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문 바로 옆으로 기어가서 벽에 등을 붙인 채 서서히 일어섰다. 그리고 눈만 살짝 내밀어 밖을 쳐다봤다. 바깥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울타리 문이 열려서 덜컹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한번 더 밖을 살핀 뒤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휴... 바람 때문인 것 같아요.”
“확실해요?”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직접 확인하던가요.”
희영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희영의 이마와 코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는 희영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희영은 순간 움찔했으나 손을 쳐내거나 몸을 빼지 않았다. 나는 이마를 한번 더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런데 계속할 거예요?”
희영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성호 씨는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희영은 풀 죽은 모습이었다.
“그럼 나가요.”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조금만 있다가요. 소나기가 심해요.”
희영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금방 그칠까요?”
나는 우두커니 허공을 보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런데 저 안이 왜 들어가고 싶어요? 희영 씨는 무섭지 않아요?”
“... 모르겠어요.”
“역시 그렇죠?”
“무슨 말이에요?”
나는 웃었다. 희영은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러왔다. 나는 피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가요. 비가 그쳤어요.”
희영은 벽에 귀를 가져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어깨로 밀치던 문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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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의 흔적은 아직 선명했다. 숨을 쉴 때마다 몸속에 차가운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아파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손에 힘을 풀었다. 희영이 눈썹을 찌푸린 채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희영의 손을 잡고 있었던 건 그저 우연이었을까? 그녀는 이미 저만치 앞을 걷고 있었다. 나는 희영을 쫓아가 다시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희영은 그물을 자유자재로 빠져나가는 물고기처럼 나를 피해 달아났다. 운동화에 축축한 기운이 스몄고, 코 끝에 서린 이슬방울이 입술을 타고 흘러들어와 가끔 재채기가 나왔다. 나는 희영을 불렀다.
“어딜 가는 거예요? 왔던 방향은 저쪽이에요.”
희영은 나와 내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힐끔 쳐다보았다. 희영의 눈빛은 날이 서 있었다. 나는 주춤거렸다.
“그쪽은 나빠요.”
희영은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안고 부르르 떨었다.
"거기에는 나쁜 사람들이 몰려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녀가 콧바람을 뿜으며 눈을 치켜떴다.
“흥,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은.”
"아직도 들려요?"
"아뇨. 이젠 안 들려요."
희영은 이제 희미해진 푸른 지붕의 흔적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돌아가요, 이제."
희영은 걸어가면서 확인하듯 내게 되물었다.
"분명히 들었죠? 성호 씨도?"
바람이 풀숲을 쓸고 지나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영은 웃었다. 메마른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