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구에게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일지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전 세계를 팬데믹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며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이러스는 자력으로 생존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살아남는 방법은 숙주에 기생하는 방법뿐이다. 그래서 숙주인 사람이 사망하면, 바이러스의 생명도 끝이 난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이제는 '호모데우스'가 되려 하는 인류를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한 뒤 지구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가 되었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인간이 살아갈 면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구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각종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시스템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류세가 도래한 원인은 너무나 강력해진 인류의 힘이 지구의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하나하나의 영향력은 미약할지 모르나, 70억 명의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없던 섬을 만들어낼 정도로 많아졌다. 1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였던 동력장치와 같은 산업화의 결과물들이 이제는 지구 상의 자원을 소진시키고, 그것들이 뿜어낸 이산화탄소로 말미암아 지구의 평균온도를 변화시킬 정도가 된 것이다. 역대급으로 번성한 인류의 행동 하나하나는 이제 지구가 수십, 수백만 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가던 변화를 수백에서 짧게는 수십 년 만에 급격하게 일어나게 하고 있다. '나 하나쯤이야, 이게 무슨 지구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겠어?'라는 생각이 지구로 하여금 인간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고, 통제되지 않는 상태란 곧 나의 처지가 언제 갑자기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을 말한다. 지구는 어쩌면 2020년 현재의 우리들처럼 공포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공포는 통제되지 않는 인류로부터 기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어쩌면 인류를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바이러스로 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류세에 들어 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 모든 급격한 변화가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에게 벌어지는 일들과 겹쳐 보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체온이 상승하고, 몸살을 앓고, 생존을 위한 기능이 저하되고, 결국 누군가는 죽고 마는 비극적인 결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지구도 이제는 인류로 인한 죽음을 걱정할 정도가 된 것은 아닐까?
바이러스가 그러한 것처럼, 인류 역시 지구라는 숙주를 떠나 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다. 바이러스와 인류의 처지가 다소 다른 것은, 바이러스는 70억 명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대체 숙주가 있지만, 인간은 지구라는 숙주를 대체할 어떤 확실한 것도 아직 찾아내지도, 그곳에 도달할 방법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를 운명공동체로 여겨야만 한다.
백신이 완성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더 이상 현재와 같은 위세를 떨치지 못할 것이다. 인간 역시 지금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에 떨지 않을 것이다. 백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 미리 투여하여 인간의 몸으로 하여금 항체를 생성해 바이러스 감염에 저항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뒤늦게 지구 상에 퍼진 인류라는 존재는 기존의 백신으로는 대항하기 어려운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로 변모해가고 있다. 지구 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이 공존했지만 인류의 번성으로 말미암아, 많은 수의 종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제한된 영역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개체수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증가한 종은 가축이나 식량으로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거나, 아직 인류가 어찌하지 못한 영역에 존재하는 무지막지한 생존력을 가진 종들 뿐이다. 수많은 종의 생명체들은 지구가 가진 항체였을 것이나, 잦은 변이가 발생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지구는 인류라는 진보적 존재를 적절히 억제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제 백신으로 예방에 실패한 바이러스를 상대할 방법은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뿐이다. 나는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끔찍한 상상을 그저 무시할 수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구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류라는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치료제와 같다는 생각을. 아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이대로 가다 보면 지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류의 처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에 결국 놓이게 되지 않을까?
바이러스는 종류가 많지만 모든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유해한 것은 아니다. 어떤 바이러스는 인체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며, 아마도 우리 몸에는 그런 존재들이 수도 없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며,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너무 해로워 공존할 수 없는 존재는 그것이 무엇이든 선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인류는 지구에게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세의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가 그러했듯, 백신과 치료제가 완성되고 인류에게 집단 면역이 형성되어갈수록 사라져 갈 것이다. 인간도 자칫하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세를 끝으로 지구로부터 도태될 수도 있다.
모든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부른다. 인류는 지구에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세'와 같은 용어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류가 지구의 역사에 있어 어떤 세대를 만들어낼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가 지구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다.
항상성을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자신에게 최적의 조건으로 환경을 조성하며, 현재의 번성을 완성해왔다. 하지만 지구의 환경 변화는 미약한 인간의 적응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지구의 급격한 체온 변화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기상이변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느껴질 정도라면 이미 커다란 위기는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지구는 얼마든지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로 변모할 수도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온 지구에 닥친 모래폭풍은 인간의 식량을 앗아갔고, 결국 인류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야만 했다. ‘인류세’를 맞이한 우리 인간이 해쳐나가야 할 상황은 인터스텔라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소리는 너무나 거대해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고, 긴 시간에 걸쳐 나타나는 거대한 흐름은 너무나 멀기에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도하게 힘을 비축한 인간은 이제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전 지구적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아직 인류는 ‘인류세’라는 폭풍을 피할 방주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구를 존중해야만 하며, 지구와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 지구는 앞으로 태어나고 자랄 우리의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유산임에 분명하다. 인류는 지구라는 시스템과 조화를 이룰 때 생존할 수 있다. 모두가 지구를 운명공동체로 인식할 때 인류세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구와 공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