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은 저항이 심한 구간이다. 내가 가려는 방향과 반대쪽으로 외력이 잡아당기기 때문에 힘이 2배로 든다. 순식간에 속력은 줄어들고 살짝 가속페달을 밟아보면 엔진의 힘들어하는 소리가 격하게 들린다. 자연히 연료소모도 심하다. 오르막 구간을 수월하게 넘어가려면 내리막에서 탄력을 붙이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운전이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리막에서 힘을 조금 더 실으면 된다. 몇 번 같은 길을 오가다 보면 코스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가시적 특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오르막과 내리막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것을 글쓰기에 적용하려면 문제가 생긴다. 글쓰기에서는 도무지 어디가 오르막이고 어디가 내리막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아내려면 실험적이고 탐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적 개념이지만 공간적 개념이기도 하다. 공간적 개념에서 내리막은 글쓰기에서 탄력이 붙는 구간을 말한다. 예컨대 자동차 엔진이 충분히 예열되는 지점 같은 것이다. 탄력 지점에 도달하기 전은 초기 오르막 구간에 해당한다. 무리하게 힘을 내거나 조급해하기보다 그저 써 내려간다는 마음으로 차분히 단어와 문장을 엮어 나가다 보면 머리가 열리고 손의 움직임도 민활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가 내리막의 시작이다. 그런데 초기 오르막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글쓰기를 시작하고 몇 줄의 글을 써 내려가기까지 필요한 에너지나 노력은 그날 하루의 컨디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전까지 얼마나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았는가도 중요한 요소다. 하루만 쉬자, 오늘만 내려놓자 했다가 며칠을 글쓰기에 다시 손을 대지 못한 경험, 여러분도 해보았을 것이다. 완전히 놓았다가 다시 시동을 걸려면 예열도 오래 걸리고 과정도 힘이 든다. 시작부터 지치기도 하고 슬럼프가 찾아온 걸까 하고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이런 부정적 자기 암시나 자신의 상태에 대한 판단, 느낌 같은 것들이 글쓰기에서 저항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글쓰기'라는 '행위'를 완전히 멈춰 서지 않기를 추천한다.
시간적 개념은 말 그대로 하루 중 자신이 글쓰기에 가장 수월한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이드라인도 없고 개인차가 심하다. 필자의 경우 퇴근 후 글쓰기는 가급적 지양하는 편이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나 퇴근길에 떠오른 생각들을 빨리 정리해두고 싶은 마음에 저녁 작업을 하는 날도 간혹 있다. 하지만 머리와 손이 자물쇠로 잠긴 듯 단단하고 무딘 느낌이며, 쓰고 나면 재미도 없고 글을 쓴 나조차도 대체 이게 무슨 글인가 하는 하자 투성이 글이 될 때가 많았다. 그 후로는 저녁 작업에는 손을 잘 대지 않지만 정 작업시간이 부족한 날이면 수기 원고를 옮기는 시간 정도로는 활용하는 편이다.
글쓰기의 매력은 정직하다는 점에 있다. 쓰는 만큼 분량이 나오고 집중한만큼 글의 질이 높아진다.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이 군더더기가 없고 매끄러워지며 읽기에도 편안한 글이 된다. 또한 글쓰기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알려주는 측면이 있다.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채로 글을 쓰면 줄기가 흐트러져 곳곳에 난맥이 생기고 사족이 달려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체기를 유발하는 글이 되어있기도 한다. 오르막을 알아보는 방법은 자신에게 글쓰기에 투입할 에너지가 가장 부족한 시간이 언제인가를 찾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리막은 반대다. 하루 중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간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왕성하다고 해서 반드시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을 자신만의 글쓰기 내리막 구간으로 만들기 위해선 길을 고르게 닦는 과정이 필요하다. 많은 분야에서 강조되는 '루틴'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예컨대 필자가 활용하는 아침 루틴은 뜨거운 물로 조금 긴 샤워를 하고 오픈 시간보다 일찍 카페로 나가 머신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황금빛 크레마가 뽀얗게 올려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바로 브런치를 열면 그때부터 글을 쓰는 식이다. 여기에 최근 추가된 것이 출근하는 20~30분의 시간 동안 차내를 고요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최초에는 엔진음을 듣기 위해서였지만 그 잡음이 완전히 제거된 고요함이 아침의 글쓰기 루틴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 별것 아닌 루틴이 작동되기 시작하면 힘들이지 않고 2시간 정도 매끄럽게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쓴 글이 다시 읽어봐도 충분히 의미 있고 괜찮은 글이 된다.(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다음 루틴은 오후에 손님이 뜸한 시간을 활용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 피크타임이 지나고 나면 한동안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원두를 그라인더에 적절한 굵기로 분쇄하고, 물을 끓이고 온도를 확인하고 시간을 측정하며 뜸을 들이고, 주전자를 기울여 머핀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며 가느다란 물줄기의 흐름과 서서히 퍼져 나오는 커피 향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서보에 검붉고 투명한 빛을 띠는 액체가 1/3 정도 채워져 있다. 그걸 한 모금 마시면 다시 준비가 된 느낌이 든다. 보통 이 시간은 초고를 읽어보며 수정 보완하거나 때로는 필요 없을 때는 과거 발행한 글을 다듬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마지막 루틴은 대략 오후 4시 반에서 5시경에 이루어진다. 이때는 하루 중 해가 유일하게 카페 내부로 환하게 들이치는 시간으로 겨울철에 많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우두커니 그늘에 앉아있던 자리로 벽 모서리 너머 눈부신 늦은 오후의 햇살이 슬그머니 내비치면 갑자기 싸늘하던 실내가 따뜻한 공기로 뒤바뀌는 느낌을 받는다. 그 오묘한 빛을 마주하며 광합성 중인 식물의 기분이 되어 몇 분 정도 머물면 어쩐지 에너지가 다시 샘솟는 느낌이 든다. 하루 중 가장 처지는 시간에 얼어붙어있던 정서가 사르르 녹으며 작은 행복감이 스며든다. 이 시간에는 노트북 대신 수첩을 꺼내 든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부담 없이 써 내려간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비어있던 공간에 글자가 하나씩 새겨지고 펜촉에서 뻗어 나온 기다란 그림자가 미려한 춤을 추는 모양새가 흥겹다.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30분에서 1시간의 시간 동안 정제가 필요한 광물의 원석 같은 아이디어가 발굴되는 날도 있다.
대개는 이 즈음이면 노트북을 쓰려해도 배터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여담이지만 나는 글쓰기의 마무리 시점을 판단할 때 미신적 요소를 반영하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노트북 배터리다. 충전해온 노트북 전원을 연결하지 않고 사용하다가 '배터리를 충전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뜨면 '오늘은 이만하자' 하는 식이다. 보통은 그 메시지를 보기 전에 하루치 분량을 끝내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아직 덜 썼는데 이 메시지가 전시되는 날이 있다. 그런 때면 어지간히 오르막인가 보다 하고 작업을 접는다. 때로는 전날 충전하는 것을 깜박하는 날도 있는데 '내가 그 정도로 정신없이 어제를 보냈구나' 하고 그냥 노트북 대신 책을 펼치는 날도 있다. 다른 하나는 만년필 잉크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만년필 잉크가 떨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바로 잉크를 채우지 않고 그저 펜을 내려놓는다. 그 메마른 펜촉이, 텅 빈 잉크통이 왠지 내 안의 고갈을 암시하는 듯하는 기분 때문이다. 분명 이 두 가지는 미신적인 행위이고 일종의 징크스지만 나는 그런 순간을 글쓰기를 마무리하라는 징조로 활용한다.
이러한 것들이 필자가 2018년부터 5년 동안 틈틈이 글을 쓰며 발견한 글쓰기의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퇴근 후에는 글에 손을 잘 대지 않는다. 집은 아내와 더불어 초등생 세 아이(거기다 첫째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가끔 그 아이의 눈을 보면 오싹하다.)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으로 종종 묘사된다. 그리고 작가는 '고독'을 먹고사는 직업이라고도 한다. 그런 말이 나온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글쓰기는 '집중'이 생명이어서 어떠한 타인도 글쓰기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방해요인이기 때문이다. 가족, 애인, 친구 예외가 없다.
브런치에서 꿈을 키우는 많은 '부업' 작가님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집에서 글을 쓰다 보면 어쩐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거나 짜증이 치솟는 경우를 말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의 퇴근 후 글쓰기는 실제로 글은 얼마 쓰지도 못하면서 단란한 가정을 해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케바케'다. 퇴근 후라도 자신의 독립된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오롯이 홀로 작업할 수 있다면 마냥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아침이나 낮동안 전혀 글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퇴근 후에라도 써야지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