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고르는 것은 어렵다

우연히 채널을 넘기다가

by 작가 전우형

영화를 고르는 일은 어렵다. 내가 쓰는 방법은 아무 채널이나 돌려보다가 영화가 나오면 리모컨을 내려놓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중간에서부터 시청할 수 있었다. 아내가 초췌한 남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바로 코드레드가 울렸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손목을 후벼 파던 주인공은 핏기가 모두 가신 채 당황한 얼굴로 더듬더듬, 이렇게 말한다. "라듐 칩이 사라졌어요.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손목에 구멍이 뚫렸는데 아프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워하는 주인공.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프린스턴대 교수 '존 내쉬'의 이야기다. 정신분열증. 요즘은 그 단어 자체가 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조현병'으로 진단명이 바뀌었다. 존은 환영을 본다. 세 사람의 환영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존의 증상은 '증강현실'과 유사하다. 그는 마치 증강현실 안경을 썼을 때만 볼 수 있는 장면을 늘 보면서 산다. 그러나 존이 처한 상황이 증강현실보다 훨씬 더 나쁜 점은 우리는 증강현실 안경을 벗는 순간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존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우리는 그것이 가상임을 알지만 존은 환영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혼란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이런 류의 소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한다. 예컨대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주인공의 아내가 결국 현실세계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두 사람은 꿈의 세계를 거의 현실과 동일하게 만들었고, 그 속에서 오랜 시간, 그러니까 '평생'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세월을 함께 보낸다. 그토록 긴 시간을 보낸 탓에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주인공의 아내는 여전히 그곳을 꿈으로 여긴 채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창문 난간에서 실제로 뛰어내리고 만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주인공도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마찬가지로 조현병에 걸린 작가다. 잘생긴 데다 머리도 작고 키도 큰 사기 캐릭터 조인성이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등장해서 그의 아픔이 더욱 절절했는지 모르나, 아무튼 그도 환시를 본다. 자신처럼 소설가가 꿈인 중학생 남자아이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 아이를 구하려다가 결국 크게 다치고 마는데, 그의 모습은 몸속에 내장된 칩을 찾기 위해 자신의 팔에 구멍을 내고 마는 '존'과 유사하다.


조현병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가 타인과 같은 현실 속에서 타인과 다른 세상을 보고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들을 느끼며,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분명하게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누군가, 혹은 어떤 현상이나 물체를 다른 사람이 믿어주지 않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뻔히 눈앞에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는 상대방이 바보같이 느껴질까? 아니면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대방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를까? 그런데 상대방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혹은 내가 믿고 의지해왔던 가까운 관계에 있던 사람들마저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현실이 아니라 너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때,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만약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처럼 사설 군인의 복장을 한 자가 눈앞에서 아내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당신이라면 '이건 나의 망상에 불과해' 하면서 태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내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어 두 사람(실제로는 한 사람)을 밀치고 말 것인가?


현실과 망상을 명확히 구분해낼 수 없다는 점이 조현병의 가장 힘든 점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처럼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옆 사람에게 "이봐요. 당신도 지금 이 사람이 보이나요?" 하고 태연하게 묻기란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옆사람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을 참아내기 어렵다. 내가 너와 다른 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내가 보는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달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숨기고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도저히 누가 가짜고 누가 진짜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 두 가지의 교집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말 것인가.


가볍게 생각해볼 수 있는 조현병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감각이 가진 현실과의 괴리는 결국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어떤 사건이나 대화를 통해 삐져나오고 만다.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속인다고 의심하겠지.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걸, 그것이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질병에 가깝다는 걸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만다. 혹은 외력에 의해 진단받을 수도 있다. 점점 더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환상과 현실의 역학관계 속에서 비극이 벌어진다. 절망에 빠질 것이고, 운이 좋다면 치료를 위해 노력하게 되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남들보다 빠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치료의 과정 속에서 곁에 있는 사람의 절망과 괴로움을 숨 쉬듯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뷰티풀 마인드'에서처럼 성관계를 하지 못해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며 몰래 약물 복용을 멈췄다가 결국 환영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갓난아이를 찰스가 대신 돌봐주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다가 아이를 욕조 속에서 익사시킬 뻔했는데 찰스는 없다는 걸 사색이 되어 뛰어온 아내의 울부짖는 목소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 이후는 주인공이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다시 정신병원으로 돌아가거나, 아내가 아이만을 데리고 그를 떠나버리거나,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상태를 커밍아웃하고 유명한 대학교수가 자신이 재직하던 학교에서 학생들의 조롱과 수모를 견디며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컨트롤하며 노벨상을 받고, 시상대에서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미친'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장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쉽게 죽음을 택하지는 못할 것이다. 수치심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도 거대한 장벽이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 곁을 지켜주길 간절히 바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종종 상대방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는다면, 혹은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뻔했다는 걸 안다면. 그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생각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까? 물론 이것은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런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과정이라는 결론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많은 독자들이 책을 펼쳤을 때 자신의 이야기처럼 빠져들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는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알리샤가 존에게 '진짜'를 가르쳐주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도저히 글로 표현해낼 수 없는 걸 보면 난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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