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5)

5. 애미 목숨 앗아간 년

by 작가 전우형

5.


죽음. 이 두 글자에 대해 희영은 오래도록 고민했다. 희영에게 이 말은 영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희영이 영숙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성호의 죽음 때문이었다. 성호는 희영이 다섯 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급발진하던 SUV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3km를 질주하다가 성호가 몰던 모닝과 정면추돌한 사고였다. 성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성호는 한시도 희영을 혼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성희는 하얀 천으로 덮인 성호의 시신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보 같은 오빠. 그래도 잘했어. 정말 잘했어."

희영은 성희의 오른손을 잡고 서 있었다. 희영의 품에는 성호가 아침에 주고 나간 커다란 피카추 인형이 안겨 있었다. 희영의 생일은 영숙의 기일이었다. 그날도 성호는 희영과 함께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성희에게 데려다준 뒤 홀로 영숙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희영은 성호의 장례식장 한쪽 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검은색 상복은 아직 다섯 살 희영에게 너무 크고 버거웠다. 희영은 그곳에 앉아있기 전까지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결핍이나 공백도 느껴본 일이 없었다. 문제는 혜옥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태어나서 처음 본 혜옥은 다짜고짜 희영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나면서 애미 목숨 앗아간 년이 아비라고 성하게 놔뒀을까.”

희영은 '애미 목숨 앗아간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잠에서 깼다. 성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미쳤어? 그게 손녀한테 할 소리야?"

혜옥은 성희에게 떠밀려 빈소에서 밀려났지만 희영은 오히려 성희의 말이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엄마? 엄마라고?’

희영은 혜옥을 돌려보내고 힘겨운 얼굴로 돌아온 성희에게 물었다.

“저 할머니가 고모 엄마야?”

성희는 희영의 머리를 꾹꾹 눌러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희영은 얼굴이 일그러지면서도 성희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 아이가 태어날 때 죽는 거 아니었어?”

“아빠가 그러던?”

성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희영을 품에 당겨 안았다.

“맞아. 엄마들은 아이를 낳다가 죽어. 한 번씩은 다 죽어.”

희영은 성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이 차오르며 입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엄마’는 ‘죽음’이 됐다. 희영은 자신이 엄마와 죽음을 바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와도 바꿨다고 생각했다.


**


나는 희영과 함께 돌아왔다. 희영은 그곳과 가까워질수록 안색이 핼쑥해졌다. 희영은 내 손을 뿌리치며 혼자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내 옆에 있으면 안 돼요. 그럼...”

“죽어요?”

희영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희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증명할게요. 당신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는 걸.”

“성호 씨는 무섭지 않아요?”

물론 나는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튀어나온 대답은 달랐다.

“내가 무서운 건 희영 씨예요.”

"..."

“희영 씨는 너무 위태로워요. 그게 나를 두렵게 해요. 그러니까.”

“내게 바라는 게 있나요?”

“옆에 있게 해 주세요. 옆에만.”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내 옆은 비어있지 않아요.”

나는 기다렸다. 희영은 불편한 기색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아무도 있을 수 없다고요. 당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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