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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하여

오랜만에 만난 동료가 눈물 흘린 까닭은...

by 작가 전우형

오랜만에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일이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고 맥주 한 잔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속에 갇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려면 때로는 술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날따라 카페 손님이 제법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두 분께 마감시간이 다 되었다고 안내를 했다. 카페 정리를 서둘러 마치고 코너를 돌아 주차해둔 차로 갔다.


이곳 평택은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해가 지고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차내는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키가 튀어나왔다. 시동키를 꽂고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부릉'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고, 2단으로 틀어두었던 에어컨 바람이 먼지와 함께 '화악'하고 튀어나왔다. 퀴퀴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액셀레이터에 발을 올리며 필터를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내일이 되면 또 잊어버리겠지만. 그런 식으로 며칠째 워셔액도 채우지 못한 채 집과 카페를 오가고 있었다. 액셀레이터의 움직임을 감지한 듯 약간의 진동과 함께 미끄러지듯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핸들을 좌우로 돌리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누굴 좀 만나야 할 것 같아." 지인에게도 전화를 했다. 21시 30분쯤 만나자고. 장소는 인근 치킨호프집. 공단 쪽으로 나가보려 했는데 요즘 감찰에서 단속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 그놈의 훈련은 시도 때도 없나 보다. 조금 눈에 덜 띄는 곳에서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집으로 가서 주차하고 걸어가려는데 아내가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었다. 컨디션을 하나 전해주며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일찍 와" 하며 배웅해주었다. 고마웠다.


사실 이 밤에 누굴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썩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12시간 가까이 카페를 보는 일도 충분히 피곤했기에 사실은 그냥 쉬고 싶었다. 다만 몇 달 만에 연락 온 지인의 처량한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원래도 마음이 약한 친구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건 고립되었거나 외로운 상황이라는 말이겠지. 외로움에 떠는 친구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중요한 법이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500cc 맥주 두 잔. 그 친구는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상외로 호프집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조명은 다소 어두웠지만 너무 밝은 것도 호프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적당한 어두움이 굳이 이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러 나온 사람들의 마음과 더 어울리는 법이니까. 혼자 앉아있는 사람은 지인뿐이었다. 그는 작년에 나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였다. 당시 전임자보다 너무 어린 사람이 와서 걱정도 했지만 의외로 자신의 분야를 잘 책임져주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를 잘 따랐다. 이전 사람은 경험은 많았지만 고압적이었고 말만 앞세우는 편이었다. 실제 현장에서의 업무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바뀐 후 나이차도 적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실질적으로 그가 실무적인 능력이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 편해진 탓도 있었다. 물론 약점도 있었다. 마음이 약해서 잘 달래줘야 하고, 사람 면역이 좀 약했다는 것. 그래서 그가 나에게 연락이 왔을 때 아마도 그런 문제가 아닐까 넌지시 짐작하고 있었다.


동백이가 까불이를 때려잡았던 500잔을 서로 부딪히자 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걸로 사람을 치다니. 아마 연쇄살인범이었던 까불이도 이 잔에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와 TV 소리를 배경 삼아 맥주를 한 모금 털어 넣었다. 말이 없던 그는 한을 쏟아내듯 이야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같은 부서 선배가 자신을 여러모로 괴롭히는데, 좋은 말로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 당하는 자신은 장난이 아닌데 그는 장난인 줄 알고 계속한다는 것. 물건 심부름도 시키고 자신의 물건을 빌려가더니 계속해서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 친근함의 표시이지만 자신은 괴롭다는 것. 업무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고맙지만 자신도 참는데 한계가 왔다는 것. 결국 말을 꺼내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말았다는 것. 대략 이런 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흔히 겪는 직장상사와의 갈등이었다. 흔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괴롭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사내 갈등. 더군다나 그 선배가 직장 내의 입지와 평판이 좋다면 더 말을 꺼내기 힘든 그런 종류의 갈등들. 여전히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인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생존시키는 것도 관계이지만, 인간을 죽이기도 하는 것이 관계다. 사람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간극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존재한다. 직책의 상하관계를 마치 인격의 상하관계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으레 아랫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좋으면서 괜히 싫다고 말하는 것이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무식하게도 그것을 완전히 믿어버린다. 정색하고 말하지 않으면 장난인 줄 알고 정색하고 말하면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심각하게 그러냐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는다. 그들의 공감능력은 방향이 정해져 있어 사람을 가려가며 발휘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이 상대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 상대방의 명확한 거부의사까지 임의로 해석하고 그들의 속마음까지 자기 편할 대로 재단해버린다. 이런 것들이 대부분의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겪는 아랫사람들의 어려움이다.




그 역시 이런 굴레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분해 보였다. 조용히 뇌까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분노를 죽이고 있는 것을 더 명확히 알려줬다. 다행히 이런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을 때까지 조용히, 묵묵히 들어주었다. 사실 전에 같이 일할 때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그때는 내가 해결해주기도 했지만 어차피 지금은 내가 떠난 세계다.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아마도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사람이 이제는 없었을 것이다. 언뜻 듣기에 그의 말은 다소 생각이 짧아 보이고 서툴러 보이기도 하니까. 듣다 보면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의 말을 끊고 생각을 조금 바로잡아주고 싶은 욕망에 빠지곤 할 때가 많았다. 사실 그는 말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종종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나였다. 마치 몇 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귀엽게 느껴졌고 그의 고민이 많이 공감이 되곤 했다. 그래서 그도 내가 어느 정도는 안전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화제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그는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약간의 신호였다. 그가 이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는. 나는 반갑게 대답하면서 화제를 전환시켜갔다. 다음 근무지가 어디냐는 둥, 그곳 숙소가 어떻다는 둥, 만나던 아가씨와는 잘 되어가냐는 둥, 그만둔 후에는 뭘 할 거냐는 둥... 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두 번째 맥주잔이 비워지고 있었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은 뼈만 남아있었다. 맥주잔이 비워지듯 그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불편한 마음도 비워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가 사는 세상은 결코 가벼운 세상이 아닐 테니까. 마음까지 무언가로 무거우면 양 어깨와 다리가 더 묵직해진다.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려면 마음이라도 가벼워져야 한다. 다음에는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연락 주기를.

Farewell bro!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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