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소설적 에세이 아니면 에세이적 소설

by 작가 전우형

치마만 두르면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나는 나도 도저히 못 견뎌하는 부류가 하나 있는데 그건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 커피를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도, 미역국에 국간장을 넣을지 진간장을 넣을지 모르는 여자도, 주차할 때마다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여자도, 핸드폰 번호나 몸무게, 중학생 시절 사진 따위를 군사 1급 비밀 취급하는 여자도 아니다.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류는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여자다. 그리고 지금 나와 3m쯤 떨어진 거리에서 끊임없이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가끔 그녀들을 보면 다른 이의 귀 건강이나 정신건강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이 문장에서 '않는'과 '못하는'의 차이는 크다. 그건 개선의 여지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이므로. 아무튼 내 생각에 후자에 가까운 그녀들이 자리를 펴고 앉은 탓에 나는 세상 그 어떤 재미난 것에도 집중할 수 없지만 진정 나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다. 예컨대 그들이 집에서 차로 50분이나 걸리는 교외의 이름난 스파게티 전문점에 가서 하나에 만 오천 원씩이나 주고 오늘 점심으로 먹은 알리 올리오 스파게티가 얼마나 짜고 기름지기만 했는지, 이따 저녁 찬거리로 한우 양지를 살 건데 어느 정육점이 싸고 좋다던지, 건미역과 계란 한 판도 사야 하는데 요 아래 농협이 특가 세일을 하는 걸 마침 오전에 푸시 알림으로 보았다던지, 더군다나 그 농협은 오늘 오후 4시부터 딱 1시간 동안만 딸기 1kg을 8천 원에 1인 2박스 한정으로 특가 세일을 한다던지, 어떤 지인이 학력을 속여 망신을 당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뭐하러 속여서 그 꼴을 당하는지 자기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던지, 어제 점심께 보이스 피싱이 의심되는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어떤 치밀한 분석을 통해 그 전화가 보이스 피싱인지 알아차렸다던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 나도 모르게 주의가 집중되고 만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여름날 바다와 인접한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데 하필 휴대용 모기향도 에프킬라도 챙겨 오지 못한 탓에 어느 틈에 텐트 안으로 날아들어온 가로줄이 죽죽 그어진 손톱만 한 산모기 3마리에게 귓바퀴를 교대로 물어뜯기느라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이놈들 눈에 띄기만 해라 하며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다가 2마리만 잡고 포기한 채 다시 누웠는데 결국 잠깐 선잠 든 사이 3군데는 더 부어올랐을 때처럼 아프고 화도 나며, 사할린 지역에 사는 불개미들이 어쩐 일인지 대한민국 서쪽 끝 20층 아파트에 위치한 우리 집 침대로 30마리쯤 들어와 숨어있다가 잠든 내 귓구멍 속을 유유자적하게 기어 다니며 날카로운 부리처럼 생긴 이빨로 고막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꿈을 꾸다가 깼는데 잠든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처럼 정신이 혼미해진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괴롭다. 그 이야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 다섯 채널의 서라운드 음향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 더욱 괴롭다.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없는 카페지기가 출근한 지 다섯 시간쯤 지나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올 시점이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은 건강에 해롭다. 그중에서도 그 큰 목소리로 조용한 카페 내부를 쩌렁쩌렁 울리며 자신의 직장사며 가정사, 애정사, 관계사, 개인사도 모자라 종교적 신념까지 줄줄이 읊어대는 사람은 더욱 해롭다. 그중 으뜸은 하는 말마다 남 욕을 늘어놓는 사람이다. 가끔 그들의 속내를 분석해보고 싶은 것은, 자기 스스로는 지금 누군가에게 욕먹을 짓을 쉼 없이 하고 있음을 과연 알까 모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물론, 알아도 문제, 몰라도 문제다. 안다면 알면서도 욕먹을 짓을 하고 있으니 문제고, 모른다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음을 모른 채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문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1시간 반째 하고 있는 내가 그중 가장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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