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 중에 든 생각

어렵지만 재밌는

by 작가 전우형

구름이 하늘을 군데군데 가려주긴 했지만 역시 7월의 여름은 무더웠어요. 에어컨 실내온도는 31도를 가리키고 있었죠. 얼기설기 지은 단층 건물이라 수도관이 외부에 드러나 있었어요. 그래서 겨울이면 얼어붙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더운 여름엔 냉수를 틀어도 처음 한동안은 깜짝 놀라 손을 뒤로 확 뺄 만큼 뜨거운 물이 나오기도 했죠. 그날도 그런 날이었어요. 계속 물로 씻어내도 목, 턱 아래, 팔꿈치 안쪽이 풀을 바른 것처럼 끈끈했죠. 땀을 머금은 옷에서는 세탁소 냄새 같은 게 올라왔어요. 뜨거운 로스팅 기계 앞에 설 때마다 손등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혔죠. 정말, 여름이었어요.

로스팅을 시작할 땐 이런 생각이 들곤 했어요. 와, 정말 뜨겁다. 처음엔 어딜 만져야 할지를 몰라 주춤거렸죠. 하나같이 모두 뜨거울 것 같아서 맨손으로는 전혀 손을 댈 수 없었어요. 심지어 두툼한 목장갑을 끼고도 손을 몇 번이나 댔다 땠다 하며 열기를 확인한 후에야 소심하게 오므린 손 끝으로 겨우 잡을 수 있었죠.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잖아요? 하다 보니 곧 그 열기도 익숙해지더라고요. 장갑은 챙기지 않게 됐고 수시로 조작하는 부위는 나무 손잡이로 되어 있거나 전도율이 낮은 재질로 덧씌워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하지만 오히려 그 익숙함이 조금씩 문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손과 팔 이곳저곳에 상처가 하나둘씩 생겨났죠. 빨갛게 익은 화상 자국도 점점 늘어났고요. 별 건 아니었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또 그렇지 않았나 봐요. 자꾸만 눈이 가는지 상처 자국을 손으로 곱게 쓰다듬더라고요. 아프지 않냐고 묻기도 하고요. 사실 별로 아프진 않았거든요? 그리고 왜 남자들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영웅심 같은 거. 저한테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팔다리에 도드라지는 상처 몇 개쯤은 있어야 세상 경험 좀 한 것 같고, 그래서 은근히 가리지 않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누가 관심 갖고 물어보는 척이라도 하면 까짓 거 별 거 아니란 투로 말하면서도 은근히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살짝 기름을 쳐서 말하는. 여기저기 불에 덴 자국 몇 개쯤은 있어야 그날 하루를 열심히 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죠. 그런데 자꾸 신경 쓰는 게 느껴지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 몸이 마냥 내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다시 조심하게 됐죠.


자랑은 아니지만, 아니 분명 자랑 같지만 저는 일머리가 조금 있는 편이에요. 일하는 법을 빨리 깨치기도 하고요. 어지간한 일은 한 번 보고 배우면 잘 잊어먹지 않아요. 커피와 로스팅도 그런 식으로 배우게 됐죠. 방법론에 있어서는 폐쇄적이랄까 아니면 고지식하달까, 아무튼 그냥 배운 대로 하는 편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 '절대' 안 되는 방법이란 건 없다고 보는 편이기도 하고요. 결과를 결정짓는 건 방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숙련도의 차이로 보는 거죠. 그래서인지 모르는 사람이 그 방법보다 이 방법이 더 좋다고 알려줘도 그 자리에서는 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별로 귀담아듣진 않아요. 같은 맥락으로 다른 사람의 방식에 참견하거나 끼어드는 경우도 거의 없죠.

방법에는 절차가 있고, 그 절차들에는 각각의 이유와 배경이 있어요. 그건 작업장의 환경이나 장비의 상태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태도, 신념에 관련되어 있기도 하죠. 그래서 어떤 방법에 정통해진다는 것은 각각의 절차들이 존재하는 이유와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어요. 하지만 단순히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절차를 정확하고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좋은 방법도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주목하는 건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요. 문제는 1. 방법 상에 허점이 있거나 2. 행하는 주체가 잘못 이행했거나 3. 어떤 절차를 빠트렸기 때문일 거예요. 만약 이 중에서 2번이나 3번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때는 방법 그 자체를 진지하게 문제 삼아야만 하겠죠. 하지만 저는 이런 경우에도 2,3번이 정말 아닌지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그만큼 방법을 정확하고 충분히 수행하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방법 그 자체의 결함을 찾는 건 그다음의 일일 거예요.

아무튼 이러한 이유들로 저는 꽤나 세심하게 매 순간 저를 되돌아보는 편이에요. 그리고 평소와 다른 어떤 문제를 느낄 때, 확인을 시작하죠. 어떤 부분이 평소와 달랐는지. 머신의 상태가 달랐는지. 혹은 원두의 상태가 달랐는지. 언제 로스팅한 원두인지. 어제저녁부터 호퍼 통에 들어 있던 묵은 원두는 아니었는지. 원두 종류가 다르지는 않았는지. 그라인더의 굵기가 달랐는지. 압력은 정상 범위였는지. 그래도 문제가 없다면 샤워 스크린을 몇 차례 불어 내거나 부싱을 솔로 닦아내기도 하고요. 플러싱을 하기도 하죠. 바스켓 가장자리에 찌꺼기가 묻어 나오는지도 확인하고요. 그러고도 여전히 뭔가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마지막으로 제게 커피를 가르쳐주신 분께 자문을 구합니다. 그럼 금세 깨닫게 되죠. 아, 내 손이 문제였구나. 그러니까 그런 식이라는 거예요. 방법에는 보통 문제가 없더라고요. 제가 문제였던 거지. 같은 의미로 몇 번 해보지도 않은 채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을 볼 때면 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 같아요. 그는 '인간'이라는 변수를 너무 간과하고 있으니까요.

커피 맛이 괜찮다는 말을 들은 건, 그러니까 다른 배리에이션 음료가 아니라 아메리카노가 맛있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 건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대략 1년 정도가 지났을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미각이 섬세하지 못한 편이라 누군가의 피드백 없이는 맛을 세부적으로 평가하긴 힘들어요. 매번 내려 마시면서도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는 오리무중이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 맛있어졌네? 하는 느낌이 들긴 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점도 매번 드시던 분들의 평이 괜찮아졌던 시점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글쓰기도 같은 과정을 거쳤어요. 아니, 여전히 거치는 중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하지만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건 아니라 더 고민이 많아요. 그냥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히는 식이랄까. 일단 써 보는 거죠. 심지어(이건 진짜 비밀이지만) 저는 이과였거든요. 문학의 '문'자도 접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기본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그 무언가가 전무한 채로 글쓰기라는 망망대해에 뛰어들었죠. 솔직히 지금도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 건지 그쪽으로 가면 아메리카든 남극 대륙이든 호주나 뉴질랜드든 그 어딘가에 도달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예요. 해군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바다는, 특히 대양으로 나가면 방위를 참조할 물표가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과거 나침반이 개발되지 못했던 시절에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로 항해하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어요. 그런 시대의 대안이 바로 천문 항법이었죠. 아무런 빛도 존재하지 않는 캄캄한 밤바다에서도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있었거든요. 그 별자리를 보면서 항해할 루트를 찾아가는 거죠. 일견 듣기에는 신비롭고 멋질 것 같지만, 해사 생도 시절 천문 항법 과목은 정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과목이었어요. 그야말로 온갖 수학 공식이 다 등장했거든요.(사실 저도 잘 모른답니다. 그저 낙제만 면하고 말았거든요.)

수영도 못하면서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 기분이 얼마나 막막하고 황망한 심정인가를 묘사하고 싶어서 잠시 과거사를 읊었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매일 글을 쓰는 심정이 그렇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어디로 튈지는 신만이 아는 영역일 거예요. 그래서 늘 고민한답니다. 커피는 2년쯤 되니 뭔가를 알 것 같은데, 글 쓰는 일은 얼마나 해야 손에 잡힐지. 아는 분에게는 장난 삼아 이렇게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제 나이 이제 40 안쪽이니, 제가 평생 글을 쓴다고 하면 평균 수명 80세를 감안해 봤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은 글을 쓸 수 있겠죠? 그럼 그중에서 읽을만한 글이 한 편쯤은 나오지 않겠습니까? 듣자 하니 저작권은 사후 70년까지 유지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죽고 나서라도 자식에게 물려줄 게 아예 없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심정으로 이런 말을 건넸을지, 그 실체를 들여다보자니 난감할 정도였죠. 세상에 어떤 일을 이렇게 답 없는 심정으로 매달릴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이란 걸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근거는 없죠. 하지만 희망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항성이니까요. 그걸 믿어볼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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