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는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잠이 들고 또 다른 아이의 기침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고 고막을 두드린다. 먼 곳에서 안간힘을 쓰며 이 시간을 버텨내고 있을 아내를 바라보고, 닫힌 문 뒤에 숨어 혼자를 즐기는 사춘기 소녀를 그저 내버려 둔다. 나는 가끔 버겁다. 이 모든 것과 모든 삶이. 어째서 내려놓고 싶은지 한 꺼풀 포장된 속내를 애써 외면한 채 차갑게 빛나는 화면 앞에 앉는다. 불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차분한 벽의 음성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어떤' 날이었냐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 어떤 밤을 기억한다. 하나의 소리로 가득 찬 직사각형의 공간과 오직 하나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정지된 시간을 떠올린다. 오늘이 비록 수많은 '하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오늘은 그 흔한 정의로부터 벗어나 '영원'에 수렴할 때가 있다. 어떤 하루는 어제의 흔적을 풍화시키고 바라마지 않던 미래의 어떤 순간을 손 닿지 않을 곳으로 밀어낸다. 눈앞을 채운 현재가 과거와 미래를 지우고 어떤 밤에 서린 한기가 숨구멍을 모조리 얼어붙게 했던 날을 떠올릴 때마다 시간의 모진 손길이 삶을 꼬집고 과거의 재판장으로 나를 밀어 넣지만 몇몇의 작은 응원과 그 속에 담긴 용기가 마지막 남은 호흡을 붙들고 세상 속에서 거친 숨을 쉬라며 등을 떠민다.
늪에 빠진 채 삶이 눈보라처럼 무너져 내리던 날이 있었고 나는 긴 사투 끝에 '경계'라 부를만한 곳에 가까스로 걸터앉았다. 그러나 눈길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또 그곳을 향한다. 오랜 시간 굳어진 관성은 위험하고도 강력해서 그 자연스럽고 편안한 궤도로부터 벗어나려면 덜컹거리는 비탈길을 달릴 각오를 해야 하며 가진 힘을 한곳에 집중해도 부족하지만 변화에 대한 저항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동력을 끊고 현재에 안주할 것을 종용한다. 사람과 관계와 사건이 불러일으킨 가정 하나가 오래된 신념을 건드리고 등 뒤에서 나를 밀어버릴 때면 알아차릴 수 없는 짧은 순간에 이미 늪은 코앞이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아보지만 불안은 목젖 바로 아래서 나를 겨눈다.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의 끝에 기다리는 건 삶의 전복인지 아니면 기다렸던 목적지인지. 알려줄 수 없고, 알 수 없으며, 알고 싶지도 않다.
때때로 다시 늪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나를 상상한다. 은근히 그 순간을 기다리는 나를 본다. 내게 과연 다시 그곳을 빠져나올 용기나 의지가 남아있을까? 완벽한 포기의 순간은 그때서야 찾아올 것이다. 나는 어쩌면 모든 번뇌와 버팀을 종결지어 줄 어떤 계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쪽으로 향하는 이중 철로에서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있을까.
삶이 현재보다 한걸음 앞에 있는 건 특별한 오늘을 걷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밤'의 기억은 석양이 머물던 저녁의 그림자 끝에 늘 머물지만 나는 새로운 만남과 아침을 기다리며 과거의 인력에 저항한다. 좋은 일과 나쁜 일, 반가운 소식과 거북한 소식이 뒤섞여 나의 현실이 어지러이 채색될 때에도 더딘 손은 멈추지 않고 뒤섞인 글자의 퍼즐을 맞추며 현재를 정리한다. 복잡했던 상념은 다시금 들려오는 아이의 기침소리와 겨울비가 밤공기와 춤추는 소리, 오후의 우울을 달래주었던 야트막한 찬송가 소리, 그리고 한 사람의 편안한 미소에 밀려 자취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