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51)

51.

by 작가 전우형

51.


희영이 송사리 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아이들, 누굴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희영의 시선을 따라 제민천을 훑어보았다.

“아이?”

“아니, 송사리들 말고요. 저 아이들.”


희영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제민천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다섯 시 사십칠 분. 아직 저만한 아이들이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더군다나 어른 한 사람 없이. 나는 건너갈만한 곳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으로 넓적한 바위 몇 개가 어른 보폭 정도를 사이에 두고 수면 위로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희영은 시선은 그대로 천변에 묻어둔 채로 내게 물었다.

“건너가 보려고요?”

나는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냐는 표정으로 희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희영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저 아이들. 하나도 무섭지 않아 보여요.”


야광주처럼 박힌 구형 전등에서 쏟아진 불빛이 어둠 사이로 아이들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희영의 옆에 다시 앉았다. 우린 아이들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했다. 남자아이는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얼굴이 하늘을 향했고 몸을 절반쯤 뒤로 젖힌 채 물을 향해 뻗은 다리를 흔들거렸다. 여자아이만 가끔 뿜어져 나오는 입김을 보며 웃기도 했고 재잘거리며 우리 쪽을 향해 흘끗 시선을 흘리기도 했다. 덩치가 작고 왜소했지만 여자아이 쪽이 오히려 누나인 것 같았다. 남자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모양새가 그랬다. 남자아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고 여자아이의 속삭임을 들은 뒤에도 어느새 손에 쥔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물가로 걸어가 이리저리 저으며 잔물결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천천히 그 주름진 수면 위로 등불이 수 놓인 어둠 대신 남색과 파란색이 어지러이 뒤섞인 하늘과 얇은 구름 떼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모습은 익숙하고 스스럼이 없어서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을 거니는 것 같았다. 공연히 찾아가 묻지 않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내가 고개를 돌리자 희영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다.


“가요.”

희영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서더니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바람이 불었고 기침소리가 들렸다. 희영은 계단 한가운데 주저앉아 등을 기대고 있었다. 곧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허리를 숙이고 구멍 난 폐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는 것 같은 아찔한 소리를 냈다. 나는 희영의 옆에 서서 불안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희영의 새된 기침소리는 제민천 양 옆으로 세워진 높은 벽 사이를 메아리치며 새벽 공기를 크게 울렸다. 건너편에서 나뭇가지로 장난을 치던 남자아이의 손이 멈췄고 다리를 흔들던 여자아이도 굳은 얼굴로 희영 쪽을 보았다. 간혹 지나가던 자전거 몇 대가 무심히 옆을 지나쳤고 희영의 기침소리는 한참을 그렇게 축포처럼 울리다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를 포함해 몇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음을 알자 희영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날 만큼 붉게 물들었다. 여전히 창백하고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으나 희영은 잔기침을 하며 자세를 추슬렀다. 간신히 허리를 곧추세운 희영이 티 나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쉬었다 가면 돼요.”


후들거리는 다리로 두 걸음마다 나무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희영을 나는 언제든 붙들 수 있는 거리에서 뒤따라갔다. 희영은 힘겹게 오르면서도 곁눈으로 저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두 아이를 살폈다. 가까운 긴 의자 앞에 서서 희영은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숨을 골랐다. 앉을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물었다.

“아는 아이들이에요?”

“그래 보였어요?”

희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 아이들이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민했어요. 우린 상대방을 모르니까. 내가 저 아이들을 보며 어째서 이 이른 시각에 천변에 둘만 앉아있을까를 궁금해하기보다 그저 두 아이가 옹기종기 앉은 모습을 좋아했던 것처럼. 그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죽을 듯이 기침을 하며 주저앉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아프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를 걱정했을까, 아니면 비웃었을까. 그런 건 끝내 알 수 없는 거니까. 안 그래요?”


그런가. 어느새 경쾌해진 희영의 걸음걸이를 보며 나도 속도를 높였다. 겁이 날 법도 한데. 언제 다시 그렇게 될지. 숨통을 조이는듯한 그 기침소리가 나는 유난히 무섭다가도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용기를 얻곤 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까? 하긴. 좀 전에 대답해 줬구나. 모른다고. 그런 건 끝내 몰라야만 하는 일이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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