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힘들면 마음도 함께 힘들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같은 공간, 늘 있던 장소가 감옥처럼 답답할 때다. 몸이 가뿐한 날은 공간이 나를 반기는 느낌이었다면 처지고 힘이 든 날은 공간이 나를 밀어내고 짓누른다. 친근했던 하루가 사투로 변하는 건 그 때문이다. 도망칠 수 없는 공간 속에서 나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가 된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오후의 햇살과 숲의 공기 같은 짧은 면회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스치듯 지나쳐버리는 단절된 세상을 본다. 손 닿지 않는 자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포기'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진다.
갇힌 마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글자와 낱말 하나하나가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볶아지는 콩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제멋대로 도망 다닌다. 저기 노란 차 한 대가 지나간다. '00 자동차 운전전문학원'이라고 쓰인 노란 승용차에는 '도로주행 연습'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운전자를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처음 경험한 실제 도로에서 엄청 긴장하고 있겠지? 옆에 앉은 강사도 잔뜩 신경을 쓰고 있을 거야. 언제든 보조석에 설치된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발을 올리고 노심초사하고 있겠지. 연습생은 그 나름대로 강사의 눈치를 엄청 보고 있을 거야. 어쩌면 그를 신경 쓰느라 주변의 다른 차 따윈 안중에도 없을지도 모르지. 긴장으로 시야는 좁아질 거고 강사의 다그침조차 들리지 않을 수도 있어. 옆으로는 누가 봐도 짜증이 묻은 움직임으로 스치듯 추월해가는 다른 차량들이 공포를 자극할 테고. 그러던 중에 앞의 차가 급작스럽게 가까워지는 느낌에 놀라 브레이크 페달을 꾸욱 밟는다는 게 액셀을 밟을 수도 있겠지. 혼비백산한 강사가 브레이크 페달을 대신 밟으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아당길 테고. 스키드 마크가 선명한 도로 한가운데서 두 사람은 잠시 멍한 채로 의식을 부여잡을 테고 사방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 소리가 두 사람의 멱살을 잡아끌고 현실의 운전대 앞에 다시 앉히겠지. 그래 봐야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점등되는지 아닌지를 살필 겨를도 없을 테지만.
앞서 간 다른 연습차량들은 문제없이 잘만 가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 자책도 될 거야. 그렇게 식은땀을 줄줄 흘리다 보면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도 잊어버리겠지. 강사가 지시한 대로 차선을 따라가느라 진땀을 빼다 보면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 채 출발한 곳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는 자신의 운전 적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질지도 몰라. 누구나 시작은 어렵다는 걸 처음에는 모르니까 말야.
삶은 그토록 모순덩어리였지. 알 수 있는 걸 알게 될 때 즈음이면 이미 그 지점을 한참 지나친 뒤였어. 뒤늦게 깨달았다고 속상해도 어쩔 수 없어. 인생은 첫사랑 같은 거야. 사랑이 처음이었고 그토록 아픈 줄 몰랐으니까 불나방처럼 뛰어들 수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첫사랑은 뜨겁고 고통스럽고 어리숙하고 애틋했고 그 끝은 늘 비극이었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첫사랑은 없어. 그건 '사랑'일 뿐 '첫사랑'은 아냐. '첫'이라는 한 글자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예전의 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마음의 도로주행을 한 차례 마친 나는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익숙한 음악과 늘 앉던 의자, 노트북, 수첩, 펜, 스마트폰, 리모컨, 그리고 요즘 늘 곁을 맴도는 마스크까지.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커피만은 식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짓누르던 느낌 또한 편안함으로 다시 치환되어 있었다. 온수를 다시 채운다. 따스함이 머그잔을 타고 손으로 전해진다. 오늘따라 시릴만치 맑은 하늘. 근 2주간 눈, 비, 구름에 가려졌던 하늘이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지만 짙은 구름 사이로 가끔 해가 비칠 때의 반가움은 희석된 느낌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때문일까. 아무리 좋은 자극도 반복적으로 제공되면 즐거움이나 반가움이 점차 줄어든다는.
나는 흔한 사람일까. 아니면 희소한 사람일까. 비싸고 어려운 사람은 사양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도매급으로 '아무나'가 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순백의 지면을 채워나가는 이유도 같은 갈증 때문일까. 어느 한 사람에게 특별할 수 있다면 세상 속에서 흔해지는 것은 아무렇지 않을 텐데. 짧은 마음의 여행이 선사한 청량감이 나를 숨 쉬게 한다. 잠깐 동안 영활한 움직임을 보였던 머리와 손의 움직임에 감사하며 또 하루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