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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03. 2023

아내의 발

에세이

  저는 아내의 발을 좋아합니다. 보통 여자들의 발은(그래봐야 어머니와 아내, 딸 정도지만) 부드럽고 말랑말랑합니다. 그중에서도 아내는 특히 발이 매끈하고 예쁘고 발가락 사이가 넓습니다. 그 말인즉슨, 간지럽힐 데가 많다는 뜻이지요. 반응도 독특한 편입니다. 갓 낚아 올린 물고기처럼 통통 튄다고나 할까.(실제로 낚시로 무언가를 잡아본 적은 없지만...)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몰래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거나 감각이 무딘 복숭아뼈 쪽을 슬쩍 건드리기도 하죠. 잠든 아내의 이불을 슬쩍 걷어두기도 하고요. 그럼 꼼지락거리면서 다시 덮습니다. 저는 지켜보다가 다시 걷어놓고요. 보통은 발에 한 대 차이고 끝납니다. 


  저는 장난에 꽤나 사력을 다하는 편이라서, 한 번은 아내를 놀라게 해 보겠다고 암막 커튼 뒤에서 2시간 20분을 버틴 적도 있습니다. 몰래 귀가한 뒤 논문 작업 중인 아내가 침대에 누울 때까지 기다렸던 거죠. 하지만 그렇게 뜸을 오래 들인 장난은 결과가 미적지근할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결과는 언급하지 않는 걸로.) 그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무언가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예컨대 평소와 똑같이 귀가했는데 그날따라 강아지도 짖지 않고 가족들 모두 어딘가에 몰두한 상태라 제가 집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런 경우 아내는 보통 요리에 심취해 있습니다. 저는 벽에 바짝 붙은 채 베란다 통유리로 내부를 살핍니다. 몸을 'ㄱ'자로 숙여 아일랜드 식탁을 지나 상판만 6인용으로 교체해 둔 광활한 세라믹 식탁 아래에 숨으면 작전은 97% 성공입니다. 이제 총총거리며 돌아다니던 발이 식탁 앞에 멈췄을 때 종아리를 쓱 문지르거나, 아내가 부엌을 잠깐 비웠을 때 식탁 밑에서 나와 조용히 가스불을 꺼두면 됩니다. 나머지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만 잘 참으면 됩니다. 정말이지 이때 웃음을 참는 건 고추장찌개를 끓이며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내는 발마사지를 좋아합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 보통 아내의 발은 제가 손만 뻗으면 바로 닿는 곳에 있습니다. 요 근래 아내가 발바닥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해서 틈날 때마다 발마사지를 해주곤 합니다. 간혹 피곤한 날은 씻지도 못하고 누워있기도 하는데 그렇거나 말거나 저는 발만 보이면 주물주물을 시작해 버립니다. 안 씻었다고 아내가 경악하면 저는 코까지 갖다 대고 킁킁거립니다. 아내는 발이 건조한 편이라 냄새가 안 나지만 어떤 날은 살냄새가 맡아질 때도 있습니다. 어, 오늘은 조금 나는 것도 같은데? 하다가 발에 한 대 맞고 맙니다. 


  저는 아내의 발이 좋습니다. 말랑말랑해서 좋고, 간지럽히기 좋아서 좋고, 물고기처럼 통통 튀어서 좋고, 살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그 발이 그토록 바쁘고 고단한 이유를 알기에 더 좋습니다. 아내가 아등바등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에게 거리낌 없이 발을 내밀 수 있다면 그건 저 한 사람뿐이겠지요. 지금도 뒤에서 무방비로 잠든 아내의 발이 보입니다. 여러 가지 계획이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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