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관성 - 2

경제속력

by 작가 전우형

* 1편에서 이어집니다.


글쓰기의 '관성'


글쓰기도 운전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이상 글쓰기에 몰두할 장소, 시간, 동기 부족에 늘 허덕인다. 글쓰기를 통한 당장의 수익이 적거나 아예 없으니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공식이고, 미래의 성공을 점치기도 어려워서, 계속 쓰면 과연 빛을 볼 수 있을지 늘 고민에 빠진다. 변변한 서재나 책상 하나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면 책이나 노트북, 수첩 같은 것들이 짐짝처럼 여겨질 때도 있고(실제로 그러다 잃어버리는 노트나 수첩도 제법 있었다), 모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고독한 직업이라지만 나 같은 '부업' 작가는 세상과 단절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생계유지를 위해선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필연적으로 시간과 에너지가 쓰인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글쓰기를 지속하는 방법은 오로지 글쓰기의 '관성'을 잃지 않는 방법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관성'은 과연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까?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경제속력'을 유지한다.


연비주행의 경우 대략 60km/h 수준을 유지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었다. 글쓰기에서 '속력'은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분량'과 '시간'이라고 본다. 글자크기 10, 줄 간격 160의 한글 기본 포맷으로 A4 2장에서 2.5장 정도면 1 꼭지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 이걸 1/3로 나누면 브런치 글 1개 분량으로 적절하다. 읽는데 너무 오래 걸리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이 정도를 매일 쓴다고 했을 때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남짓. 물론, 퇴고는 별개다. 그리고 생각보다 퇴고는 틈틈이 남는 시간을 이용해도 작업이 수월한 편이다. 어떤 때는 한동안 초고에서 신경을 떨어트려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더 적절한 수정 작업이 가능할 때도 있다. 그래서 속도 공식에 대입해보면 A4 반 페이지/h 되시겠다.


자신에게 적절한 페이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 속력이라고 해서 120km/h로 관성주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지하기도 힘들고 액셀에서 발을 떼면 속력이 급격히 낮아진다. 잠깐은 빨리 갈 수 있어도 오랜 시간 멀리 가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물론 마라톤 선수들은 100m를 대략 18~20초에 주파하며 풀코스를 뛴다. 그 정도면 일반인의 100m 달리기 속도와 맞먹지만 누구에게나 가능한 페이스는 아니다.


전업작가, 유명 소설가 등의 인터뷰를 보면 통상 하루 6시간~8시간 정도는 집중해서 글을 쓰며 그것을 위한 루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작가는 반년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취재나 자료수집 기간을 거치지만 책을 쓰는 데는 2~3개월 내외면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책 1권 분량을 대략 40~50 꼭지로 봤을 때 하루 1 꼭지씩 쓰면 2개월 남짓, 2 꼭지씩 쓰면 1달 정도면 완성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매년 1~2권씩 출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고, 10년 20년이 쌓이면 저서 목록만 한 페이지가 나오는 것도 꿈은 아니다. 다만 전업 작가는 비유하자면 프로 마라톤 선수와 같다. 일반인은 하루 2~3시간 글쓰기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환경 때문이기도 하고 글쓰기 지구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편하고 가장 힘이 덜 드는 최적의 관성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결국 계속해서 써보는 수밖에 없다.


김연수 소설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덮기 전에 페이지의 여백에 그날 하루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는 것도 계속해야 한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2012년을 기록하고 싶으니까." 조정래 소설가는 이런 말도 했다. "400페이지 소설을 읽는데 얼마나 걸릴까를 생각한다면, 작가는 과연 그만한 소설을 써내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지 왜 생각해보지 못하는가?" 최근 소설을 33편까지 이어나가면서 내내 느낀 생각들이 그랬다. 쓰는데 2달을 끙끙거렸는데 읽는 데는 2시간밖에 안 걸리기도 하고, 매일 몇 분 분량의 글을 써내는데도 머릴 쥐어짜며 하루 반나절이 걸릴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눈앞이 캄캄하고 무슨 내용을 쓸지 막막해서 한숨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본 장편소설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루 1~2시간씩 읽어도 완주하는데 몇 주는 족히 걸리는 소설들. 읽다가도 길어서 포기했던 소설들. 그렇다면 그 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얼마의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했을 것인가. 새삼 두려운 마음도 들고 어쩐지 글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샘솟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전히' 멈춰 서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신호에 멈춰 서더라도 약간 거리를 두고 액셀을 떼고 천천히 가다 보면 파란 불로 바뀔 때가 있다. 그때 살짝만 액셀을 밟으면 차가 수월하게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완전히 멈춰 서면 출발할 때 두 배로 힘이 들고 연비도 순간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적더라도, 그날따라 유난히 글을 쓸 시간이 없거나 혹 에너지가 부족하더라도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 하다 못해 김연수 소설가의 말처럼 읽던 책 한구석에라도 그날의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의미 없는 끄적임처럼 보였던 단어나 문장들도 나중에 다시 펼쳐보았을 때 소중한 아이디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쓴다' 혹은 나는 여전히 쓰고 '있다'는 느낌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정체감을 잃지 않게 돕고, 글쓰기의 탄력을 유지해준다.


간혹 책 출간이 꿈인 분들을 본다. 하지만 사실 책 1권을 출간하는 것은 삶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는다. 저서가 한 권 있다고 해서 대단한 작가로 이름나는 것도 아니고 수익도 사실 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필자가 첫 책 '당신이 힘든 이유는 감정 때문이다'를 출간하고서 느낀 점은 책에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로서 인지도가 형성되지 않는 한 책은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만 권의 책 중 한 권일뿐이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우리나라 인구수만큼의 책이 존재하는데 과연 그중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거나 한 번이라도 읽혀볼 만한 책은 어떤 책일까? 당연하게도 지나가다가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보거나 읽어본 작가의 책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서점을 가도 전혀 모르는 작가의 책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애초에 서점 매대에도 그런 책은 눈에 띄는 곳에 놓아주지도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작가들은 내 책이 서있는지, 누워있는 지를 따지며 우울해하기도 한다. 누운상태까지 갔다는 것은 곧 관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는 의미고, 그러다 서점 한구석에 그저 하나의 세로선처럼 놓이게 되면 사실상 책의 판매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홍보도 마찬가지다. 작가 스스로가 브랜드로서의 인지도가 없으면 홍보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출판사에서도 홍보를 권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책을 내려하기보다 좋은 글과 좋은 문장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애쓰는 편이 좋다. 어쩌면 클라우드 펀딩 방식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역시 펀딩 방식으로 미리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뒤 성공한 좋은 예다. 브런치에서 시행하는 여러 공모전도 좋은 브랜딩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언제 책 한 권 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 일단 써야 한다. 어깨가 튼튼한 투수가 제구력도 좋고 날카로운 스트라이크도 꽂아 넣을 수 있다. 작가의 어깨란 무엇보다도 필력이다. 필력은 계속 써야 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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