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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Aug 24. 2022

책의 시간

독서 에세이

귀뚜라미는 오늘울고 있었다. 나 아직 살아있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찾는 아이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귀뚜라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더딘 내 손으로는 귀뚜라미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다가갔을 때는 이미 그 작고 재빠른 녀석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뒤였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어두었지만 있던 녀석을 내보내기는커녕 공연히 신입 귀뚜라미만 추가되어 솔로였던 울음소리가 듀엣이 됐다. 이를 어찌할까.


고요한 카페에 홀로 앉아있다 보면 저 울어대는 귀뚜라미조차 반가울 때가 있다. 귀뚜라미가 우는 이유가 무엇이건 내게는 친구를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마침 나도 그리움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확률은 반반이다. 감정이 더 치밀어 오르거나 아니면 잠잠해지거나. 바다 날씨처럼 서툰 내 마음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책은 읽다가 덮어도 늘 그 자리에 있다. 그 속에 든 이야기 역시 혼자 앞서 나가지 않고 나와 속도를 맞춘다. 마음이 동할 때 덮어 두었던 곳을 다시 펼치면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그게 책이 가진 매력이고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세상은 서두르라 재촉하고 말은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르다. 나는 느리고 더딘 사람이라 기다려주는 이가 필요하다. 책처럼, 글처럼, 사랑처럼.


나는 낡은 책이 좋다. 손때 묻은 책을 펼쳤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코를 갖다 다. 종이에서 알싸하게 풍기는 사람 냄새가 좋다. 그때부터 책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누군가가 옆에 앉아 그 책을 함께 읽는 것 같다. 그 순간의 대화가 나를 충족시켜준다. 외로움은 잦아들고 손과 발에서 김이 난다.


젖었다가 마른 것처럼 우글우글한 면을 만져본다. 비 오는 날 온통 젖고 말았던 가방에 들어있던 책일까. 물이나 커피를 쏟아서 급히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이미 축축하게 젖은 뒤였을까. 휴지로 꾹꾹 눌러 닦아도 한번 젖은 책은 처음의 매끈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처럼. 내가 12살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흔적들이 몸과 마음에 남아 현재를 빚어내는 것처럼. 나는 그 책을 꼭 안아준다. 그러면 소리가 난다. 마치 잠들기 전 아기가 칭얼대는 것처럼 책의 영혼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낡은 책을 좋아하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은 얽히고설킨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서가에 꽂혀만 있던 책은 출고하고 주차장에만 세워둔 자동차처럼 허무하다. 마치 첫 문장 하나밖에 없는 소설처럼, 그 이야기엔 살아온 흔적이 없다.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하고 깨끗한 그 모습에 나는 정이 가지 않는다. 읽히지 못한 책들이 잔뜩 꽂힌 서가는 책들의 공동묘지 같다. 묘비처럼 세워진 제목들로부터 귀곡성이 들린다. 나는 망가진 것들이 좋다. 내가 그런 인생을 살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책은 그저 읽히지 않고 가슴에 스며든다. 동시에 그 책에도 읽은 이의 시간이 묻는다. 그 손때 묻은 시간들이 책에게는 역사가 된다. 가방에 늘 두세 권의 책을 넣어 다니다 보면 어느새 모서리가 닳아 있다. 그리고 꼭 어느 한 권은 눌리거나 구겨져 있다. 손으로 꾹꾹 눌러 펴 보지만 주름은 남는다. 그날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책만 읽는다. 구겨진 부분을 의식적으로 힘주어 누르고 당기면서. 물론 달라지는 건 없다. 헌것이 다시 새것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다만 미안한 만큼 더 그 책을 사랑스럽게 눈에 담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음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그 시간만큼 정이 든다. 친구처럼 정이 든 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어도 외롭지 않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서먹하지 않은 것처럼. 지나가다 문득 그 책을 보면 펼친 순간들이 떠오른다. 사소하지만 참 기분이 좋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페이지에 날짜와 시간을 써 둔다. 맨 앞에는 그 책을 처음 펼친 날짜와 마지막 장을 덮은 날짜를 쓴다. 책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다시 펼쳤을 때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의 설렘과 감정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접어둔 페이지를 펼쳐본다. 무엇이 그 순간 그를 사로잡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벚나무를 오르는 개미처럼 나는 책 속의 꿀단지를 찾아 헤맨다. 벚나무 이파리에는 자그마한 꿀단지가 숨겨져 있다고 누가 그랬다. 여기 좀 와 봐, 나한테 꿀 있어 하고 개미들을 불러 모은다고. 개미들이 부지런히 벚나무 이파리들을 오가며 꿀을 채취하다 보면 자연스레 수정을 돕게 된다. 그 덕에 우리는 매년 4월 말이면 곳곳에서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다.

내게도 꿀단지를 찾아 책 속을 헤매는 개미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어디에선가 벚꽃이 핀다. 분리되어 있던 생각들이 모아지고, 어떤 것들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듯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시간이 흘러가듯 글이 만들어지고 나도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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