극단적으로 낮고, 그것이 불러일으킬 파장이 '재앙'에 가깝기 때문에 역기능적 사고의 주관적 결괏값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앙과 같은 상황을 '절대' 경험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진다. 따라서 자신을 그러한 상태에 두는 것은 불가능한 선택지가 되고, 다른 하나의 선택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절박'이 찾아오며, 두 번째 대응방식에 내몰린 사람은 이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극단적인 가정이 불러올 상황과 그 공포를 회피하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채택하는 방식도 마다하지 않는데, 그러한 노력이 결국 '거식'이나 '폭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결국, 거식이나 폭식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신체 자존감을 높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 작업은 과도하거나 왜곡된 신체나 외형에 대한 기준을 바로잡고, '완벽한 몸매'와 같은 지극히 이상화된 자아상의 비현실적인 면을 통찰이나 논박을 통해 자각해야 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결과, 예컨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체중 증가나 통통한 몸매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거나 그 연결고리가 매우 약할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더불어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음을 알려줄 수 있는 인정과 지지의 관계적, 사회적 조력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