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계란 프라이가 맛있는 집이었다. 길 건너에서 야트막하게 찬송이 들려왔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공주대학교 근처를 지날 때는 잠시 인파가 붐비기도 했으나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무렵 소요는 마법처럼 잦아들었다. 소나기가 멎은 오후처럼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닮았어요."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었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계란 프라이와 찬송가 말이에요."
나는 계란 프라이의 흰자를 젓가락으로 떼어먹는데 집중했다. 흘러나오는 찬송가에 귀를 기울이며. 찬송의 열기는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기다림은 견딜만했고.
"씹지 않아도 삼킬 수 있으니까요. 은은하고 감미로운 것도 그렇고요."
나는 젓가락으로 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눈으로 살폈다. 반짝거렸다. 계란 위에 솔솔 뿌려진 맛소금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낭만이 없군요. 자기도 맛있으면서. 그거 위선이에요."
그녀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계란 프라이의 마지막 조각에 젓가락을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위선 떨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빈 접시를 젓가락으로 탁 두드렸다.
"마지막 조각은 막내한테 양보하는 거 몰라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그렇게 치켜떠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
"흥! 동의하지 않는 얼굴이네요? 그럼 몇 살인지 맞춰봐요."
나는 고민했다.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물론 실례였다. 대체 그게 왜 실례가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자들 모두 앞다투어 그건 실례라고 하니까.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여자 스스로 자신의 나이를 맞혀보라고 하는 것도 실례라는 걸 그녀는 간과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할 수는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문제였다.
고민하는 모양새가 거슬렸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아까 한 말 취소!"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여전히 고민에 빠진 나를 두고 그녀는 이미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려 했다. 종업원은 이미 계산을 마쳤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골목 저편으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모서리를 비추는 곳에 다다라 있었다. 사라지는 그녀의 머리칼을 보며 급히 모서리를 돌았을 때 그녀의 그림자가 밟혔다. 그러나 골목은 비어 있었다. 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또 그곳이었다. 금강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공주대교 아래로 움츠러든 어깨가 신기루처럼 반짝였다. 나는 옆에 앉았고 그녀는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곧 일어났다. 열두 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편의점이 보이는 골목 입구에서 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미소는 나를 서글프게 했다. 이유도 모른 채 나는 그녀가 사라진 공간을 응시하다가 공주를 떠났다. 두 번째 밤이었다.
**
공기가 유난히 습하고 텁텁한 날이었다. 나는 배출한 원두를 쏟다 말고 벽을 짚은 채 숨을 골라야 했다. 답답함은 예고 없이 몰려왔다. 파랗게 질린 얼굴을 노려보다가 찬물로 몇 번이나 얼굴을 씻어 내렸다. 가슴 아닌 곳에서 숨이 막히는 느낌은 어색하고 처음 겪어보는 감각이었다. 드럼은 쉬지 않고 회전하며 그 안에 든 모든 것들을 열기로 휘감고 있었다. 드럼 스스로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몸을 뒤집어대는 것 같기도 했다. 몸을 뒤집으면 이 답답함도 좀 가라앉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선체로 상체를 바짝 숙였다. 금세 머리로 피가 몰리며 눈알이 팽팽해졌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으며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나는 멍한 채로 바닥에 드러누운 채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맡겼다. 벽지 대신 피스로 고정해 둔 마대자루에는 생두의 원산지와 농장 이름 등이 쓰여 있었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달린 백열전구가 모종의 충격으로 노란빛을 불규칙하게 쏘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차라리 정신이 말끔해진 나는 채프를 털어낸 뒤 원두가 가득 담긴 바스켓을 집어 들고 가벽처럼 막아둔 문을 열었다. 유리병에 원두를 소분하여 포장한 뒤 나는 좁은 틈을 비집고 엉덩이를 한쪽에 걸친 채로 숨을 골랐다. 옆에서는 거대한 선풍기가 벌떼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냈다. 거기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 이제 막 펼친 책의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그래서 82쪽은 117쪽이 되었다.
가방은 벽돌 꾸러미처럼 울퉁불퉁하고 무거웠다. 고심하고 선별한 결과 치고는 볼품없었지만. 뭐든 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게 있었다. 실상 펼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책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책을 펼치면 시간과 장소를 써두는 버릇이 있었다. 벌써 사흘 째 같은 페이지에 새 날짜와 시간이 새로 쓰였다. 이제 그 페이지는 117쪽이... 나는 책을 덮어서 테이블 저쪽으로 던져버렸다. 어지럽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젖은 휴지조각같이 꽉 눌러 물기를 짜내지 않으면 곧 찢어지고 말 것 같았다.
타이머를 맞추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속은 캄캄해졌다가 이내 환해졌고,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