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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쉬는 것

휴식은 쉬고 있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으로부터

by 작가 전우형

휴식, 잠시 쉬어가는 것.


쉬고 있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다. 멍하게 있는 것이 시간낭비인 것처럼 여겨지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어쩌다 쉬는 동안에도 휴식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마음이 어딘가 불편하다.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에 빠지기도 하며,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또 바쁘게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잠깐 쉰다고 생각했을 때마저 자잘한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서치 하거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확인하는 식이다. 만성적으로 바쁘게 사는 것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은 ‘휴식 불능증’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일과 휴식에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휴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반복한다. 이 시간 동안 우리의 뇌는 입력되는 정보를 그때그때 처리하기에 바쁘다. 이것은 마치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이처럼 급한일들 위주로 처리하다 보면 처리된 일들은 적절히 정리되지 못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뒤죽박죽이 되어 어떤 업무가 언제 처리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고, 각각의 정보들은 단편적인 정보 이상의 가치 있는 정보나 지적 자산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사장된다.


한동안 일들이 바쁘게만 이루어졌다면 은행에서 영업시간이 끝난 후 자료들을 정산하듯이, 입력되고 처리된 정보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이 바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는 시간에 이루어진다. 즉, 휴식시간은 우리의 무의식으로 하여금 정보를 정리할 수 있도록 여유시간을 배정해주는 것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수많은 생각에 빠지고, 감정을 느낀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들은 대부분 잠깐 우리의 뇌를 거치고 사라지지만, 우리의 뇌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일부 정보들은 버리지 않고 남겨 둔다. 이 정보들이 바로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자료들이다.


기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집어넣는 것(이런 것을 '학습'이라고 부른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은 여러 가지 격렬한 감정 변화를 유발하고, 이러한 감정들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와 함께 저장된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에 남아 있는 정보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원하지 않는 기억들이 때때로 끔찍한 상황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너무나 극심해서 일시 지간 모든 기능들을 마비시킬 정도가 되면 그것이 곧 ‘트라우마’가 된다.


하루 동안 틈틈이 휴식을 갖는 것과 더불어 매일 저녁 시간이 되면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는 꼭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정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저 잠시 멈추고 눈을 감고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들을 바라본다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면 된다.


머릿속에 장착된 영사기가 하얀 스크린에 여러 가지 기억들을 순차적으로 영사해주기 시작하고, 이 영상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차분히 바라보고 있으면 당시에 처했던 상황, 느꼈던 감정, 당시의 해석과 현재 느껴지는 새로운 해석과 같은 것들이 융합되며 하루 동안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수면을 취하는 동안에도 이루어진다. 뒤죽박죽이었던 머릿속이 자고 일어나면 맑아지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무의식적인 정리 작업 덕분이다.




우리 몸 안에 의지로 조절되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실상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자율성의 영역이 곧 우리가 무의식이라 칭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한 심장박동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끊임없이 입력된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계속해서 전력질주를 할 수는 없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수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우리는 곧 힘듬을 느끼고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른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신체적 부담의 신호를 느끼지 못한다면 심장에 과부하가 오거나 심장마비, 호흡곤란 등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있다. 바로 생각에는 휴식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뇌를 계속해서 전력질주를 시키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입력되는 정보들을 처리하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리고, 이미 입력된 정보들을 정리할 여유가 없어진다.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컴퓨터가 과도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랙이 걸리는 것처럼 뇌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심한 경우에는 멈춰버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오히려 생각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답답해하고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자책을 한다. 너무나 많은 업무를 처리하다 지쳤을 뿐인데 '의지가 약하다.'며 더 몰아붙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뇌에 블루스크린이 뜨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뇌가 작동을 멈추면 이성이 멈추고, 본능의 영역을 아우르는 감정이 우리를 지배한다. 이때의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이 때때로 우리가 ‘감정적인 인간’을 가리킬 때 떠올리는 행위들이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비상식적인 행위들을 하는 등의 문제적 행위들. 평소의 안정적인 상태였다면 감정을 다스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도, 이성이 ‘마비’될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감정’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인해 후회와 자책을 느끼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적절한 휴식을 통해 뇌의 과부하를 줄여주는 것이다.


뇌가 스스로 정리할 시간과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이미 가득 찬 주머니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집어넣으려 하다 보면 주머니는 터지기 직전에 이른다. 주머니가 가득 찬 것을 모르고 어떻게든 그 안에 더 집어넣으려는 사람도 온갖 짜증이 솟구치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팽팽해진 상황에서는 작은 마찰 하나만으로도 뻥 하고 터지기 십상이다.


이럴 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주머니 속의 자료들을 정리하고 선별해서 다시금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컴퓨터의 RAM과 ROM처럼, 우리의 뇌에도 장기기억과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공간은 분리되어 있다. 정리된 자료들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거나 휴지통으로 버려지면 다시 입력된 자료들을 처리할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아직 인간은 뇌의 90%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공간 자체가 부족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입력과 처리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병목현상만 의식적으로 조절해주면 된다. 이 작업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지, 잠시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감정을 쌓아두지 않는 것이다.


감정은 ‘이름 붙이기’라는 작업을 통해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감정은 눌러둔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질만한 의미 없는 감정들은 애초에 쌓이지도 않는다. 뭔가 기억과 함께 마음에 남아있는 감정 덩어리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은 것들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었든, 나쁜 것이었든 간에.


공기를 끊임없이 압축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압축된 공기는 에너지가 축적되고 열이 발생한다. 여기에는 작은 불씨 하나만 ‘탁’하고 터져도 굉장한 폭발이 일어난다.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눌러둔 감정은 계속해서 에너지가 증폭된다. 이 증폭된 에너지가 이성이 마비된 잠시의 틈을 만나면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화산 폭발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감정을 해소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만 하면 된다. 저녁 시간도 좋고 새벽 시간도 좋다. 여기에 한 가지 작업을 더 하면 완벽하다. 그것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종이에 써보면 '형상화'의 작업을 거치면서 안개로 덮여있는 것처럼 두리뭉실했던 내용들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텍스트로 정리가 된다. 여기서는 딱 한 가지 사항만 주의하면 된다. 자신이 쓴 내용들을 다시 보면서 곱씹지 않는 것이다.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내가 이런 잔인한 생각을 했단 말이야? 내가 이렇게 시기심으로 가득했다니...’ 하고 자책하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즉 이런 부분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 있는 일들로 스트레스받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만 한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을 탓하는 것과 같다. 우리 안에 여러 가지 상상과 걱정, 망상, 의심, 사랑, 절망, 증오,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이 교차하는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기에 그런 것이다. 선택하고 판단할 성질의 것들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비가 내리면 왜 비가 내리는지 탓할 것이 아니라 우산을 써야 한다. 비가 많이 내리면 왜 비가 많이 내리는지 불평할 것이 아니라 홍수에 대비할 적절한 저수 장치나 댐, 배수로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적응하고 환경에 대응하면서 생존해왔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인간이 가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가 가진 여러 가지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할 때,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첫 번째에 놓여야 할 시작점이다.




우리가 할 것은 불안해하는 나를 자책하고, 혹은 나를 불안해하는 상황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을 억누르다 못해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할 것은 내가 언제 불안을 많이 느끼는가? 언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가? 어떤 일에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가? 어떤 사람에게 더 힘들어하는가? 내가 특히 감정적이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해 갈 수 있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자연스럽게 해답 또한 마련하게 된다. 우리는 아는 문제는 어떻게든 답을 찾는다.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적절한 예측과 성찰을 통해 답을 갖고 있는 문제들은 실제로 유사한 상황에 놓였을 때,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무리 없이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혹은 자신이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음을 알고 적절한 휴식시간을 마련함으로써, 지쳐 있거나 팽팽해진 긴장감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를 가장 두려움에 빠트렸던 원인은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자체가 아니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없는 우리의 상황과, 완치에 대한 판단이 어렵고,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적 막막함이 전 세계를 팬데믹의 공포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이처럼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할 때, 그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을 느낄 때 우리는 가장 극심한 두려움에 빠진다.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와 근원적인 두려움, 불안 등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면 자신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적절한 휴식을 취해주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확보하여 내면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동기다.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소는 ‘필요성’이다. 어떤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즉각적으로 그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필요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일이 어떤 중요한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삶의 우선순위에서 앞쪽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인 사정으로 인해 그러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상태가 불안정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조금 더 조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더 돌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사소한 차이가 나쁜 사건과 기억들을 줄여주고, 기분 좋고 만족할만한 순간들을 늘려준다. 잠깐의 휴식, 적절한 수면,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 이 3박자가 고르게 갖춰질 때 우리의 겪게 될 후회와 자책, 상처들 중 많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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