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회상
7.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자 희영은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왼손 새끼손가락 두 번째 마디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희영이 짚은 위치에는 바위틈처럼 깊고 굵은 자국이 손가락 마디에서 뻗어 나와 손등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자국은 희미했으나 선명하고 오래되어 보였다. 내가 무심코 흉터를 만지려 하자 희영은 손을 빼서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희영은 새끼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주 놀던 동네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중 원대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과 달리 소심하고 시야가 좁은 친구였어요. 그런데 원대 집 우편함에 행운의 편지가 도착한 거예요. 이 편지를 스물여섯 명에게 다시 보내지 않으면 엄청난 불행이 찾아온다나? 원대가 사색이 된 채 나타나서는 얘들아 나 좀 살려주라 하는데 딱하기도 하고, 듣고 보니 겁도 덜컥 나더라고요. 그런데 촌동네인 데다 컴퓨터도 드물던 시절이라 행운의 편지 스물여섯 장을 만드는 것부터가 일이었어요. 컴퓨터도 없는데 프린터나 복사기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그때 뒷산 중턱에 있는 교회가 생각났어요. 고모가 거기 목사님은 ‘주보’라는 걸 수십 부씩 만들어서 나눠주더라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우린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원대는 교회 앞에서 무섭다며 또 뒤로 빠졌어요.(이 대목에서 희영의 목소리가 잠시 사나워졌다.) 다행히 목사님께서 웃으시면서도 스물여섯 장을 복사해 주셨어요. 문제는 그때부터였어요. 원대가 동네 사람 집에 넣는 건 안된다는 거예요.(희영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콧김을 내뿜었다. 희영의 양볼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영 틀린 말도 아니어서 우린 두 명씩 짝을 지어 자전거를 타고 원정을 떠났어요. 다른 친구 둘이 입을 맞춰 빠져 버리는 통에 나랑 원대가 한 팀이 됐어요. 너른 논밭 사이로 집들은 듬성듬성 흩어져 있었어요. 몇 통 돌리지도 못했는데 자전거로 한참 걸릴 만큼 동네에서 까마득히 멀어졌어요. 지수도 대려올 걸 하고 후회가 앞섰어요. 아, 지수가 누구냐고요? 사촌동생이요. 고모 딸. 피아노를 잘 쳤어요. 예전에는 도내 콩쿠르도 나가고 그랬다는데. 고모가 이혼하고 좋은 선생님 모실 돈이 없었대요. 그 전에는 고모부가 벌이가 괜찮았거든요. 나는 지금껏 고모집에 있던 그랜드피아노보다 휘황찬란한 피아노를 못 봤어요. 고모가 끝까지 피아노만큼은 경매에 넘길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대요. 고모부 몰래 용달을 불러다가 피아노를 할머니 집으로 옮기기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그 일이 화근이 되어 고모부랑도 갈라서게 되었다고, 나중에 지수가 말해줘서 알았어요.(희영은 빈컵에 남은 몇 방울을 붓고 입맛을 다셨다. 나는 컵에 물을 채워왔다. 희영은 몇 모금 더 마시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무튼 편지를 돌리다 보니 공항 근처까지 갔는데 이미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어요. 지치기도 하고 돌아갈 일도 걱정이라 눈앞이 캄캄해졌는데 갑자기 왼손이 불같이 화끈거렸어요. 그러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는데 알고 보니 담벼락에 왼손을 긁으면서 죽 미끄러졌던 거예요. 원대야, 나 손에 피나, 하는데 원대는 말로는 어쩌냐, 많이 아파? 하면서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그럼 넌 여기 있어, 세 통만 마저 돌리고 올게 하고 멀어지는 거 있죠?(희영은 이쯤에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혼자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따라가는데 떨어지기 시작한 해는 뭐가 그렇게 빠른지. 그때 휴대전화나 있었겠어요? 막막하고 화도 나서 씩씩거리는데 혼자 돌아갈 엄두는 안 나고. 휴... 이 상처는 그때 생긴 거예요. 어때요? 재밌죠?”
나는 희영의 말을 듣고 있다가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사연 가득한 흉터네요.”
“기억 못 하는 유일한 상처도 있어요.”
희영은 오른팔을 높이 들어 보이며 팔과 가슴 사이를 가리켰다.
“여기 화상 자국이 있어요. 아빠는 하숙집을 했대요. 촌동네지만 시내버스 한 번이면 부산으로 나갈 수 있어서 손님도 제법 있었다나 봐요. 그날따라 수도도 얼고 아침 준비가 더뎌서 아빠도 마음이 조급했나 봐요. 팔팔 끓는 시락국을 들고 문지방을 넘다가 엎드려 놀던 제게 걸려 넘어지셨대요. 상이 엎어지면서 뜨거운 뚝배기가 제 등에 쏟아졌는데 아마 난리도 아니었을 거예요. 고모가 옷을 입히며 말해주셨어요. 그날 아빠가 병원에서 많이 울었다고. 남의 자식들 챙기느라고 내 자식 몸에 흉 지게 만들었다며 몇 시간을 펑펑 울었다고. 오빠가 그렇게 우는 거 처음이었다고. 그때 저는 아빠가 누군가에게 오빠이기도 하다는 걸 처음 알았죠.”
내가 수없이 보았던 상처. 잠자리에 누우면 가장 먼저 쓰다듬던 상처. 가슴 옆에서 시작해 겨드랑이와 팔 안쪽, 날갯죽지와 오른쪽 등을 지나 척추부근까지 이어지는 상처. 내가 기억을 곱씹는 동안 희영은 일직선으로 그어진 다른 상처를 보여주었다.
“여기 보여요? 한 줄로 길게 그어진 자국. 이건 중학교 때 생긴 거예요. 학교 마크를 교복에 박음질하거나 아니면 철제 배지를 달아야 했어요. 빼먹는 날에는 교문에서 선도부나 학주에게 붙잡혀 호되게 경을 치러야 했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친구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거예요. 나 배지 안 달고 왔어. 어쩌지?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친구를 이끌고 옆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어요. 여기서 기다려. 먼저 통과한 다음에 여기로 배지를 던져줄게. 알았지? 친구는 두려운 얼굴로 끄덕였어요. 그런데 걸리면 어쩌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교문을 통과했어요. 그런데 제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굳어 있었나 봐요.(희영은 여기서 또 씁쓸하게 웃었다.) 학생 때 제 별명이 ‘생중계’였거든요.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친구들이 그렇게 놀려댔어요. 야, 희영이 또 생중계한다. 아마 그때도 그랬나 봐요. 매점 뒤편으로 가서 담장 앞에 섰는데 뒤에서 학주 목소리가 들렸어요. 거기, 너. 어, 그래, 너. 이리 와봐. 저는 너무 놀라서 배지를 손에 쥔 채 급히 돌아섰어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그런데 학주 표정이 너무 질려 보이는 거예요. 내가 그 정도로 심한 나쁜 짓을 한 건가? 머릿속이 헝클어지던 순간 뜨거운 기운이 손목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어요. 배지 뒤쪽에 날카로운 핀이 달려 있었거든요. 돌아서면서 저도 모르게 그걸로 손을 그었던 거 있죠.”
나는 희영의 하얀 손목을 보며 말했다.
“작은 손에 많은 게 담긴 것 같아요.”
“이 상처들 묘하게 닮지 않았어요? 어쩐지 연결된 것 같아.”
희영은 문득 시선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목소리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묻어 나왔다.
“이상해요...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된달까?”
나는 희영의 한숨이 신경 쓰였다. 벌써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였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의사는 희영의 말을 최대한 많이 들어주라고 했다. 기억의 반추는 잊혔던 새로운 기억을 자극하기도 한다고. 그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희영의 이야기에는 새로운 것들이 조금씩 추가되어가고 있었다. 기억의 공백이 메워져 갈수록 희영의 혼란도 잦아드는 것 같았다. 여전히 성호를 찾아 침대 밑을 기어 다니긴 했지만. 희영에게 성호가 세명이라는 것도 알았으니까. 그건 커다란 소득이었다.
아빠, 아이, 그리고 첫사랑.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