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12월 31일

by 작가 전우형

12월 31일. 하루의 마지막이 한 달의 마지막이고 또 한해의 마지막인 일 년 중 유일한 날입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초를 만들고 다시 그것들을 합쳐 시간을 측정하고 지정하는 단위를 만들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연월일 시분초. 다시 말해 올해의 마지막은 2022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 원래는 수많은 시간 중 하나일 뿐이었으나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존재를 이름 지어 부르듯이 우리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은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처음 만난 시간은 2004년 4월 24일 12시 17분 45초. 여기에 장소가 더해지면 우리는 언제든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13시 35분 22초. 저는 동학사 아래 어딘가에서 점심으로 먹었던 산채비빔밥을 모두 게워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 8개월 6일 3시간 50분 3초가 지난 지금 저는 그 사람의 쌕쌕거리며 잠든 얼굴을 그때와 같은 눈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특별한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상대적인 시간을 살아갑니다. 시간을 만질 수 있는 건 한번뿐입니다. 그래서 기억하고 기록합니다. 사진으로 남기고 그림을 그립니다. 지나간 시간은 압축됩니다. 그리고 대부분 소멸됩니다. 우리가 이름 붙인 몇 장의 시간만 남습니다.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풍화됩니다. 흐릿해집니다. 마지막에는 묘비처럼 생몰년만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시간의 풍화에 저항하는 건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렇습니다.


한해의 마지막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임의로 그렇게 정해두었을 뿐 실제로는 지구나 태양, 어느 한쪽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무한히 반복되는 과정의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하기로 했나 봅니다. 그 아무렇지 않음에, 그 무감각함에. 우주의 터무니없는 관점이 가진 폭력성에 함입되지 않기 위해. 저는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한없이 보잘것없는 시간을 우주의 시계에 밀어 넣는 일이라고. 먼 미래에,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현재, 누군가에게는 과거일 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압축되어 사라질 시간의 부스러기를 모으고 모아 그 틈을 벌려두는 일. 절대 바스러질 수 없는 시간의 질량을 구축하는 일.


시간은 흐릅니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흐릅니다. 2022년은 2032년이 되고 38은 48이 되고 41은 51이 되고 48은 58이 되고 52는 62가 됩니다. 마지막이 처음으로 변하는 시간에 서서 앞을 보고 뒤를 봅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의 시간을 펼칩니다. 나는 그 시간을 봅니다. 손을 뻗어 시간을 만집니다. 시간은 바다를 보며 서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연이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원호를 그립니다. 손끝은 하늘과 바람, 연이 그리고 사라지는 원의 어디쯤을 가리킵니다. 나는 시간을 부릅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모래 위를 걷습니다. 가끔 돌아보며 발자국을 헤아립니다. 시간은 오늘과 내일을 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