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할수록 이득이에요. 그건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기만 하거든요.”
그녀는 무척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그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묻지 못했다. 어떤 것도.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죠?”
그녀는 강 쪽을 주시하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들은걸 거예요. 저는 안 울거든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말았다.
“역시 믿지 않는군요.”
내가 말을 꺼내려했을 때 어깨에 무게가 실렸다. 그녀가 기울어진 채로 기대 있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아기처럼 울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공명하듯 금강이 함께 울기 시작했다. 습기를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달이 기울어갔다. 하늘을 삼분의 이쯤 채운 공주대교 옆으로 달빛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빛을 받아 다른 누군가를 비추는 것. 눈부시지 않게 다른 이의 세상을 조금 더 밝게 하는 것. 그러자 모든 것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새 기울어졌던 머리를 들고 아스라이 퍼지는 빛무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려고 하면 여기로 와요. 그럼 금강이 저를 대신해서 울어주거든요. 강이 저보다 더 슬퍼 보여서 내가 불행하다는 느낌을 지워줘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말이 적나요?”
나는 고개를 저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더 빨랐다.
“묘한 곳이죠 여긴. 저는 여기만 오면 혼자 떠들게 돼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고개만 끄덕여야 했다.
“우린 원래 비슷하다는 말이에요.”
그런가?
생각은 길었다. 눈을 깜박일 만큼. 우리가 비슷하다는 그녀의 말에 무임승차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었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고마워요.”
뭐가 고맙다는 걸까.
“모른척해줘서.”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려했다.
“먼저 일어서서 당겨줘야죠.”
당돌한 눈빛이었다. 나는 군말 없이 일어섰다. 그녀도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희영이에요. 제 이름.”
그녀는 이내 멀어졌다. 몇 발자국 앞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금강에 한번 튕겨 돌아왔다.
“말하지 마세요. 더 오래 모르고 싶어요.”
그녀는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저 앞으로 공주대학교,라고 쓰인 빛나는 글씨가 보였다. 나는 한참을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는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저녁 밤, 나는 다시 공주를 찾았다. 그날도 그녀는 거기 있었다.
공주대교 아래, 달빛의 그림자가 금강과 만나는 곳.
**
“늦었어요.”
우리가 약속이라도 했던가.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어요.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나는 주춤거렸다. 그녀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사는 거니까.”
그녀가 앞장섰고, 나는 그녀의 뒤에서 걸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끔 어깨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실은 편의점 알바 자리를 구했거든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길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구멍가게 같은 편의점이 골목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녁 먹을 시간은 돼요. 열두 시부터 거든요.”
금강에게서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라도 배운 걸까.
“왜 그렇게 봐요?”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마음속의 무언가가 급격히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냥. 느껴질 때가 있어요. 고요한 울림이. 당신의 목소리가.”
그녀가 돌아선 탓에 우리의 거리는 압축되었다. 그 밀도 높은 공기를 타고 그녀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두드렸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