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속력
김연수 소설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덮기 전에 페이지의 여백에 그날 하루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는 것도 계속해야 한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2012년을 기록하고 싶으니까." 조정래 소설가는 이런 말도 했다. "400페이지 소설을 읽는데 얼마나 걸릴까를 생각한다면, 작가는 과연 그만한 소설을 써내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지 왜 생각해보지 못하는가?" 최근 소설을 33편까지 이어나가면서 내내 느낀 생각들이 그랬다. 쓰는데 2달을 끙끙거렸는데 읽는 데는 2시간밖에 안 걸리기도 하고, 매일 몇 분 분량의 글을 써내는데도 머릴 쥐어짜며 하루 반나절이 걸릴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눈앞이 캄캄하고 무슨 내용을 쓸지 막막해서 한숨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본 장편소설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루 1~2시간씩 읽어도 완주하는데 몇 주는 족히 걸리는 소설들. 읽다가도 길어서 포기했던 소설들. 그렇다면 그 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얼마의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했을 것인가. 새삼 두려운 마음도 들고 어쩐지 글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샘솟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전히' 멈춰 서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신호에 멈춰 서더라도 약간 거리를 두고 액셀을 떼고 천천히 가다 보면 파란 불로 바뀔 때가 있다. 그때 살짝만 액셀을 밟으면 차가 수월하게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완전히 멈춰 서면 출발할 때 두 배로 힘이 들고 연비도 순간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적더라도, 그날따라 유난히 글을 쓸 시간이 없거나 혹 에너지가 부족하더라도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 하다 못해 김연수 소설가의 말처럼 읽던 책 한구석에라도 그날의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의미 없는 끄적임처럼 보였던 단어나 문장들도 나중에 다시 펼쳐보았을 때 소중한 아이디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쓴다' 혹은 나는 여전히 쓰고 '있다'는 느낌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정체감을 잃지 않게 돕고, 글쓰기의 탄력을 유지해준다.
간혹 책 출간이 꿈인 분들을 본다. 하지만 사실 책 1권을 출간하는 것은 삶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는다. 저서가 한 권 있다고 해서 대단한 작가로 이름나는 것도 아니고 수익도 사실 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필자가 첫 책 '당신이 힘든 이유는 감정 때문이다'를 출간하고서 느낀 점은 책에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로서 인지도가 형성되지 않는 한 책은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만 권의 책 중 한 권일뿐이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우리나라 인구수만큼의 책이 존재하는데 과연 그중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거나 한 번이라도 읽혀볼 만한 책은 어떤 책일까? 당연하게도 지나가다가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보거나 읽어본 작가의 책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서점을 가도 전혀 모르는 작가의 책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애초에 서점 매대에도 그런 책은 눈에 띄는 곳에 놓아주지도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작가들은 내 책이 서있는지, 누워있는 지를 따지며 우울해하기도 한다. 누운상태까지 갔다는 것은 곧 관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는 의미고, 그러다 서점 한구석에 그저 하나의 세로선처럼 놓이게 되면 사실상 책의 판매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홍보도 마찬가지다. 작가 스스로가 브랜드로서의 인지도가 없으면 홍보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출판사에서도 홍보를 권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책을 내려하기보다 좋은 글과 좋은 문장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애쓰는 편이 좋다. 어쩌면 클라우드 펀딩 방식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역시 펀딩 방식으로 미리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뒤 성공한 좋은 예다. 브런치에서 시행하는 여러 공모전도 좋은 브랜딩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언제 책 한 권 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 일단 써야 한다. 어깨가 튼튼한 투수가 제구력도 좋고 날카로운 스트라이크도 꽂아 넣을 수 있다. 작가의 어깨란 무엇보다도 필력이다. 필력은 계속 써야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