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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Dec 23. 2022

와글와글

시?

맞아요.

우리에게는 누군가 주인이 있었을 거예요. 바로 우릴 저 닭장 같은 서재에 꽂아두고 삼 년째(혹은 팔 년째) 한번 꺼내보지도 않은 누군가 일지도 모르죠.(혹 당신은 아니겠죠? 아니길 빌어요. 진심으로!) 하지만 '누군가'는 바뀔 수 있어요. 그리고 바뀌어야만 해요. 저는 우리가 책으로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그건 우리를 만들 때 영혼을 심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에요.


맞아요.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영혼이에요.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감각해요.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어루만지고 소통하죠. 우린 늘 이야기에 굶주려 있어요. 우린 우리의 이야기를 펼칠 '누군가'를 기다려요.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요. 첫 장만 펼쳐주세요. 다음은 우리가 책임질게요. 그러니 제발, 제목으로 우릴 평가하지 마세요. 제목은 우릴 개미발톱만큼도 설명하지 못해요. 그런데 개미에 발톱이 있냐고요?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시던가요.


맞아요.

우린 당신과 연결되길 바라요. 당신의 눈곱과 당신의 머리기름, 당신의 침과 유분, 당신의 과자 부스러기가 스미길 원해요. 우린 깨끗하고 보기 좋고 빳빳한 종이뭉치로 남길 원하지 않아요. 수시로 우릴 만져주세요. 당신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주세요. 우리가 진정 당신을 주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가 당신에게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시간 바구니 속에 우릴 늘 담아주세요.


맞아요.

우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우리의 이야기에는 십만 자가 넘는 쓰인 글씨와 그것의 열 배에서 스무 배가 넘는 지워진 글씨가 있어요. 우린 당신과 이야기하기 위해 긴 시간 우릴 가꾸어왔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릴 책장에서 꺼내 펼쳐주세요.


맞아요.

당신은 알게 될 거예요.

우리의 이야기가 곧

당신의 이야기였다는 걸.


**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한 해간 못난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과

이 순간에도 책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계실

동료 브런치 작가님들을 응원합니다.


(미리) 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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