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 - 24

조박사

by 작가 전우형

유토피아 행복 연구소는 2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20층 규모의 병원으로 진료 및 상담이 이루어진다. 다른 하나는 연구동으로 조박사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연구동은 다시 행복 극대화 연구소, 행복 추출 및 저장 연구소, 유토피아 가상현실 연구소로 구분된다. 조박사는 행복 극대화 연구소 소속으로 특수아동 연구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구동은 삼엄한 보안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으며 연구원들은 상주가 원칙이었다. 연구동 한쪽에는 연구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기숙사와 아파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기숙사 1개 동은 특수아동 연구부 소속이었는데 그 건물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거주하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조박사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영식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계약은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영식은 우유부단하고 욕구에 충실하며 욕심이 큰 유형이었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슬며시 압박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쉬운 군상 중 하나였다.


그가 라이터에 불을 켜자 담배 끝에서 뽀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떤 상대건 한차례 줄다리기는 피할 수 없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늘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공기를 한껏 빨아 당기자 피어오르던 연기가 일시적으로 줄어들며 끝이 빨갛게 타올랐다. 입 속이 어떤 부피감으로 차오르며 알싸한 쾌감이 폐부 깊은 곳까지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짜릿한 존재감이 내뱉는 숨을 따라 코와 입으로 밀려 나왔다. 그것들은 이내 피어오르던 연기와 뒤섞여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잠깐 사이에 차내는 담배 연기로 포화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는 쿨럭이며 격한 기침을 해댔다. 잦아들지 않는 잔기침을 하던 그는 다급한 손길로 담뱃불을 눌러 끄고 창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며 탁한 연기를 밖으로 밀어냈다. 몇 차례 가쁜 숨을 내쉬자 파랗게 질렸던 그의 혈색이 돌아왔다. 담배는 끊은 지 오래였다. 다만 그는 중요한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담배를 꺼내 무는 습관이 있었다. 일탈은 잠깐이면 충분했다.


게이트에 출입증을 내보인 그는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댔다. 출입증을 인식하자 연구동 문이 스르륵 열렸다. 각 동마다 배치된 보안요원이 그를 보며 가볍게 목례했다. 연구소를 드나드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고 변동이 적었다. 조박사는 20년 넘게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 중 하나였다. 보안요원은 대략 5년 주기로 바뀌었고 지금 목례를 건네는 30대 초반의 보안요원은 그가 4번째로 맞이한 보안요원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한차례 열렸다 닫혔고 중력이 두 번 변했다. 한 번은 무겁게, 한 번은 가볍게.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는 익숙하고도 조용한 복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명패가 붙어있다.


[연구부장 조절규]


센서가 출입증을 인식하자 철컥하고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미세하게 열렸다. 조박사는 키폰을 눌러 비서실을 호출했다. 사무적이면서도 사근사근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비서실입니다."

"조 부장입니다. 소장님 자리에 계십니까?"

"손님이 한 분 계십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오래 걸리실 것 같진 않습니다. 연락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조박사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까와 달리 조박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남아있지 않았다. 미소는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소모품이었다. '박영식이라고 했던가...?' 그 소식을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올랐다.


'명이 같은 아이가 또 있었다니.'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격이었다. 조박사는 사실 확인을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일반 연구원 신분이었고 연구소 소속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조박사는 자신을 보던 그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진짜였다.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눈빛. 속마음까지 깨끗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 위에 겹겹이 가면을 쓴다. 그 모든 가면이 소용없는 부류가 있었다. 바로 선명과 같은 부류였다.


영식을 찾아가 적극적으로 협상을 벌이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조박사는 기다리는 걸 선택했다. 닳고 닳아 제 발로 찾아오는 편이 협상 테이블에서 훨씬 유리한 상대였다. 어차피 영식의 가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선명과 같은 자질을 가진 아이는 시한폭탄과 같고, 그런 아이를 다루는 것은 일반인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영식처럼 현실에 충실한 캐릭터는 가장 상성이 나빴다. 당시 조박사에게는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다. 연구소를 탈출한 선명을 되찾는 일이었다. 선명이 연구소를 탈출한 지 5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녀의 탈출에는 조박사의 실책이 컸다. 그녀를 다시 연구소로 데려다 놓지 못하면 그간 연구소에서 쌓아온 입지도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 뻔했다.


한낱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다니, 자네 답지 않은 일이었어. 당시 소장의 평가였다. 연구소에 거주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선명은 특히 위험하고 중요한 아이였다. 이미 수 차례 탈출 시도 이력이 있었고,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호감을 얻기도, 함정에 빠트리기도 쉬웠다. 실제로 거의 성공할 뻔했던 이전의 탈출 사건 역시 연구소 내부 인물의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사건 후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를 두둔했다. 심지어는 그녀를 붙잡아두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며 감싸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권침해'라니, 연구소 직원들이 입에 담기에 너무 정직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중 '인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있었던가. 그 후로 선명을 담당하게 된 것이 바로 조박사였다. 앞서 발생한 사례들에 대한 연구도 마쳤고, 인간의 심리에 누구보다 능통한 그였기에 자신 있게 나섰지만 결국 가장 확실히 선명의 탈출을 도운 내부자가 되고 말았다. 당시 37세였던 조박사가 22살의 선명을 사랑하게 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나 형제, 부모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던 슬픔과 절망을 유일하게 이해해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선명에게 청혼도 했다. 그는 선명을 탈출시킨 후 다시 만나 함께 살 작정이었던 것이다.


우두커니 취조실 철제 책상 앞에 앉은 채 고개를 떨군 조박사에게 소장은 물었다.

"그녀가 정말 자네와 함께 살겠다고 했나?"

조박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봐도 그녀의 대답은 없었다. 선명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조박사 혼자만의 욕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박사는 분명 그녀가 자신과 함께 살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소장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그게 그녀의 가장 무서운 점이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았나? 쯧...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조박사는 씹어 뱉듯이 말했다.

"제가...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모든 걸 되돌려놓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지난 5년 동안 그녀의 소재는 확인을 마친 뒤였다. 다만 그녀가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해둔 상태였기에 강제로는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그즈음 영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마침 그의 집과 선명의 거주지는 같은 동네였다. 선명을 대체할 자원을 찾았다는 소식에 소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아이가 명이를 만날 줄이야.'

실책이었다. 선명의 손에 들어간 이상 그 아이를 연구소에 입소시킬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연구소의 실체를 훤히 알고 있는 선명이 그 아이를 보내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명이에게서 그 아이를 떨어트려놓을 수 있을까? 그것이 지난 7년간 조박사가 해온 최대 고민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고민과 노력의 결과를 소장이 흡족해할 소식과 함께 정식으로 보고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키폰이 울렸다.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님 일정 가능하십니다. 바로 내려오시겠어요?"

"그러죠."

그는 방을 나섰고, 철컥하고 문이 닫혔다. 다시 빈 방은 혼자가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