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재밌는 얘기 여기 있습니다.

그나저나 재미가 있어야 할 텐데

by 작가 전우형

어느 순간이 되면 나는 늘 고민에 빠진다. 지금도 그런 순간 중 하나다. 고민은 이것이다. 지금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하던 작업을 마무리지을 것인가. 하루 온종일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던 생각들이 정리가 될 시점이면 이미 해가 서산을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업의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런 순간은 작업의 피치를 올리라고 있는 순간이니까. 다만 문제는, 문제는 이런 것이다. 내가 처한 환경이 내가 집중하고 싶다고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아니라는 것.


머피의 법칙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오히려 꼬이기만 할 때' 주로 쓴다는 이 말은 내가 처한 상황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그림자도 안보이던 손님들이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면, 라면이 익어서 이제 한 젓가락 집어 들어 후후 불고 입에 넣으려 하면, 너무 피곤해서 잠깐만 구석진 자리에서 쪽잠을 청하려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 눈이 스르륵 감기려고 하면, 이제 정리해야겠다 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고무장갑의 물기를 탁탁 털어 걸고 나면, 꼭 그런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대개 그런 손님들은 자리를 펴고 앉아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가끔 너무 손님이 없는 날이면 일부러 컵라면에 물을 부어보기도 하는데, 또 그렇게 인간의 하찮은 의도가 가미되면 점괘가 생각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자, 아무튼 재밌는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어제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카페를 찾은 사모님 두 분과 밀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오후 3시. 그렇게 루틴이 흐트러진 날은 좀처럼 궤도에 오르기 힘든데 아니나 다를까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말이 말 같지 않아서 오늘은 쉬어야 하나 하고 노트북을 덮어버리려는 그때였다. 아니 그,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영감님께서 툭 하고 나타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즉각 노트북을 다시 펼치고(그 사이 눈치도 없는 노트북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다른 때나 좀 그렇게 일하지.) 느려 터진 부팅의 속도감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데, 한글을 열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쾌활하게 손가락이 움직이며 글이 써지는 것이 아닌가. 이때다 싶어 몸과 마음을 영감님께 맡기고 글을 쓰는데 순식간에 1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슬슬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요즘 확진자가 쏟아지는 탓에 저녁 손님도 없을뿐더러 내게는 오매불망 서방님 귀가만을 기다리는 어여쁜 아내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1시간만 더 쓰면 평소 반나절 이상 낑낑거려도 안 나올 분량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접신한 느낌이 퇴근길을 나서는 것을 머뭇거리게 했다. 돌아보면 그 느낌이 문제였다.


그래, 조금만 더 쓰고 가자. 웬일로 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고 열타를 치고 있던 대략 6시 10분경. 나는 어쩐지 싸한 느낌에 바깥을 바라보았다. 8명이었다. 가끔 운 없는 날이면 하루 온종일 맞이하는 손님의 숫자와 맞먹는 인원이 카페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내가 얼렁뚱땅 카페지기 한 세월이 얼마인가.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 3년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지금은 포장 주문만 가능합니다."하고 선을 긋는데 나이 지긋한 그분들 중 한 분이 낭패한 얼굴로 "우리 오래 안 있을 건데 30분도 안될까요?" 하고 말하는 순간 나는 오늘 매출 집계표에서 본 초라한 숫자가 떠올랐다. 그래, 30분 정도야 뭐.


8명이 주문한 8가지 각각 다른 메뉴를 조제하며 허덕이고 난 시간은 대략 6시 30분. 그리고 여러분들께서도 소설적 마인드로 충분히 예상하셨다시피 그분들은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7시 반쯤 되어서야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며 조용히 퇴장하셨다. 나는 왜 있을 때 조용하다가 사라질 때 시끌벅적하면 안 되냐고 따질 기력도 없이 이미 오랜만에 왕림하셨던 영감님을 눈물 머금고 보내드린 것은 물론, 그 이후로도 단 한 줄도 더 쓰지 못했다.


카페를 정리하고 불을 끄니 저녁 8시였다. 퇴근길을 나서는데 하늘이 노랬... 아니 까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원래 암흑천지였다지. 우연히 로또에 당첨되거나 벼락을 두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보다 낮은 확률로 빛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항성'이 생겨났고, 그 항성이 내뿜는 빛이 닿는 공간에 우연히 존재하던 운 좋은 행성에서 그 모든 것을 더한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로 대기가 존재했고 온도가 적당했고 물이 있었고 생명체가 태어났고 그중 인간이 수많은 우연과 진화 속에서 만들어져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보는데 하루의 무려 절반씩이나 하늘이 파랬다지. 원래는 우주의 '극히'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지극히 한정되고 제한된 장소에만 '밝다'는 개념이 성립되는데 말이야. 나는 어쩌면 지금 세상의 '원래'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 몰라. 지금 눈앞이 캄캄한 건 그래서 그럴 테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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