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52)

52.

by 작가 전우형

52.


“예전에 할머니를 따라 여길 온 적이 있어요. 할머니에게 따귀를 맞고 쓰러졌던 다음 날 새벽이었을 거예요. 할머니는 치매가 있었지만 저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새벽녘 집밖으로 문을 열고 구부정하게 걸어 나가는 할머니를 보고도 말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할머니는 자기가 갇혀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멀쩡한 자기를 누군가가 가둬버렸다고. 그리고 그게 나나 고모, 지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수사관처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뜯어보듯 살피는 게 할머니의 가장 성스러운 임무처럼 보였어요. 그때만큼은 터진 계란 노른자처럼 흐릿하던 할머니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났거든요. 할머니는 하루 중 절반은 잠을 잤고, 나머지 절반은 악다구니를 쳤어요. 귀를 막아도 할머니가 하는 말들은 조금도 가려지지 않았어요.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빠를 헐뜯는 할머니를 보는 건 정말 이가 갈리는 일이었어요. 저는 그게 치매인 줄 몰랐어요. 다만 할머니는 왜 이렇게 우릴 미워할까, 아니, 날 미워할까 궁금했어요.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높은 담벼락 위에 선 것처럼 몸이 떨렸어요.”


희영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허술해 보이는 난간에 몸을 걸친 채 절벽처럼 내리 깎인 옹벽 밖으로 머리와 어깨를 내밀었다. 중력을 거슬러 휘몰아치는 바람 같은 것이 희영의 앞머리를 흔들었다.


“그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건 저뿐이었을 거예요. 왜냐면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거든요. 제법 큰 소리였는데. 고모는 몰라도 지수는 귀가 정말 밝았어요. 음악을 해서 그런지 작은 소리에도 예민했거든요. 하지만 특이하긴 했어요. 다른 때랑 달리 정말 크고 날카로웠어요. 매번 문을 열 때마다 그런 소리가 났다면 진작에 문을 바꿔달았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소리였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문을 열고 집을 나섰어요. 저는 급히 외투 하나를 걸치고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갔죠. 할머니는 뒤따르는 저를 보고도 욕을 하지 않았어요.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온화해 보였어요. 그런 모습의 할머니를 본 적이 없어서 다른 사람을 잘못 따라왔나 싶을 정도로요. 할머니는 천천히 걸어갔어요. 한참을 먼저 나간 할머니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는지도 몰라요.”


왕릉교를 오른쪽 멀리에 두고 희영은 아까 두 아이가 앉아있던 장소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어느새 비어있었다.


“그때 할머니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자리가 바로 저기였어요. 저긴 풀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꽤 너르고 편평한 바위가 숨겨져 있거든요.”

“그럼 아까 그 아이들도?”

“맞아요. 거긴 모르는 사람들은 앉지 않는 장소예요. 주변에 앉을만한 의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아마 이 근처를 사는 아이들이었을 거예요. 저처럼 집보다 그런 아무 경계도 없는 장소가 더 편한 아이 들이었겠죠.”

희영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할머니는 걷다가 가끔 허리를 굽혔어요. 그리고 동굴에서 터져 나오는듯한 거친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울었어요. 엄마 뱃속에서 처음 나온 아이처럼. 눈도 뜨지 못한 채, 몸을 공처럼 말고 소리치듯 울었어요. 저는 그 모습이 꼭 엄마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이의 몸부림처럼 보였어요. 그때 생각했던 질문이에요. 죽고 나면 어떨까. 그날 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보는 앞에서.”


희영은 긴 한숨을 쉬었는데 내겐 그 시간이 손가락으로 세어볼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초침이 몇 번 째깍거리는 동안 나는 희영이 한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숨소리가 멀어지다가 사라지고 등뒤로 우르릉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연달아 지나갔다. 고요했던 새벽의 기지개처럼 미세한 감각들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나는 고막 안쪽에서부터 긁어 올라오는듯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희영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졌어요. 아무 예고도 없이. 저는 누워서 보던 하늘을 생각했어요. 감각이 없던 뺨과 축축하고 차가운 흙냄새. 그런데 직전까지 제가 뭘 생각했는지 아세요? 저는 할머니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불쌍했어요. 자기가 뭘 하는지, 왜 우는지, 뭘 기억하는지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까요. 할머니의 하루는 어느덧 모두 거짓으로만 채워져 있었어요. 한없는 기침소리는 답답했지만 구슬프기도 했어요. 가슴속에 억누른 것들을 모두 토해내도 그게 정말 내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날 정말 궁금했던 건 전혀 다른 거였어요. 왜 고모와 지수는 따라 나오지 않았을까. 저는 들었거든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문이 조금 열리고 그 속으로 누군가의 발걸음이 침대를 오르내리는 소리를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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