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안에서 한 남자가 운전대를 잡은 채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고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춘 곳에 길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남자는 무심히 핸들을 조작해 그 방향을 향한다.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고 돌아가려면 두 시간은 더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이 길을 택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산길에 접어든 지 3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대의 차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도로는 한적했다. 하지만 사람이 찾지 않는 길은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요즘같이 4차선, 8차선 도로가 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는 시대에 이처럼 굽이굽이 커브진 길이 여태 남아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깎아지를듯한 절벽이 도로 바로 옆에 붙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음에도 그 흔한 가드레일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이 길은 중앙선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폭이 좁고 노후가 심해서 자칫하면 마주 보는 자동차와 충돌해 수십 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런 길을 이삼십 분도 아니고 3시간 넘도록 달리고 있으니 이제는 집중력도 떨어졌을 뿐 아니라 속이 다 울렁거리고 눈을 뜨기 힘들 만큼 지쳐서 그저 아무 곳이나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졸음 쉼터는커녕 갓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상이라도 온 걸까? 남자는 문득 헤드라이트를 끄고 밤하늘을 바라보고픈 감상에 사로잡힌다. 굳이 관심을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올 만큼 밤하늘은 별천지였다. 그 은하수의 바다에 빠져 인간사 곳곳에 쥐덫처럼 설치되어있는 모든 쓸모없는 목표나 목적 따위를 씻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구불구불한 산길을 불빛에 의존하지 않고 무사히 지나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그 길 한가운데 라이트도 없이 차를 세워두고 별을 보다가는 밤사이 눈먼 차에 치어 죽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져 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을 써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기적은 쉽게 찾아와도, 너무 찾아오지 않아도 문제였다. 마치 승원이에게 평범하지 않은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그날처럼. 그날 이후로 그리 살갑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부관계나 가정이 파탄날 정도로 문제가 있지도 않았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서로가 은근히 아이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무언가를 도모하려 한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물밑으로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독차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급격히 소원해졌다. 하지만 승원이의 마음을 얻기는커녕 마주치기만 해도 사색이 되어 구석으로 숨어버리는 통에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아이가 5살 나이에 집을 뛰쳐나간 뒤, 두 사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탓하며 싸움을 시작했고 갈등은 법정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재판 과정에서 서로가 얼마나 아이에게 해로운 부모였는지 증명하느라 내밀한 가정사까지 스스로 드러내는 폭로전이 벌어졌다. 결국 남자는 아이의 양육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아내를 잃은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백안시되고 인간 이하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승원이만 가질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감내할 수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이를 되찾는데 7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승원이를 찾은 날을 떠올리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지 못했다.
'이름이 후라고? 멀쩡한 이름 놔두고 누구 맘대로, 흥!'
자신들을 속이려고 한 것도 모자라 아이를 감추고 내어주려 하지 않았던 그 여자를 도무지 가만두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는 그 여자를 처음 본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든 내막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분명 그녀는 승원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승원이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자신들을 대하던 그때와는완연히 달라져있었다. 자신의 목적과 생각을 이미 샅샅이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승원이의 신임마저 받고 있는 그녀에게서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여자아이가 어이없는 짓만 벌이지 않았다면 어쩌면 정말 어려웠을 수도 있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대체 그 아이는 왜 칼을 거머쥐고 달려들었던 걸까? 무슨 원한이 있었길래?'
생각할수록 복잡한 실타래가 더욱 꼬이는 것 같았다.
그는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왼쪽 가슴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그러다 조금 거칠어진 손길로 기어노브 앞의 수납공간을 헤집는다. 수북한 삼각김밥 껍질이 가장 먼저 그의 손에 닿고, 일회용 커피잔까지 걸리적거린다. 남자는 여전히 무언가를 신경질적으로 찾고 있지만 목적 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커피잔이 엎어져 그의 바지 한쪽을 축축하게 적신다.
"뭐야, 남아있었나? 젠장!"
허겁지겁 커피잔을 치우며 바지를 털어내려는 찰나 묵직한 충격이 차체를 후려친다. 곧이어 무언가를 밟은 듯 한차례 차량이 심하게 덜컹거리고 반사적으로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눌러 밟는 남자. 선명한 스키드 마크를 남기고 가까스로 도로 끝에 멈춰 선 차량. 보닛 앞쪽이 살짝 들린 것이 운전석에서도 보이고 헤드라이트 한쪽이 눈이 먼 것처럼 어두침침하다. 충돌의 여파로 한껏 숙여진 상체와 머리를 쉽게 들지 못하는 남자.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다. 스티어링 휠을 거머쥔 두 손에 잔잔한 떨림이 맴돈다. 차량의 진동과 분명히 구분되는 그 떨림은 불길한 예측과 공명하며 더욱 증폭된다. 사색이 된 낯빛으로 험한 욕을 내뱉으며 거칠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남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5미터쯤 뒤에 쓰러져 있는 검은 실루엣 하나. 하지만 남자의 눈빛에 머물던 긴장의 채도가 서서히 옅어지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두운 밤길 한가운데에서 불그스름하고 희미한 미등에 의지해 보기에도 일단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다. 풀숲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산짐승 중 하나가 차에 치인 모양이었다.
'하긴, 어디서 뭐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곳이긴 하지.'
남자는 트렁크를 열고 코팅된 장갑을 꺼내 착용한 뒤 끙끙거리며 동물의 사체를 도로 밖으로 던져버린다. 한참을 굴러 떨어진 동물의 사체는 어둠 속에서도 구분될 만큼 뽀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거대하고 까만 아가리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다시 출발한 남자는 내비게이션을 확인한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15km. 멀지 않은 거리지만 굴곡이 심한 산길이라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푸념이 나온다.
"연구소를 왜 이런 외진 곳에 지었담. 이런 데서 무슨 연구를 한다고."
남자는 혀를 끌끌 찬다.
"하긴, 특이한 사람들 모아서 무슨 떳떳한 연구를 한다고 버젓이 시내에서 할 수 있겠어. 남몰래 뒤처리할 일도 많을 텐데. 그나저나..."
남자는 명함을 살펴본다.
"유토피아 행복 연구소라... 이름 참 거창하긴. 행복은 뭐고 유토피아는 또 뭐야. 어리숙한 사람들 현혹해서 돈 뜯어낼 때나 쓰는 말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