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33)

33. 이해

by 작가 전우형


원한다면 자신이 운 이유가 어제 연인과 이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배가 가라앉았기 때문인지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눈물을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고 희진은 생각했다. 그들은 어제 누구와도 헤어지지 않았을 테고, 또 그 배를 타본 적도 없었으니까. 아무리 설명해봤자 그건 그저 그들의 마음속에 당황스러운 눈물의 논리를 세워줄 뿐, 이해와는 거리가 멀 것이었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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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산타페 시동이 안 걸린다며 투덜거렸다. 나는 블랙박스 전원을 빼두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는 블랙박스가 문제가 아니고 배터리 용량이 문제라고 했다. 나는 그러냐고 하고 말을 접었다. 배터리 용량이 커도 며칠 씩 블랙박스를 켜 두면 대개 시동 문제를 겪는다고, 더군다나 동계절 기온이 내려가면 가뜩이나 배터리 전압이 낮아져서 디젤차들은 부쩍 그런 일이 잦다고, 엊그제 24시간 출동 서비스 기사가 안내해준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더 이상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배터리 용량이 문제가 아니라 매년 몇 퍼센트씩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기 때문에 삼사 년 정도 쓰면 배터리를 교체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옆에 세워둔 내 차의 배터리는 언제 교체했는지 물었다. 그러고서는 차를 어디다 세워뒀냐고 물었다. 보닛에 새똥이 잔뜩 떨어져 있다고, 저러면 코팅 벗겨진다고 핀잔을 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아꼈다.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후 점프선을 가져가 산타페의 시동을 걸어두고 왔다. 배기구에서 폐지 수레를 밀고 올라가던 노부의 입김 같은 하얀 연기가 컥컥거리며 올라왔다. 나는 그 연기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뭔가 몰두할만한 게 필요했다.


그 할머니는 자기도 목사라고 했다. 정확히는 목사'였'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니까. 레몬차가 달다며 불평하던 할머니였다. 자기가 당이 있어서 이렇게 달면 안 된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단거 안 좋아하신다고 하셨죠?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달아도 돼요, 조금만 달면 돼 라고 답했다. 조금만, 이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맞추기는 어렵고 틀리기는 쉬운 말. 조금만. 많이. 아니, 조금만 많이. 그래서 시비 걸리기 쉬운 말.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이번에도 입을 댔다. 그래도 달아. 청을 너무 달게 담았나 봐. 나는 대답했다. 네. 거기도 설탕은 들어가니까요. 여기가 전에는 연매출이 1억에서 1억 삼천이 나왔던 자리야. 나는 그 말이 왜 지금 튀어나오는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지금 왜 하시는 거예요? 말투에는 날이 서있었다. 나는 내가 이토록 인기가 많은 사람인가 잠시 고민했다. 왜 다들 나한테 말을 거는 거지? 나는 같은 문장을 세 번째 다시 쓰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기가 알던 이 '자리'의 전주인의 무용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 안이 이렇지 않았어. 예쁜 아가씨가 얼마나 아기자기하게 꾸미는지. 화초들도 파릇파릇하고. 커피만 판 것도 아니야. 빵도 팔고 화장품도 팔고 된장도 팔고 그랬어. 들어와서 앉을 곳이 없었어 그때는. '그때'라...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탁 하고 소리가 났다. 여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하나도 안 나네, 하고 할머니가 말을 잇던 참이었다. 나는 틀어두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을 껐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물었다. 나는 침착하게 대답해드렸다. 근데 여기 바닥은 왜 이렇게 해놨나 몰라. 이게 마음에 들어? 나는 되물었다.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 할머니는 눈을 끔벅끔벅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해둔걸 다시 뜯어요? 공사비가 얼만데? 10초 정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어이구 참. 할머니는 드르륵 의자 미는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할머니는 컵을 들고 뒤뚱뒤뚱 걸어와서 말했다. 이거 담아줘. 달아서 못 드시겠다면서요? 먹을 거 버리면 하나님께 혼나. 나는 순간 아연해졌다. 내가 움직임이 없자 할머니는 재촉했다. 뭐해? 이거 담아달라니까?


좀 전까지 그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서 전기세를 미납한 2층 세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스피커폰을 틀어두고 상담원을 연결했다. 그 대화는 흥미로웠다. 상담원은 남자 목소리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마구 섞여 들리자 당황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남자는 대답 대신 지금 그분이 앞에 앉아계시고요, 2년 치 사용내역을 뽑아주세요. 몇 호라고요? 203호. 아니 202호. 할머니와 남자는 그렇게 동시에 서로 다른 말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 팩스, 팩스! 팩스 없는데? 아니 있으니까 팩스로 달라고 하시라고요. 상담원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들으셨어요? 상담원은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내가 그 상담원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얼마 전 질린 얼굴로 이야기하던 희영이 떠올랐다. 공연 단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희영은 그 대화를 나누기 이틀 전에 창백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했었다. 너무 힘들어서 조퇴를 쓰고 왔다고. 그날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 차마 묻지 못했던 것을 그날에야 나는 조심스레 물을 수 있었다.


공연 단장은 다음 일정이 너무 바빠서 기념사진 촬영이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 희영이 그럼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번에 촬영을 마치는 건 어떤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연 단장은 여전히 바삐 어딘가와 통화하며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희영은 각반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안내해 한 곳에 모았다. 공연 단장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촬영이 어렵겠는데요? 그냥 반별로 촬영하죠?라고 말했다. 희영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좋겠다고 하며 모인 학생과 선생님들을 물리치고 다시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단장은 아, 이러다 늦겠는데? 를 반복하며 구시렁댔다.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가운데 공연 단장의 목소리는 희영의 귀에 쏙쏙 박혔다. 거기다 대기하던 학생들의 협조가 어려워지며 곳곳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희영은 가까스로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그들을 전송했다. 희영은 단장에게 다음 일정을 물었다. 그들의 다음 일정은 '점심식사'였다.


희영은 말했다. 그 사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더라고요. 이랬다, 저랬다, 말을 몇 번이나 바꾸는지. 그 사람들 탄 버스가 떠나고 나니까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기 직전이었어요. 그럴만했다. 모두가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는 앞에서 제멋대로 말을 바꾸는 사람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상황. 희영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희영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영우 씨라면 그때 어땠을 것 같아요? 난감했겠죠. 나라면 한 대 쥐어박았을 것 같은데? 다음엔 그런 사람 있으면 뒤통수를 갈겨버려요. 희영은 입가가 희미하게 벌어졌다. 아무 말도 못 할 거면서. 그러니까 이해라는 건 정말 힘들다고. 어찌 보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소설에서 김연수 씨도 그러잖아요. 저는 포기할래요. 무슨 말을 해도, 사실을 말해도, 그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테니까. 희영은 난로 앞에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불 쬐요. 바깥으로 굵은 진동이 훑고 지나갔다. 나는 잠시 밖을 보다가 천천히 희영의 옆에 섰다. 희영이 말했다. 말은 그저 말이에요. 정말 중요한 건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나는 물었다. 그럼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그녀가 말했다.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이해가 '되는'거지. 그래요 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희영은 얼른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에 헤아릴 수 없는 밝음이 묻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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