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어떤 줄기를 살리고 죽일 선택과 실행에 대한 자격이. 대지의 어느 지점에 못 박힌 채 움직이거나 저항할 수 없는 식물은 타인이 자신의 삶을 짓밟을 때 그저 당해야만 하는 걸까? 그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부들부들 떨지 않는다고 해서 생의 의지가 미약하다거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속단해도 되는 걸까? 그리하여 사람의 팔다리를 떼어내는 것보다 식물의 가지나 줄기를 잘라내는 것이 덜 잔인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런 행위를 더 잘 자라게 하고 더 예쁘고 싱싱한 잎과 꽃,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비록 상투적이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나는 의식과 감각은 명확하지만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목소리도 낼 수 없다. 어떠한 의사표현도 할 수 없다. 나름의 방식으로 뜻을 전달하려는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상대는 내가 보내는 신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는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생생히 느끼고 생각할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는 상태다. 당연하게도 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대는 지금 내 말라가는 양팔 중 한쪽이라도 살리기 위해 어느 팔을 떼내야 할지 진지한 고민에 빠져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다.
결정을 마친 그는 내 오른팔을 잡고 평소 사용되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꺾기 시작한다. 극도의 고통이 치밀지만 나는 어금니를 피나게 물 수도 몸부림칠 수도 없다. 눈앞의 사람을 걷어차려고 안간힘을 써도 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우두둑하는 느낌과 함께 오른팔이 덜렁거리며 축 처진다. 눈을 부릅뜰 수도 상대를 노려볼 수도 없음에 절망하지만 겉보기에 내 얼굴은 지극히 평소와 같으며 작은 변화조차 없다. 그는 덜렁거리는 내 오른팔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팔과 어깨를 잇던 피부와 근육은 탄성 한계까지 늘어나다가 결국 하나둘씩 툭, 툭 터지고 이내 가장 여리고 부드러운 지점에서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의식이 몇 번이나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저주스러운 감각을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한다. 누구에게도 이해받거나 위로받지 못한 채. 그저 당연하고 의례적이며 이성적인 타인의 판단과 선택과 결정에 의하여.
이 모든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어쩌면 나는 예전보다 더 쓸만한 왼팔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건강해지거나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 일이 단지 상상이나 이야기 속에서가 아니라 잠시 후 실제로 내가 겪을 일이라면 나는 내 앞에 선 사람에게 내 오른팔을 뜯어 왼팔을 성하게 만들어달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고통을 겪을 바에는 이대로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선택만큼은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대상이 식물이라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어떠한 저항도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존재라면(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무자비하게 마디를 꺾어 뜯기 전에 고민해야 한다. 그 일이 대상을 살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관상적 가치의 재고와 나의 미적 추구 혹은 탐스런 열매 맺음을 위한 이기적 선택인지를. 후자라면 기도하고 사과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모든 행위들에 어쩌면 깃들었을지 모를 기계적인 태도와 무감각한 폭력을 반성하고 씻어내야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어쩌면 신에게도 누군가의 삶을 의도대로 비틀 권한은 없다고 믿고 싶다. 부모라 하여 자식의 인생을 재단하고 꺾을 수 없는 것처럼 내게도 식물의 가장 건강한 줄기나 가지만을 남기기 위해 나머지를 싹둑 잘라낼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필요나 시스템에 의해 이러한 일들을 무감각하게 반복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태도는 명확하다. 그 존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감사하는 것.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 결실이 희생 속에 꽃피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아무렇지 않게 다른 존재의 삶을 비틀어 꺾지 않는 것. 자신을 돌아보고 그런 일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것. 이런 태도와 자각들이 자격 없는 자가 자격 없는 일을 행할 때 결코 놓지 않아야 할 마지노선이다. 비단 식물과 같은 힘없는 존재가 아닌 우리 인간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