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 - 13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안다는 건

by 작가 전우형

그들이 후의 거처를 알게 된 이상 수시로 들이닥칠 것이 뻔했다. 집 앞에서 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후는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

후는 떠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눈치였다.

"능력을 잃어버린 걸 알면 포기하지 않을까? 그들이 오빠를 쫓는 건 오빠가 가진 특별한 능력 때문이잖아. 이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단다. 부모 자식 관계는.'


명이 이모는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잠시 아까의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맞아'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곤 조금 창백한 얼굴로 후에게 다가갔다. 꺼내기 힘든 말을 내장부터 긁어내느라 모든 힘을 다 쏟은 표정이었다.

"후야. 가장 중요한 건 네 의사야. 부모님께 돌아가고 싶니?"

후는 대답 없이 아랫입술만 깨물었다.

"잊었니? 누나는 다 알아. 네가 원한다면 보내줄게. 이번 일이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후는 명이 이모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그림자처럼 바닥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함께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은 없어. 나는 너의 바람을 묻고 있는 거야."


부모와 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미워도 부모는 부모다. 그리움은 불에 타고 닳아 없어져도 지구처럼 태양 곁을 맴돈다. 한쪽만 따뜻하고 다른 한쪽은 그림자가 진다. 하지만.

"괜찮아. 그렇게 아픈 말,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너를 비난할 사람은 이곳에 없단다."

명이 이모는 후를 꼭 안아주었다.

"걱정하지 마. 누나가 도와줄게. 우리가 만났던 날처럼."


그녀의 불안이 들렸다. 그들이 아이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는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어른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잔인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세상에서 어른은 인간백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날 되찾기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겠지. 자식조차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나는 내 저주를 한 꺼풀 벗겨주었다. 누나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걷던 그 순간부터 세상은 조용하고 고요해졌다. 그날의 여름밤은 천국처럼 아름답고 따뜻했다. 누나와 연결되어있던 시간 동안 나의 삶은 참혹했던 세상과 한 걸음씩 멀어졌다.


그녀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크고 둔중한 메아리가 한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어둡고 음습한 골목 너머에서 파랗게 질린 공기들이 도망쳐 나오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타인의 마음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달려갔다. 귀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소곤댔다. 저 아이를 구해주라고. 저주로 여겼던 특별함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내가 이곳을 떠나는 게 맞아.


"이모, 후를 보내려고요? 그 끔찍한 집으로?"

"후가 원한 일이야."

"그래도..."

그녀는 창백하리만치 서글픈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후가 선택한 일이야."

'네가 바라는 일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안다는 건 아름답지만 슬픈 일이란다."


주거침입과도 같은 방문은 수 차례 이어졌다. 집 앞에는 보란 듯이 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못 보던 차량이었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외관이었다. 그 평범한 외관처럼 그들의 인상 또한 온화하고 평범했다. 여느 어른과 다르지 않은 정돈되고 잘 갈무리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껍데기는 그들을 설명하지 못했고, 한 사람의 해석을 거친 설명 또한 인간의 내면을 온전히 반영하기에는 부족했다. 직접적인 대면이 몇 차례 더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후는 결코 그 집에 다시 돌아가선 안됐다. 후를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살 여자아이의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 -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