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홉 시쯤 집을 나섰다. 열 시 영화 관람을 위해서였다. 누워서 볼 수 있는 상영관이라 객석 수가 적었다. 하루 전에 예약했음에도 자리는 맨 앞이었다. 다섯 식구가 모여 앉으려니 다른 수가 없었다. 조조할인에 아이 셋은 반값 요금인데도 표값만 오만 원이 들었다. 문화생활도 돈 먹는 하마였다.
영화는 볼만했다. 소변줄이 짧은 막내가 사이다 한 통을 다 마시더니 화장실을 다섯 번 넘게 다녀왔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맨 앞자리라 시선보다 화면이 높았지만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힐 수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다리를 쭉 뻗고 올려둘 수 있어 좋았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는 영화였다. 스토리는 잔잔했지만 해전에서 두텁게 고막을 두드리는 음향효과가 인상적이었다. 소리가 주는 강한 진동은 집에서는 누리기 힘든 것이었다. 사운드바를 거실에 설치하고도 실제로 사용한 일은 드물었다. 층간소음으로 살인도 나는 세상이었다. 조심하는 편이 안전했다. 집에서 영화 볼 때는 자막이 있는 게 편했다. 요즘은 한국 영화도 자막이 지원돼서 좋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예전 한국영화들은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게 많았다. 무슨 말인지 들어보기 위해 뒤로 돌려야 할 때도 있었고 음량을 높였다가 갑자기 커지는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때문에 인상을 찌푸릴 때도 있었다. 요즘은 안 들리면 자막을 켜면 그만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영화관을 나와서는 바로 같은 층의 식당으로 갔다. 이른 점심이라 손님이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팝콘이 아직 꺼지지 않아 배가 더부룩했다. 샐러드로도 배가 찼다. 다섯 식구가 하나씩 주문하니 점심값도 최소 칠팔만 원 가까이 나왔다. 외식하기도 무섭다.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로 갈까 했더니 표정이 심상치 않다. 참, 이 녀석들 집돌이였지. 집을 나온 뒤에는 서너 시간을 넘기 전에 귀가하는 게 서로에게 이로웠다. 아니면 싸움이 일어난다. 집에 언제 가? 하고 둘째나 막내가 묻는 게 시작이다. 보채는 목소리를 세 번쯤 듣다 보면 슬슬 약이 오른다. 그나마 오늘은 나은 편이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몇 시에 집에 오냐고 물을 때는 그대로 차 시동을 끄고 싶은 날도 많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영화관이라는 가까운 목적지가 정해져 있어서 그런지 출발부터 갈등을 겪지는 않았다. 점심식사까지는 군소리 없이 따라온 걸 보면 아이들도 거기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가족들을 집에 내려주고 나만 따로 출발해서 카페로 향했다. 로스팅을 해둬야 했다. 마침 날도 선선했다. 절기상으로는 말복이라는데 삼계탕으로 몸보신할 만큼 날이 뜨겁지 않았다. 카페 내부는 후텁지근했다. 서둘러 환기부터 시켰다. 바람길을 트고 선풍기를 최대로 켰다. 선선한 바람이 내부를 한바탕 훑고 지나가자 열기가 한층 옅어졌다. 기계를 예열하는 동안은 특별히 할 게 없었다. 가방을 두고 온 탓에 책장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김형경 장편소설 '꽃피는 고래'였다.
들뜬 표정으로 추억을 이야기하는 힙합바지를 보고 있으니 그 애는 내가 얼마 전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내가 다시는 엄마 아빠와 휴가여행을 갈 수 없다는 사실도, 부모와 여행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은 걔가 내 휴가 계획이나 가족여행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질 때 그 애는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너랑 대화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 잘 자."
사실 그 애는 꽤 괜찮은 아이였다. 혼자 떠든 것을 대화라고 여기는 점을 빼면 말이다. 방금 부모를 잃은 친구 앞에서 행복한 가족여행 이야기 한 점만 빼면 말이다. 기술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과 마음으로 배려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도 제외해야겠다.
- 김형경, 꽃피는 고래, p.58-59 -
아무렇지 않은 위로가 때때로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살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걸, 숨소리조차 가슴을 찌를 때가 있다는 걸 나는 새삼 떠올렸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철없는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도.
할머니는 공책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건너다보았다. 그러더니 팔을 뻗어 내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미 넘긴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쓸었다.
"니은아, 니가 시원하게 못 울어서 몸이 아픈 거다. 슬픔이 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몸을 두드리는 거지"
- 김형경, 꽃피는 고래, p.64 -
태어날 때부터 알던 것들 중에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리는 게 있다. 그중 하나가 시원하게 우는 법이다. 어느 순간부터 눈물은 점점 숨겨야 한다고 배웠다. 산타할아버지도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다고 하고.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도 하고. 정말 그런지도 모른 채, 우는 게 왜 부끄럽고 나쁘고 숨겨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슬픔이의 말은 점점 묻히고 무시당한다. 울어도 된다고, 마음껏 그래도 된다고 누가 말해준다면, 나는 과연 엉엉 울 수 있을까. 아니, 역시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얼마나 울고 싶은 순간을 견뎌왔는지 문득 가슴이 아리긴 할 것 같다.
"사는 게 다 빚 갚는 일이라 하더라. 나는 빚이 많아 세상에 오래 남아 있는 거지. 그러니 니은이 니도 때맞춰 밥 먹으러 오너라. 이 늙은이 도와주는 셈 치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밥 먹는 게 어떻게 할머니를 돕는 일인지.
- 김형경, 꽃피는 고래, p.65 -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어릴 때 외할머니도 나를 보면 자글자글하고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으로 내 이마를 닦아내듯이 몇 번이고 쓸어 넘기곤 하셨다. 그러고는 늘 새로 한 밥을 한 공기 가득 담아서 유일하게 먹는 햄 반찬과 함께 상을 차려주셨다. 사는 게 다 빚 갚는 일이라는 말이 너무 아프게 들렸다. 누군가의 밥을 차려주는 이의 마음 역시도. 그때는 몰랐던 외할머니의 마음이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슬쩍 이해될 것 같은 건 어쩌면 이 소설이 가진 마력 때문이 아닐까.
로스팅하다 틈틈이 페이지를 넘겼다. 마음잡고 읽을 수 있는 건 처음 한두 번 배출할 때뿐. 그 후로는 냉각까지 마친 원두를 정리하고 포장하다 보면 잠깐씩 엉덩이를 붙이는 게 고작이다. 칠백 그램 용량의 기계로 몇 키로 씩 볶아내려면 부지런히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하다 보니 알게 된 건 왼쪽 기계가 드럼 크기가 조금 작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 것. 처음에는 온도계 센서 문제가 원인인가 했는데 좌우측 기계 온도계를 바꿔달아도 똑같은 걸 보고 한동안 고민했었다. 왜 왼쪽 기계를 더 높은 온도에서 배출해야 하는지. 실은 간단한 거였는데 이해하는 데까지 이 년쯤 걸렸다. 드럼 크기는 작은데 같은 양을 투입하니 프로파일이 변한다는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이제야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심어둔 말을 더 많이 찾아내는 것처럼. 세상 일들은 암호 투성이다. 역시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말을 이해할 때도, 누군가의 마음을 공감할 때도. 나는 대개 첫 번째에는 주춤거리고 머뭇거린다. 쉽게는 다가갈 수 없다. 내가 건네고자 하는 언어가 섣부른 위로일지 철없는 사랑일지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