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8)

8. 소개팅

by 작가 전우형

8.


희영을 처음 만난 건 주차장에서였다. 은색 세단 한 대가 입구 가장 가까운 자리에 주차했고, 3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차주에게 연락하기로 결심했다. 은색 세단은 선팅이 짙어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을 보기 위해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댔다. 그때 드르륵 하고 창문이 내려갔다. 안에 타고 있던 여자는 나를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말없이 노려봤다.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사과 한마디 없는 여자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아줌마. 차를 몇 시간째 세워두는 거예요?”

“아. 줌. 마?”

차문이 소리 나게 닫혔고 여자는 내 앞에 꼿꼿이 섰다.

“다시 말해봐요.”

나는 여자의 당당함에 기가 눌렸다.

“아니, 차를...”

“차를 뭐요? 여기 주차장이 다 당신 거예요?”

“그게 아니라, 벌써...”

여자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지금 몇 시죠?”

“...”

내가 이제 알았냐는 표정으로 보고만 있자 여자는 입술을 비틀어 깨문 후 다급히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제야 나는 여자의 뒷머리가 불에 그슬린 것처럼 엉키고 꼬부라든 걸 발견했다. 11월에 히터도 켜지 않은 차에서 몇 시간을.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그날 소개팅이 있었거든요.”

“카페에서?”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한 시간은 서있었을 거예요.”

“역시 그렇죠?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식사라니, 밥알이 넘어가기나 할까요? 정말 난센스라니까.”

“낯설어서 싫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다만...”

“다만?”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옷을 잔뜩 들고 들어가는 걸 봤어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른 손님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옷들이 다...”

“다?”

“여자 옷이었어요. 그것도 엄청 화려한.”


희영은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살펴보았다. 조금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얻어 입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만큼 맞지 않는 옷들이었다. 고르고 골라 입었지만. 상대는 개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그런 사람과 내가 어울릴 수 있을까.


“그때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무작정 차를 돌렸고 보이는 대로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웠어요.”

“그럼 그게?”

희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난히 텅 빈 주차장이 있더라고요. 사실 거기가 카페인지도 몰랐어요. 머릿속이 펄펄 끓는 가마솥 같았거든요. 뜨겁고 답답해서 얼음물에 빠지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차에서 내렸을 때 희영 씨는 너무 추워 보였어요.”

“성호 씨는 외로워 보였고요.”

“그때 우린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죠.”

“불편했다면 아무리 권했어도 들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유리 너머로 안쪽을 보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어요. 차나 한잔하고 갈까?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그때 운이 좋았나 봐요.”

“거짓말.”

“나도 사람이 편한 성격은 아니에요.”

“지금도 그대로인가요?”

“아마도?”


희영은 손끝을 만지작거리다가 후-하고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때 그저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사실 놀랐어요. 갑자기 자리를 옮겨와서 앞에 앉았을 때. 결국 커피만 마시고 일어났지만요.”

“막상 앉으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리 편한 인상은 아니었겠죠.”


희영은 다시 양말 목을 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유심히 보지 마세요.”

“좋은 구경거리인걸요.”

투덜대면서도 쉬지 않던 희영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성호 씨도 해봐요.”

희영은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는 양말 목 하나를 쥐어주었다.

“이건 양말 목이라는 건데, 양말 만들 때 발가락 있는 쪽은 조금 두텁게 만들잖아요? 그러면 겹쳐지는 부분이 꼭 이런 모양으로 남는데, 모아서 헐값에 팔거나 거저 주기도 한데요.”

나는 손을 붙들린 채 희영의 수업을 강제 수강해야 했다.

“색이 제각각이라 먼저 어울리는 색을 모아야 해요. 개수를 세서 모아뒀다가 하나씩 걸어요. 그리고...”

희영은 두 개를 남기고 멈췄다.

“이렇게 마지막에는 두 개를 한코에 걸어주면 돼요. 둘레를 맞춰주는 거죠.”

희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해보세요. 옆에서 봐줄게요.”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가 희영의 사기 피해자 같은 얼굴에 동작을 멈췄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고장 난 기계처럼 손을 움직였다. 희영의 눈은 흥미로 가득 차 보였다. 희영은 가끔 손을 내밀어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주었다. 조금 익숙해지면서 속도가 붙었다. 내 손은 어느새 바닥을 긁고 있었다. 희영에게서 우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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