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11)

11.

by 작가 전우형

11.


풀벌레 울음이 들렸다. 풀벌레들은 수수께끼 같은 언어를 서로 주고받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내게도 그날 밤은 비밀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도 없었을 공간에 그림자가 아른거린 건 실타래 같은 달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리 아래는 유난히 어둡고 캄캄했다. 예전처럼 다리 밑에 거리의 부랑자들이 모여들던 시절이 아니었다. 금강 건너편으로 공산성의 야경이 연등행렬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주오는 이들을 피해 걷는 게 번거로웠던 나는 부러 강에 더 가까운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다듬지 않은 풀들이 가끔 정강이 깨를 걸고넘어졌으나 사람을 피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피곤했다. 인간에게 인간만큼 번거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나는 강에 비친 공산성의 주름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무연히 풀숲을 밀어낼 뿐이었다.


눈을 감으면 금강의 소요가 귀를 간지럽게 했다. 매끈한 모습으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강물은 그 자체로 공주의 밤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그 거울을 타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다르고 독특했다. 신발을 끄는 사람, 사뿐사뿐 걷는 사람. 아이들의 자유분방하고 가늠할 수 없는 발걸음. 먼 곳에서는 타이어가 무던히 자신을 마모하며 밤길을 달렸고, 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가 쇠스랑 끌 듯 찌르르 울기도 했다. 바람이 강의 얼굴을 매만졌고, 그리고... 울음소리.


울음소리?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물을 내게 들킬 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들었다’. 그리고 끅끅거리며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다시 고막을 분명히 두드리는 걸 느꼈다. 공기의 질감이 변하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다른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 밤은 필연이었다. 내게는 오직 그녀의 흐느낌밖에 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으로 벽을 짚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때, 나아가야 할 때, 나는 두려웠다.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소리가 만든 길은 나를 강물처럼 이끌었다. 철가루가 자력에 이끌리듯 나는 공주대교 아래로 향했다. 첫 번째로 울고 있던 그녀의 옆에서 밤을 지새운 건 추석 다음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공주를 처음 방문한 날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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