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나는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을까?
아... 오늘은 정말로 미치겠다. 가끔 오늘처럼 극점을 찍는 날이 있다. 토해보면 나아질까? 몸속의 내장들이 나를 온몸으로 밀어내고 있는 느낌이다. 목구멍 끝에서 신물이 나오고 머리는 쇠뭉치로 맞은 것처럼 멍하다.
어제의 활기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차에 누워 잠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달아나기는커녕 더 공격적으로 눈꺼풀을 짓누른다. 사실 나는 지금 무엇이 답답한 것일까? 고질병적 불안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내려놓는다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인 걸까?
미친 듯이 쓰다 보면 풀릴 줄 알았던 갈증은 오히려 온몸의 숨구멍을 더 틀어막고. 휴식을 원하는 것인지, 더 달리기를 원하는 것인지 갈증의 근원은 더 알 수 없게 된다. 화는 몸의 피로에서 비롯되나 보다. 몸이 힘들면 세상도 짜증 나고 정신마저 피폐해진다. 달리기. 그래 달려야 한다. 에너지가 없어서 힘든 건지, 에너지가 정체되어서 힘든 건지 오늘은 결판을 내어야겠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죽지만, 고통 속에 죽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한바탕 토해내면 내재되어 있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을까? 끝없는 웅성거림을 멈춰줄까? 걱정인가 슬픔인가. 외로움인가 분노인가. 사랑인가 증오인가. 또각거리는 마우스 소리에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귀가 머는 것일까?
갇혀버린 기분. 자유는 언제나 목마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정도는 힘든 것이 아냐. 그래. 나는 지금 나조차도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못하고 있다.
쓰는 것은 참으로 미묘하다. 이 와중에도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생각은 숙명이고 고민은 일상이다. 나에 대해 끝없는 불성실과 부지혜를 느낀다. 자책은 덤이다. 사랑과 증오, 신뢰와 불신,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나와 타인. 경계가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애매한 그림자들이 뒤섞인 좁은 공간 속에 끼인 채 내면의 자아는 소리친다. 살려달라는 비통한 울부짖음은 마음의 벽을 뚫지 못하고 골방에 메아리친다. 바깥의 누군가 들어줬으면, 알아줬으면 하는 외침은 바람과는 달리 오직 나에게만 들린다. 아니, 이 처절한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이 답답한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왜 끓어넘칠 듯한 분노가 치미는가? 이 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글씨는 점차 난폭해지지만 마음속은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래. 파도는 멎고 수면은 평지를 이룬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물속 깊은 곳에는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다지. 깊숙한 곳. 그 동굴의 끝에는 어떤 아이가 울고 있을까?
마음속 깊이 눈물을 쏟아내는 불안에 떠는 나. 결국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위로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매일이 두렵고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기에. 나는 왜 벽을 부수려 하는가? 좁은 공간에서나마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내오지 않았던가?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 선택해오지 않았던가?
고민이 구름을 모으고 빗방울은 마음을 적신다. 이 흐느낌은 누구의 것인가? 슬픔은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가?
마음의 위안이 필요한 나는 그냥 쓴다. 미친 듯이 써 내려간다. 쓰다 보면 누가 그린 것인지 모를 이상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감정의 홍수 속에 손은 감정이 흐르는 통로가 된다.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글이 써지지만 누가 쓴 건지 알 수 없다. 생각이 감정을 폭발시키고 주체되지 않는 떨림에 나는 신음한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답답함은 자유를 원한다는 증거. 나는 끊임없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미칠듯한 갈증의 이유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언제쯤 나는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