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는 선명의 옆에 있을 때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얼어붙었던 혈색이 찬물 설거지가 끝난 후 핫팩을 거머쥔 손처럼 따뜻한 분홍으로 변했고 창백하던 세상의 언어 속에서도 차분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어 보였다. 겁에 질린 눈과 귀와 마음이 겨울 저녁 고된 일을 마치고 따뜻한 난로 앞에 선 것처럼 오그렸던 어깨를 펴고 팔을 쭉 뻗었으며 그 끝은 선명을 향해 있었다. 소명은 후가 명이 이모를 바라보는 눈빛이 좋았다. 후의 그 눈빛이 탐났다. 그리고 후의 그 따사로운 눈빛이 언젠가 자신을 향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후가 고개를 돌려 소명을 향할 때 그의 눈빛은 사랑과 동경의 그것에서 안타까움과 동정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소명은 그것이 못내 서운했다.
소명은 자신에게도 햇살 같은 사랑이 비추었으면 했다. 있는 듯 없는듯한 달빛보다는 존재감의 바다에 빠진 듯 뜨겁고 격렬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비추는 시간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바뀌고 계절이 달라지며 삶의 온도마저 달라질 만큼 사라진 순간의 허전함이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애착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첫사랑은 종종 과녁을 벗어나고 만다. 소명은 자신이 후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음에 섣불리 절망했다. 언제까지나 후의 햇살은 명이 이모뿐이라고 스스로 단정 지었다. 절망을 은행에서 끌어다 쓰는 방식은 버림받은 이의 독특한 생각 방식이기도 했다. 간곡한 절망의 메아리 속에서 소명은 몸이 달아오르고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질 만큼 질투가 치솟곤 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분명 후가 그녀를 바라볼 때와 같을 거야.' 증거도 없는 확신이 본능과 같은 질투 속에서 자꾸만 그녀를 부추겼다.
소명은 후의 그 눈빛이 아이라면 자연히 누려야 했던 어떤 시기를 통째로 건너뛴 탓에 생겨난 결핍의 소산임을 몰랐다. 타인의 여과되지 못한 악의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온 한 어린 남자가 있었다. 여전히 모든 것이 지독하게도 서툰 채로 빈 들판에서 홀로 바람을 견디고 있던 그에게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며 기댈만한 존재가 생겼을 때의 감정을 어느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겨우 8살 여자아이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명의 마음에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상황이 생중계되어도, 그 사소한 착각과 질투마저도 그저 두 사람에게는 귀여운 소녀의 어깃장일 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일 뿐이었다. 애써 바로잡을 필요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런 마음이나마 자유롭게 품을 수 있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반가움마저 느낄 만큼.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두 사람마저도 읽어낼 수 없었던 미지의 언어는 지금까지 한 번도 햇살이 도달하지 못한 소명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영원한 그늘이었다. 소명처럼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달리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해도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가 모호하고, 원래부터 아무것도 지켜낼 필요가 없었던 터라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것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질 각오가 늘 심장 한 구석에 비수처럼 박혀있다. 비수를 뽑는 순간 분수처럼 쏟아질 피로 인해 생이 현재의 시점에서 사정없이 끊어질 것임을 알든 모르든, 스스럼없이 그것을 뽑아 던질 만용이 마치 당연한 용기처럼 잠재되어 있다는 것. 그 카테고리 안에는 만났던 모든 이로부터 별 볼 일 없다고 치부되어 온 탓에 스스로마저 정말 무용하다고 믿어버리게 된 목숨이나 꿈, 수명 등 인생의 생필품 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후는 분명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리고 명이 이모도.' 소명은 늘 발가벗겨진 채 그들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점을 내색하지 않았다. 소명은 그들과의 배려 깊은 대화 속에서 일반인과 지내는 것 이상의 어떤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소명은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겼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그들의 속내가 타이핑 치듯 출력되어 눈앞에 맴돈다는 것이 일반적인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날 세워 달려드는지 훗날 선명이 소명에게 대략의 설명을 해주던 후가 집을 떠난 지 며칠 지난 어떤 날 소명은 비로소 그 두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아꼈고 신경 썼는지 깨달았다. 뻔히 보이는 속내를 모른척하는 일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고, 어설프고 모난 마음을 바로잡아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사로운 대화나 관계의 기술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뒤틀린 마음과 위선이 뒤섞인 24시간 속에서 그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과 '가족'이라는 고결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이었다. 소명을 바라보던 후의 눈빛에는 그런 안타까움이 묻어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후는 떠났지만 소명의 곁에는 후의 그림자가 공기처럼 남았다. 12살의 후는 소명과 처음 만났던 10살과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보호자로서의 책임감, 오빠가 동생을 아끼는 마음, 그리고 어리다고만은 볼 수 없는 묘한 그리움이 혼합된 감정이 후가 소명을 바라보는 마음에 스몄고, 고작 2살 차이임에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숙했던 후는 소명과 함께한 2년 사이 완연한 어른으로 자라나 있었다. 소명은 그의 변화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급격한 변화가 그 나이대 아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비정상적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소명의 나이에서는 알 수 없는 몇 세대 위쪽의 지식이었다. 소명은 그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후의 든든함에 행복할 뿐이었다.
후는 소명의 하루가 따뜻하길 원했다. 그녀가 자신을 만난 이후로 상처 받지 않길 원했고 당황하고 겁에 질려 넘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토록 애쓰던 시간들이 후를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들어버렸다.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은 겨울 폭설과 같아서 치울 새도 없이 쌓이고 또 쌓인 눈처럼 지나온 시간을 송두리째 덮어버린다.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느 방향을 봐도 하얀 눈뿐이다. 그 눈부신 방향감각의 상실 속에 쌓인 시간을 뽀득뽀득 밟으며 흔적을 남겨보지만 머잖아 녹아 없어질 눈처럼 시간의 흔적 또한 소멸되고 만다. 시간의 껍질 속에는 아직 어리디 어린 그림자가 남아 있다. 눈처럼 녹아버린 어른의 테두리 속에서 어린 그림자는 홀로 오들오들 떨다 잠이 든다.
후는 선명에게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선명은 후를 이해할 유일한 사람이었고, 후가 자신의 상처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하고 특별한 사람이었다. 망가진 후의 심장을 고쳐준 사람도 선명이었고 후가 처음으로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었던 사람도 선명이었다. 그런 후에게 소명이 나타났을 때 후는 새로운 감정이 그저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여겼다. 후는 소명이 자신에게 기댈 수 있길 바랐다. 그것이 후가 결국 소명의 곁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말았다.
후는 소명이 벌인 일이 자신에 대한 간절함 때문임을 알았다. 과거의 부재에 짓눌리듯 살아온 소명에게 미래마저 사라지게 할 순 없었다. 후는 자신이 여전히 부모에게 꽤나 가치 있는 소유물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책정된 쓰임새와 가치가 가져다 줄 부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이토록 애달프게 찾을 이유도 없었다. 그들이 가진 사랑의 무게야 5분 햇살에도 녹아 없어질 눈송이 한 톨에 불과했으니까. 후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믿고 싶었다. 그 조악한 합리의 천막이 뒤이을 후회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리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