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는 이야기

말 그대로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문 소리에 돌아보니

바람 손님만 고개를 내민다.

오늘 하루도 두 발은

삶을 지탱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온 힘으로 나를 떠받치는 중이다.


아내는 평택역으로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서울에서 평택까지 잠깐 얼굴 보기 위해 기차 타고 오는 정성도 보통은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 간 틈을 타 밥 한 끼, 차 한잔 하러 오는 것이니. 10시쯤 도착해 1시쯤 다시 올라간다고 했다. 이미 한 번의 약속이 파투 났던 터라 미룰 수 없다며 아내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어젯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에 절은 얼굴이었지만 음색만큼이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시험문제를 아침까지 내서 보내주기로 했다며 투덜대면서도 친구를 만날 생각에 즐거운 모양이었다. 꽤 비싼 값을 치른(나름으로는) 에코백과 시장바구니의 중간쯤 되는 모양의 기묘한 줄무늬가 잔뜩 그려진 숄더백을 매고 함께 길을 나섰다. 곧 나는 오른쪽 길로, 아내는 왼쪽 길로 멀어졌다. 빠르게 몸이 자라나는 둘째 아이의 패딩점퍼도 하나 집어오겠다는 야무진 꿈과 함께.


첫째 아이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둘째 아이는 누나와 함께 등교하고 싶다며 기다려주기를 간청했지만 13살 사춘기 소녀는 동생보다는 친구가 우선이다. 몇 차례 큰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한 친구만 주야장천 만나는 것을 보면 첫째 아이도 인간관계가 너른 편은 아닌 듯싶다. 세 아이 모두 학교 가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다. 눈곱도 떼지 못한 채 옷부터 입고 소파에 앉아 멍을 시전 하다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한 명씩 현관문을 나선다. 가끔 잠도 안 깬 얼굴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짠하다.


어린 시절 나 또한 그랬다. 학교 늦을까 봐 일찍부터 일어나 눈 비비며 준비하고 등교시간이 한참 남은 시점에 이미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으면 더욱 좋았다. 선생님조차 출근하지 않은 시각에 홀로 책상에 앉아있던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다.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기댄 채 여유를 긁어모은 방석에 앉아있기보다 먼저 움직여서 목적지에 미리 도착해있는 편이 몸도 마음도 편했다. 누군가가 약속에 늦는 것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그곳에 늦게 도착하는 것은 싫었다. 폐를 끼치고 죄짓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아침 일상에서 같은 불안을 본다.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걸 지도. 아이들은 나보다는 더 편하게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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