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찾았어요.”
희영은 손에 쥔 녹슨 열쇠를 높이 들어 보였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열쇠를 꽂을만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희영과 나는 다시 앞쪽으로 돌아왔다. 잠긴 문을 한참 들여다보던 희영은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다가가보니 페인트가 유독 두텁게 칠해진 곳이 보였다. 문의 허리쯤 되는 위치에 둥글고 납작하게 튀어나온 부분이었다. 그녀는 열쇠로 페인트를 사정없이 긁어내기 시작했다.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습한 공기를 타고 날카롭게 퍼졌다. 나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으나 희영을 말릴 수 없었다. 곧 털실만한 굵기의 검은색 틈이 모습을 드러냈다. 희영은 망설임 없이 열쇠를 꽂았다.
철컥!
이음새가 맞물리며 문이 안쪽으로 끼익-하고 열렸다. 나는 희영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희영은 내게 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머리 왼쪽이 쿡쿡 쑤시는 것 같았다. 마당에 들어섰을 때 그녀가 문을 놓았다. 문은 철컥하며 잠겼다. 나는 스위치를 몇 번이나 조작하며 문이 다시 열리는지를 신경질적으로 확인했다. 테스트를 마치고 돌아섰을 때, 희영은 이미 마당 저편까지 들어가 있었다. 풀잎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모습이나 흙을 파해치는 희영의 모습에서 거리낌은 찾을 수 없었다. 간간이 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는 희영의 걸음을 피해 도망치느라 바빠 보였다.
희영은 말릴 새도 없이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잡아당겼다. 문은 저항 없이 열렸다. 직사각형의 휑한 공간이 드러났다. 누가 봐도 버리고 간 것 같은 부서진 서랍장 하나가 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희영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어? 또 피아노 소리가 들려요."
나는 등줄기로 지렁이 수백 마리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희영은 부엌 쪽으로 가서 옆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는 방문 앞에 멈춰 섰다. 손잡이를 돌려보던 희영은 "열려있어!"라고 소리친 뒤 어깨로 문을 세차게 밀기 시작했다. 희영이 어깨를 부딪힐 때마다 문틈이 손가락 굵기만큼 벌어졌으나 그 이상은 열리지 않았다. 희영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구경만 말고 이리 와서 같이 좀 밀어봐요!”
희영의 목소리는 텅 빈 집 내부를 새벽종처럼 울렸다. 나는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희영을 이대로 끌고 나갈 수도 없었다. 방은 안쪽에서 누군가가 막아둔 것 같았다. 억지로 밀치고 들어갔다가 무슨 꼴을 보게 될지 겁났다. 나는 희영을 달래 보기로 했다.
“더 이상은 아니에요. 어서 나가요, 우리.”
“안에서 처녀귀신이라도 튀어나올까 봐 그래요?”
"계속 그러면 혼자서라도 갈 겁니다."
“겁쟁이.”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전혀 반갑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요.”
희영은 코웃음을 쳤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애처롭게 나를 불렀다.
“정말 혼자 갈 거예요?”
나는 돌아보지 않고 버텼다. 희영은 누그러든 음색으로 말했다.
“휴... 같이 밀어달라고 안 할 테니까 잠깐 이쪽으로 와봐요.”
나는 한숨을 쉬며 희영에게로 다가갔다. 그녀가 문틈을 손으로 가리켰다.
“잘 들어봐요.”
나는 문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때 밖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영과 나는 창문 밑에 납작 주저앉았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다시 밖은 고요해졌고, 그녀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눈동자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입모양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럼 내가 해요?'
아무래도 그게 더 위험할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