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행이라는 개소리
6.
희영의 기억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희영에게서 성호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외웠다. 나는 성호가 되어야 했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희영과 나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하지만 결혼 하루 전날 공주대교에서 큰 추락사고가 있었다. 희영이 탄 차는 공주대교의 두터운 가드레일을 뚫고 금강으로 곤두박질쳤다. 삼 개월 만에 정신을 차린 희영은 사고 이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성호, 성호는 어디 있어?"
희영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희영은 정신과 병동으로 옮겨졌다. 희영은 '성호'라는 이름에만 반응을 보였다. 내가 처음 "성호가 누구야?" 하고 물었을 때 희영은 "내 아이"라고 대답했다. 희영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 없는 아이가 있는 것처럼 아빠 없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다만 사고의 충격이 희영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무너트린 게 아니길 누군가에게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었다.
친구들은 내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침대에서 발버둥 치는 희영을 바라보았다. 두 명의 건장한 남자 보호사는 희영의 팔다리를 내리누르며 내게 입모양으로 '빨리'라고 말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아이를 안은 자세를 취하며 희영에게 말했다.
"희영 씨. 성호 여기 있어요."
희영은 발작을 멈추었고 보호사는 슬며시 희영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희영은 내게서 성호를 조심스럽게 받아가서 얼렀다. 보호사 두 사람은 희영을 살피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해맑은 얼굴로 '성호'를 달래는 희영을 보며 친구들이 말한 '다행'이라는 말을 재차 곱씹었다.
희영의 재활은 쉽지 않았다. 희영은 기억뿐 아니라 감정까지 널을 뛰었다. 성호가 보고 싶다고 방방 뛰다가도 갑자기 시든 무나물처럼 풀이 죽었다. 희영은 마네킹처럼 허공에 눈을 맞춘 채 앉았다가 거울 앞으로 달려가서 얼굴을 문질렀다. 달려 나간 희영의 뒤를 따라나섰다가 문 앞에서 튀어나오던 희영과 머리를 박았다. 나는 주저앉아 이마를 문지르며 희영과 웃었다. 희영도 그때만큼은 해맑게 웃었다. 나는 희영을 안고 울었다. 희영은 내 등을 쓸어내리며 나를 달랬다. 그러나 나를 갉아먹는 건 따로 있었다. 희영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희영은 가끔 저장된 모든 기록이 삭제된 컴퓨터처럼 건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때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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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 언제 생긴 거예요?”
희영은 양말 목 패드에 시선을 묻은 채 내게 물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원형 패드는 이미 탁자를 덮을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희영은 코를 만들어 다음 양말 목을 연결시키는 작업에 열중했다. 단조로운 작업과 달리 결과물은 점점 형태와 색감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나는 희영이 만든 결과물에 빠져들다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 몸에 있는 상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손을 펼친 뒤 마른오징어 굽듯 앞뒤로 뒤집었다. 최근 며칠 동안 손을 자주 다쳤다. 타이어를 옮기다 삐져나온 철심에 구멍이 뚫린 엄지와 검지손가락이 있었다. 깨진 더치 기구를 만지다가 살이 뭉텅 베인 자국은 아직도 핏자국이 남은 채였다. 침대 프레임을 새로 고정하다가 가시가 박힌 손바닥의 상처도 있었다. 한쪽 다리를 절면 다른 쪽 다리가 아파오는 것처럼 요 며칠 내 손도 그런 과정을 겪는 중이었다.
감추고 싶은 상처가 있었다. 타이어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했던 건 다름 희영이었으니까. 겨우 타이어 두 개를 옮기다 생긴 상처였다. 희영에게는 소심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평소에 알던 희영의 모습과는 달랐다. 희영은 큰 일에는 태연했지만 의외로 별 것 아닌 일들로 며칠을 끙끙 앓곤 했다. 그제야 손등의 묵은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요? 재작년이었나? 보도블록에서 뛰다 다쳤을 때 생긴 상처예요.”
나는 휴대전화 뒷면을 함께 보여주며 말했다.
“이 자국이 그 상처의 연장선이고요.”
이제 꽤 낡은 티가 나는 검은색 인조가죽 케이스의 아래쪽 모서리 부근에 가죽이 찢겨나간 자국이 있었다.
“체력단련 어플로 어울리지도 않는 칼로리 측정을 해보려던 게 화근이었나 봐요. 핸드폰도 무겁고, 주머니가 덜렁거려서 손에 쥐고 뛰던 참이었어요. 트랙이 있긴 했지만 그날따라 붐비기도 했고, 바퀴수가 줄더라도 크게 도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외곽을 빙 두르는 인도를 따라 달렸어요. 그러다 넘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손등으로 땅을 짚었지 뭐예요. 그 와중에 액정은 지켜보려고 했는지. 산 지 얼마 안 되긴 했었거든요. 너무 부끄러워서. 주변에 사람이 많았거든요. 다친 줄도 모르고 뛰어서 돌아왔는데 집에 오고 보니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여기, 새끼손가락 아래쪽 상처가 제일 심각했죠. 푹 파여서 뼈가 드러날 정도였으니까요. 뒤늦은 고통이 묵직하게 몰려왔어요. 씻고 소독하려고 샤워를 했는데 이가 갈릴만큼 아팠어요. 그만한 통증은 오랜만이라 지금도 갑자기 이가 아픈 것 같네요. 아무튼 살이 채워지는 데까지 한 달쯤 걸렸을 거예요.”
나는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도 흉터가 선명하네요.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희영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가 내민 왼손으로 시선을 틀었다. 양말목을 꿰던 희영의 동작이 멈췄고, 나의 왼손과 희영의 왼손이 서로 마주 보며 평행을 그렸다. 희영이 말했다.
“여기 보여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