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소설

by 작가 전우형

우리 셋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였더라? 되게 흔한 이름이었는데. G가 말했다. 저는 고유명사에 약해요. 특히 생물 쪽은요. 내가 말했다. Y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작은 물고기면 금붕어 아냐? 에이! 그건 아니지. 다른 거 생각나는 이름 없어요? G가 따지듯 물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 관상어? 관상어? 관상어도 물고기 이름이니? G가 Y에게 물었다. Y가 또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런가? 으이그! 세 사람이서 물고기 이름 하나를 못 맞히네. G는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그래, 구피! G가 소리쳤다. 아아! Y와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게 있었구나. 구피, 그건 나도 아는 건데. 아무튼 저 작은 물고기한테 물고기 밥을 후추 쏟듯 쏟아버렸다고요? G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네에. 남편이 물고기 밥 좀 꼭 챙겨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어떻게 주라고 방법 말 안 해주시던가요? G가 말했다. 가르쳐주기야 가르쳐줬죠. 티스푼으로 아주 조금만 떠서 솔솔 부어주라고. 캄캄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티스푼 찾을 정신이 있나? 구멍이 그렇게 클 줄 누가 알았겠어요? G는 퍽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물었다. 물고기 아니, 구피들은 그래서 괜찮아요? G가 말했다. 안 그래도 전화해서 물어봤죠. 여보, 나 물고기 밥 쏟아서 왕창 들어갔는데 어떡해? G의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뭐?라고 다시 물었다. 물고기 밥 주다가 쏟아졌다고. 하... 참 그걸. 내가 그렇게. 에휴... G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떡해? 다시 건져내? 으이그! 됐어. 건져내긴 뭘 건져내. 냅둬.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겠지! 내가 물었다. 많이 아끼시나 봐요? G가 말했다. 그럼요. 얼마나 살뜰히 챙기는지. 집에 오면 한 삼십 분은 그것만 쳐다보고 있는다니까요. 내일 올라오신다고요? 네. 일이 고된가 봐요. 허리가 아파 죽겠대요. G는 투덜거리면서도 식사하는 내내 남편 걱정을 했다. 나는 생각했다. 저런 게 부부인가. 문득 나도 출장 간 아내 생각이 났다. 전화 속 목소리는 꽤나 지쳐 있었다. 어디쯤 왔어? 이제 평택역. 목소리가 영 별로네. 많이 힘들었어? 응. 한 시간 반을 서서 왔거든. 자리가 없구나 그 전철. 응. 종착역이 달라서 천안 오는 것도 잘 없고 사람도 진짜 많아. 그래. 조심해서 와. 응. 전화는 끊어졌다. 한 시간쯤 후에 집에 도착한 아내의 발목에는 아대가 채워져 있었다. 걷기도 힘든 저 다리로... 아내는 씻고 나와서 수박 반 통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그러고는 침대에 풀썩 쓰러져 잠이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깨지 않고 누운 자세 그대로.


드디어 컨테이너가 팔렸다고 들은 건 어제 새벽 즈음이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려두어도 연락이 오지 않아 골치를 썩던 물건이었다. 뒷 건물 주민이 불법건축물로 민원을 넣어서 시청의 철거 독촉까지 받던 터라 P는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해했다.

크레인이 도착했고 건물 오른쪽 주차장 가장 깊숙한 곳에 일 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던 컨테이너가 서서히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J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커다란 건물이 갑자기 움직여서 J가 겁에 질렸나 생각하고는 얼르고 달랬다. 하지만 J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공중으로 붕 뜬 컨테이너의 그림자는 트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J는 안 돼! 를 외치며 자지러졌다. J. 왜 그래? 저 건물이 그렇게 좋았어? J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 뒤에, 저 뒤에!! 저 뒤에 뭐가 있는데? 비밀 기지! 저 뒤에 우리 비밀 기지가 있었는데 저게 사라지면 비밀 기지를 쓸 수가 없잖아! 엄마는 순간 멍해졌다. 아이들이 종종 컨테이너 뒤편을 드나들긴 했지만... 엄마가 물었다. 그럼 그 '공간'이 소중했던 거야? J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거 다시 저기 놓자. 응?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떠나고도 한참 동안 J의 설움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엄마는 이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꼭 껴안고서 사라진 비밀 기지 앞을 한동안 서성거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