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이 집중되면 '권력'이 된다.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기득권 세력은 어떻게든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권한이 집중되면 '권력'이 되고, 권력이 집중되면 '기득권'이 된다.
* 기득권(vested rights, 旣得權) : 특정한 개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출처 : 두산백과)
이미 차지한 권리를 어찌할 수 있으랴마는, 그것이 정당한 절차를 밟았는지가 문제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므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즉 적법하게 취득한 권리는 정당한 것일 텐데.
기득권이란 사람이 이미 획득한 권리로서 국가라 할지라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 기득권은 법률에 의해서 이미 주어진 권리이다. 주로 개인의 재산권에 대하여 주장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사유재산의 확립에 이바지한 이론이다. 예를 들면 20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퇴직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여 25년 근속한 공무원에게 이 퇴직연금을 지급한다고 하여, 이미 20년이 넘은 공무원들에게까지 신법을 적용하게 되면 기득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나아가 이 개정법의 적용을 10년 전까지 소급 시행하여 적용하면 현재 연금을 받는 자도 앞으로는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득권의 불가침은 인정되지 않지만 입법정책상 기득권은 될 수 있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출처 : 법률용어사전)
20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상태에서 퇴직한 사람은, 훗날 이 조항이 25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으로 개정되더라도 여전히 퇴직연금의 수혜자로 남아야 한다는 것. 기득권을 인정한다면 이처럼 정리될 것이다. 타인의 것을 무단으로 빼앗거나 절취하지 않은 한, 적법한 절차로 취득한 개인의 재산은 국가라 할지라도 침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것이다. '적법'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간다는 것. 기득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다. 기득권 세력은 그래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것을 그 판을 통해 이루었기에, 판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물려받은 재산 역시 적법한 재산이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수록 그들은 기득권 세력이 된다. 아니, 상속받기 이전부터 그들은 기득권이었다. 물려받는 것은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이어지는 형태도 있지만, 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이 직책을 통해 이어지는 형태도 있다. 단지 재산을 많이 가졌기에 금수저가 아니다. 검찰개혁, 검언유착,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 등을 바라보며 여전히 기득권을 해체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조국 장관이 하려 했던 검찰 개혁의 골자는 기소권과 수사권의 '분리'였다.
한국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고 있다.
* 기소(起訴) : 검사가 법원에 공소를 제기함
* 공소(公訴) : 검사가 특정 형사 사건에 대하여 법원에 그 재판을 청구하는 일
기소란 검사가 특정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소의 제기라고도 한다. 검사의 기소는 수사의 종결을 의미하고, 기소를 함으로써 법원의 재판절차가 개시된다. 과거 유럽에서는 피해자 등이 기소를 하는 사인 소추가 폭넓게 인정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명예훼손, 마당, 헛간 침입, 재물손괴 등 극히 일부 사소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검사만이 범죄의 기소를 할 수 있다.(출처 : 위키피디아)
즉, 재판을 하려면 공소 제기를 해야 하는데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권은 무엇일까?
수사권 : 범인과 증거를 찾고 수집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부여받은 수사기관의 권리. 수사기관이 범죄와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찾고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수사권은 이처럼 수사기관이 범인과 증거를 찾고 수집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에 부여된 법적 권한을 말한다. 즉 범인을 체포해 구속하거나, 고소, 고발사건을 조사하고, 혐의 유무를 밝히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수사권이다.(두산백과)
* 수사 (搜査) : 검사나 사법 경찰관이 공소(公訴)를 제기하고 유지하기 위해, 범인 및 범죄에 관한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하는 활동
한국의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수사의 주체는 검사이고, 사법경찰 관리는 검사의 지휘를 받는 보조기관으로 규정하여 수사권의 주체를 검찰에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검사가 수사지휘권, 수사 종결권, 기소독점권 등 형사소송법상의 모든 수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검사의 이러한 권한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막강한 것이고, 실질적으로도 형사사건의 97%를 경찰이 맡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출처 : 두산백과)
이처럼, 수사를 시작하는 것도, 수사를 그만두는 것도,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재판을 청구하는 것도 모두 검사의 권한이다. 권한이 집중되면 ‘권력’이 된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검찰은 적법하게 권한을 집중받아 왔고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정의와 분리된 권력은 ‘적폐’가 된다. 인간의 사고는 자기중심적으로 작동되기 마련이며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쓰려고 한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집단은 분산되어야 하고 상호 견제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검찰은 이 원칙에서 제외되어왔다. 왜?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만 했을까?
‘법’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오는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와 복지를 도모하기 위하여 법은 필요하다. 곧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 사회법칙은 사람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요구하는데 그 요구의 기준을 규범이라고 한다. 법은 사회법칙으로서 사회규범이다. 사회규범에는 법 이외에도 관습, 도덕, 종교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위반의 경우에도 자율적, 심리적 강제를 받을 뿐이나, 법은 그 위반의 경우에 타율적 물리적 강제를 통하여 원하는 상태와 결과를 실현하는 강제 규범이다. 법은 국가 내에 존재하는 다른 어떠한 사회의 강제 규범 보다도 우월한 국가 규범이다.(출처 : 두산백과)
나는 이 대목에 주목하게 되었다. 법은 사회 혼란을 예방하고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율적, 물리적 강제가 뒤따른다. 즉, 법은 사용하기에 따라 누군가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법 자체가 가진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 안에서 정의가 배제되고 독재가 자리 잡았을 때, 혹은 법을 이미 쌓아둔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게 될 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군가는 이 강제력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검찰에게 집중된 권력은 그 위에 주둔하는 누군가가 법의 강제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휘두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대개 그 누군가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될 누군가일 것이다.
사람을 자연 상태 그대로 두었을 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자연 상태라 함은 곧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섭리가 지배하는 상태일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상태에서는 누구나 ‘강자’가 되려 할 것이다. 강자가 되려면 한정된 재화를 경쟁을 통해 더 많이 차지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몰고갈 것이다. 그래서 법이라는 ‘필요악’이 요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큰 피해와 혼란을 예방하기 어쩔 수 없이 자유의 일부를 제약하는 것. 법이란 그런 존재이며, 그래서 법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법은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잡아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법이란 힘이 세거나 덩치가 크다고 해서 남의 물건을 뺏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법은 기득권 세력이 무자비한 강자가 되어 인간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부자가 빈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사장이라고 해서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상사라고 해서 부하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법은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법이 ‘법’이기 위해 실어준 힘이 또 다른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검사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어떤 혐의가 드러났을 때 그것을 수사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검사는 없을 것이다. 또한, 후배 검사가 선배 검사의 혐의를 수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혐의가 있는 기업에서 커다란 돈을 쥐어주었을 때, 적법한 절차를 통해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검사 개개인의 인격적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비리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당연히 휩쓸리기 쉬운 온정이며 평판이며 관계의 문제다. 그렇기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한 곳에 모여서는 안 된다.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고 감시받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무시될 때 집중된 권력은 독재의 수단화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