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미루고 미루다
32.
언젠가, 행운은 나를 비켜갔다고 일기장에 쓴 적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여학생에게 바나나맛 우유를 건네러 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어깨를 치며 지나갔고 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바나나맛 우유를 떨어트렸다. 그날은 달이 없었다. 달아올랐을 얼굴은 어둠이 가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의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스탠드처럼 손등을 비췄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그 아이 눈에는 내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을 테지만) 한쪽 소매를 당겨 노란 우유병을 슥슥 닦았다. 그러고는 여학생에게 내밀었다. 여학생은 말없이 그걸 받았다. 그때 나는 그 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여학생의 이름은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입매가 한쪽으로 심하게 비틀어져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날 나는 여학생에게 가방을 가져다주기로 했었다. 학원을 나서는데 그 아이가 늘 앉던 오른쪽 맨 앞자리에 가방이 그대로 걸려있는 걸 봤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은 밤 9시였다. 그 아이는 8시 반이 되면 문을 열고 먼저 나갔다. 그것도 앞문을 열고 당당히. 학원 선생님은 그 아이가 나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수업을 이어갔다. 며칠 전 한차례 소란이 있었다. 그 소란이 있은 후 나를 비롯한 학원 친구 모두는 그 아이가 학원을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대로 학원을 나왔다. 그리고 똑같이 8시 반이 되면 앞문을 열고 강의실을 나갔다. 바뀐 것은 학생들 잡기로 유명했던 노선생이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날은 열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몇 년째 책상 구석에 꽂혀있기만 했던 일기장을 꺼낸 것에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나는 그날을 특별한 날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일기는 기억하지 않기 위해 쓰는 거니까. 쓰면 잊히고, 일기장은 다시 펼쳐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언젠가, 하고 기억이 나는 건 일종의 부작용이다. 코감기약을 먹으면 졸린 것처럼. 월급을 받으려면 버텨야 하는 것처럼.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여학생의 가방이 여전히 내 등에 메어져 있다는 걸 안건 책상에 한참 동안 엎드린 다음이었다. 아까 떨어트렸던 바나나 우유를 닦은 소매로 눈가를 슥슥 문지르고 나서 나는 여학생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가방을 못 주고 왔네. 아까는 학원에 가방을 두고 갔네 였다. 그때의 답은 짤막한 주소와 함께 여기로 가져와 줄래? 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엄마가 저녁 먹었냐며 나를 불렀다. 억지로 앉아서 대충 몇 숟갈 뜨는데 입안에서 서걱서걱한 밥알들이 굴러다녔다. 엄마는 내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무슨 일은 무슨, 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일어섰다. 엄마가 밤에 어딜 가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나는 아까 여학생이 알려준 주소로 다시 찾아갔다. 학원 건물을 지나 15분 정도 더 걸리는 길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여학생의 가방은 가벼웠다. 사물함이랄 게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다. 책은 어디에 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잔뜩 하고도 시간은 남았다. 자꾸 아까 그 녀석들이 떠올랐다. 남자 둘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나를 툭 치고 지나간 뒤 몇 미터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리고 내려서 나를 쳐다봤다. 그보다 조금 뒤에 그 아이가 서있었다. 나는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내가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건 그런 이유였다. 아까 그 골목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그 아이는 없었다. 그리고 오토바이도 없었다. 다시 만나면 본떼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나는 휴대전화를 봤다. 여전히 답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밥상에서 맛이 왜 이래? 하고 말했다가 날아드는 밥그릇에 얼굴을 맞았다. 부모님은 말다툼을 시작했다. 나는 등교를 앞당기기로 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역시 그게 문제였다. 나는 생일이 다가오면 재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재혼했다. 그날도 내 생일이었다. 계부는 내 생일을 싫어했다. 엄마는 도둑처럼 조심스럽게 생일 케이크를 사서 내방으로 왔다. 엄마와 나는 초에 불을 붙이고 조용히 입모양으로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엄마에게 나 저 새끼 싫어하고 말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생일은 그런 날이었다. 나는 대충 그런 날마다 일기장을 펼쳤다. 거기에 쓰면 없던 일이 될 것 같았다. 다시 펼쳐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희영은 자신도 일기장을 들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거기 무슨 내용이 쓰여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그녀에게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다. 아는 오빠가 일기장을 높이 들고 읽으며 도망 다녔는데 그 후 희영은 일기장을 태웠고 다시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절필 선언이었다.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맥이 끊어져버린 희영의 문단은 의외로 수준이 높아서 나는 그녀가 가끔 장난처럼 쓰는 이야기들에 푹 빠져들곤 했다. 희영은 그렇게 말했다. 글은 폭탄을 담으면 시한폭탄이 되고, 저주를 담으면 예언서가 된다고. 나는 그럼 좋은 말을 담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희영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다 대답했다. 좋은 말을 쓰면 누가 읽냐고. 사람들은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는데, 주인공이 행복에 겨운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냐고. 그러니까 좋은 말을 쓰면 결국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해줬다. 바나나 우유를 주러 갔다가 실연당한 이야기를. 희영은 그 얘길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실연이 아니죠. 시작도 못했는데 헤어지는 게 어딨어. 그랬다. 그녀가 한 말은 모두 맞았다. 시작도 못했는데. 희영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날도 내 생일이었다. 역시 태어난 날은 재수가 없었다. 나는 초를 후- 불었다. 희영이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번에는 입모양으로만 부르지 않아도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