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 세차장은 분주한 손길이 오간다. 더럽혀진 자동차 구석구석에 스팀을 쏘고, 찌든 때를 녹여낸 곳에 새로운 광택을 채운다. 비좁은 세차장 내부가 뽀얀 증기로 채워지고 청소하시는 분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들의 손길은 무던하고 부지런하며 급하지 않지만 어느덧 차는 새 옷을 입은 듯 반짝인다.
템포와 속도는 다르다. 자신에게 맞는 템포를 찾기 위해서는 내가 힘들이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는 속도를찾고 현재의 템포와 그 속도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라톤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출발부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본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앞서 나가는 기쁨에 속도를 내지만 이내 그는 지친다.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거리는 마라톤 선수가 아니면 5킬로에서 10킬로 내외. 마라톤은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팔다리의 움직임,적절한 보폭, 지면으로부터의 발바닥 높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양 팔을 크게 움직이기보다는 가급적 상체에 밀착시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와 저항을 줄이고 몸을 약간 사선으로 앞으로 숙여 중력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몸이 추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며 발을 바닥에 끌리지 않을 정도로 지면에 가깝게 유지한 채 앞으로만 밀어 운동에너지를 최대한 전방으로의 움직임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큼성큼 뛰는 것이 이득일 것 같지만 마라톤은 후반으로 갈수록 호흡이 가빠서라기 보다는 팔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에너지의 적절한 분배와 효율적 사용이 중요한 운동이다.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데 썩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템포를 속도와 맞추는 작업은 한순간의 쾌락이나 즐거움과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정직해서 쓰면 쓰는 만큼 닳고 녹이 슨다. 그저 소모품은 아니지만 준 소모품에 가깝다. 축구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찾아오는데 예를 들어 급격한 스프린트는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고 오래 뛰지 못한다. 전반 45분 동안 '판타지 스타'처럼 날아다녀도 후반 들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면 전진 패스를 받아내지 못해 공격의 날카로움은 저하되고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따라잡기도 벅찬 상태가 된다. 한 골을 넣을 순 있어도 두 골을 내리 주고 패할 수밖에 없다. 90분을 꾸준히 뛸 수 있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체력 안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간혹 템포와 속도를 착각하는 사람을 본다.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가 순간적으로 빠르다고 해서 전체적인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템포는 적절할 때가 가장 좋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편안해야 한다. 그 지점을 찾는 방법은 특별한 문제없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순간을 되짚어보면 된다.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려다 자칫 성급한 일처리가 되거나 중요한 부분을 놓치면 오히려 하던 일을 다시 해야 하거나 일의 진행과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흐트러진 작업을 바로잡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전체적인 진척 수준은 오히려 더뎌지고 만다. 템포가 자신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다. 속도는 장기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 순간의 스피드는 일시적으로 템포를 올리는 것으로확보할 수 있지만 숨차게 달린 후에는 숨 고르기에 적정시간을 배분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그것이 휴식이고 삶의 균형이며 요즘 많이 등장하는 '워라밸'에도 가장 부합하는 지혜다.
간혹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을 두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빨리빨리'가 성경구절처럼 자리 잡은 한국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런 일이 잦다. 언뜻 보기에 그들의 속도는 느리고 더디게 보일지 모르나 차분히 일의 진척을 살펴보면 그들의 일처리가 더 원만하고 빈틈없음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경향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급격히 친해지더니 금세 지치고 헤어지는 사람의 경우다. 일과 삶이 그렇듯 관계 맺음에도 적절한 속도가 중요하다. 활활 타오르는 촛불이 금세 꺼지듯 인간이 가진 대부분의 자원은 유한하며 일, 가족, 연애, 사랑, 관심, 애정, 열정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우리에게 경주마가 되어라 한다.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는 잘 벼려진 칼이 되어라 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언제나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몰아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다시 균형을 찾을 회복과 휴식의 시간 또한 필수적이다. 모난 마음을 부드럽게 다듬어주지 않으면 어루만지는 손길마저 생채기가 난다. 거칠어진 마음은 옆 사람을 상처 입고 지치게 하며 다가오는 이를 아프게 콕콕 찌른다. 여유 없는 마음이 순간을 전전긍긍으로 채우고 불안과 걱정이 주변을 맴돌아 삶이 답답해지는이유다.
템포와 속도가 서로 다른 것처럼, 여유는 느림이나 게으름과 동의어가 아니다. '빨리빨리'에 지치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일이 많고 바쁜 것과 '정신이 없는 것'은 다른 상태다. 내가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면 잠깐이라도 멈추고 현재 동시 진행 중인 일의 리스트를 작성해보면 좋다. 시간 순으로 급한 일을 나열하고 하나씩 가지치기하듯 명확하고 뒤탈 없이 해결해나가다 보면 힘들어 지치는 순간은 있어도 정신없이 어지러운 상태까지는 가지 않는다. 힘들고 지치는 것은 쉬어달라는 몸과 마음의 신호다. 정신없는 느낌은 혼잡하고 혼란스럽다는 신호다. 다른 신호에는 다른 해결 방식이 필요하다. 급히 가는 게 빨리 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편안한 템포를 찾고 그 시간을 차분히 쌓아나가다 보면 원하던 그곳에 어느덧 도달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