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나를 때렸다. 그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고통은 마비되듯 사그라들었다. 사라지지 않은 채 나의 세상에서만 모습을 감추는 것들이 있다. 기억에 없는 장소가 낯이 익고 해묵은 추억 하나가 긴 시간의 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날이면 후회가 온몸을 적시고 미련이 방울방울 솟아오른다.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사라졌다. 바람이 흐르고 구름이 불었다. 멈춘 시간 속에서 홀로 걸었다. 꿈이 현실을 맴돌고 내저은 손이 그림을 흩었다. 같은 건반을 두드려도 소리는 매일이 다르다. 조율되지 못한 욕망과 의무가 불협화음을 만들고 장조와 단조를 뒤섞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진심일 수 없었다. 방향을 구분할 수 없고 입구와 출구가 제멋대로 뒤틀린 세상에서는 1층을 눌러도 20층이며 문을 열고 나서도 여전히 집 안이다. 그러니 돌아간다고 해도 그곳이 원래 내가 있던 곳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돌아간다는 것은 현재와의 이별이며 미완의 행처를 향한다는 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불안정한 미래를 껴안는 것과 같다. 내게 존재하던 특이점이 사라졌을 때 그들에게 나의 잔여가치는 얼마일까? 그들이 뒤쫓았던 것은 나였을까, 아니면 내가 가진 능력이었을까? 그들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이 없어진 나는 그들에게 무엇일까?
본디 사랑받지 못하던 아이는 모든 것이 불안의 필터를 거친다. 부모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아이는 그들에게 사랑받을 자신이 없다. 사랑에 자격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내가 뒤쫓아온 부모에게 돌아가겠다는 결심이 진심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건 아니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 '진심'이라는 명판을 어느 문에 붙이건 사람들은 진위를 구분하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게 나의 진심이라고 믿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다. 받는 쪽은 불필요한 죄책에 빠질 필요가 없고 주는 쪽은 구태여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방향이 결정되어 있다면. 진정 그렇다면.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소용없는 것이다.
드러나기 전에는 진실의 무게를 모른다. 마음을 갈무리해도 끝은 삐죽 튀어나와있다. 언젠가 꺼내볼 그 순간을 위해, 숨은 진심을 알아볼 그 누군가를 위해 단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딘가에 남는다. 이상하게도 숨기고 싶은 마음일수록 누군가가 알아차려주길 원한다. 그리고 진심을 들킨 날이면 덜컥 겁이 나면서도 묘한 기대감과 반가움에 휩싸인다. 숨기고픈 마음에는 이유가 없다. 하지만 모래 속에 파묻힌 그 이유가, 우연히 드러난 그 심정의 모서리가 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나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불안이 누군가의 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애타게 찾아왔던 그 누군가가 아닐까? 항상 억누르며 조심스레 내쉬어왔던 숨을 풀어둔 채 펑펑 울 수 있는 가슴을 빌려주지 않을까? 그런 흥분을 애써 누르며 그를 부정하고 밀어내면서도 다가와주길 원한다. 거센 눈보라를 뚫고 숨은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길 원하고, 한참을 열어주지 않아도 문 앞에 서있길 원한다. 머리와 양 어깨에 쌓인 눈의 무게만큼 차가워진 양 볼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고 소리칠 때까지 기다리길 원한다. 그런 사랑이 쉬울 리 없다.
'기댈 곳'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차갑고 시린 언어다. 꿈에서 본 후의 잔상이 그림자처럼 남아 주변을 맴돌고 내딛는 걸음마다 나를 뒤쫓는다.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은 절실하고도 냉혹하다. 기댈 곳에 대한 욕구가 타인에 대한 증오에 불을 붙이고 이기심과 간절함 사이에 존재할 어떤 감정을 슬그머니 전면에 내세운다. 후를 잃고 싶지 않아. 어른들은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그들은 벌 받아도 돼. 아이는 어른을 벌줄 수 없지.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후가 돌아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의 눈빛이 내 마음에 글씨를 써. 그 짧은 문장이 삼킨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해. 후가 원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후를 잃지 않기 위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태어난 순간부터 그를 고통에 빠뜨렸던 그들이 다시 후를 데려가려 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이곳을 다시 후를 괴롭힐 수 없게 할 수 있을까. 다시 나타나지 못하게 꺾을 수 있을까.. 칼날처럼 벼려진 마음이 벨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부서져라 문을 두드리는 성급하고 거친 두 남녀를 겨누고, 열린 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실내를 비추기도 전에 그들의 그림자 속으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