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빗방울이 날아와 찰나의 탄흔을 남기고, 흐르는 빗물은 무심한 손길에 자취를 감춘다. 작은 캔 하나가 도로 한가운데서 이리저리 치이고 뒹군다. 뒷바퀴를 타고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입자들이 찢어진 호스처럼 분사되며 대지를 적신다. 경사진 노면으로 물길이 만들어지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동차 한 대가 물웅덩이를 지나갈 때마다 거친 물보라가 인도를 덮친다. 회전축에 물이 스며든 차에서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듯한 묘한 마찰음이 도드라진다.
어제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날씨는 입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온화하고 따뜻했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다는 섣부른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센 비바람과 서늘한 한기가 오늘 아침을 두드렸다. 나무는 앙상했고 인도는 낙엽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비에 젖은 낙엽은 밟히는 처지에서도 바스락거리며 뽐내던 가을의 마지막 존재감마저도 잃은 채 오그라들고 피골이 상접했으며 찢어지고 흩어져 목불인견이었다. 불과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
급변하는 날씨에 떨어지는 것은 기온과 낙엽뿐만은 아니다. 면역이 온전치 않은 아이들부터 어딘가 건강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고 칭얼대는 횟수가 늘어난다. 대다수의 아이 키우는 가정이 그렇듯 환절기는 가장 어리고 약한 아이 혹은 가장 활발하고 겁 없는 아이로부터 시작되고, 돌림병처럼 형, 누나, 동생에게 전달되며, 아이들이 모두 나을 때 즈음이면 그제야 긴장이 풀린 부모가 골골거리는 식이다. 한 차례의 질병 공세가 끝날 무렵이면 또다시 누군가가 누런 콧물을 훌쩍거리며 그렇게 또 아픈 한 생명을 챙기다 보면 어느덧 겨울의 끝이 다가와 있다.
겨울은 엄혹한 계절이기는 한가보다. 겨울의 복귀는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하지만 또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인생은 아닐까. 인생에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계절이 찾아온다. 다만 그 계절이 누군가에게는 사계절 중 하나일 뿐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겨울처럼 다가온다는 것.
찰나의 온기가 긴 여운을 남기고 짧고도 깊은 호흡이 물속의 안도를 선물하는 것처럼. 오늘이 영원한 겨울처럼 느껴지기 전에 핫팩 하나를 주머니에 챙겨두길. 멀어 보이기만 하던 겨울이 하룻밤 사이 성큼 다가온 오늘. 봄은 언제고 손에 잡히기 마련인데 짧은 겨울이 영원처럼 긴 것은 우리가 겨울의 시계만 주시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계절 속에서도 꽃피는 사랑과 일과 삶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이 얼어붙은 어깨와 마음을 녹인다.
삶이 허기지고 춥고 건조하면 감기도 겁 없이 덤벼든다.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따스하게 보살피면 좋겠다. 겨울을 버티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할 한 줌의 온기. 비난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재촉하기보다는 기다리고,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그의 의견을 경청하는 크고 작은 배려가 한 사람의 겨울을 밀어낼 봄이 된다. 추위에 떠는 이에게 필요한 건 따뜻하게 좀 하고 다니라는 잔소리보다는 얇은 외투, 목도리와 장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