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58)

58.

by 작가 전우형

58.


“당신 누구야! 저리 안 가? 더 오면 죽여버릴 거야. 죽어버릴 거야!”


병실 안에 소란이 인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가녀린 팔을 붙잡은 두 사내의 몸이 요동친다. 그들은 태풍이 몰아치는 날 우산을 지키려는 행인처럼 무방비하다. 음악 하나 없던 병실에 갖은 소란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진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병실의 갖은 가재도구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쏟아져 있고 그것을 보는 이들은 이미 정리를 포기한듯한 모양새다. 희영의 온몸은 축축하게 젖었고 그녀의 몸은 바들거리지만 좀처럼 그녀의 발작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흘러내린 머리칼이 비가 내리는 저녁 바다처럼 그녀의 희고 붉은 얼굴에 두서없이 펼쳐져 있다가 그녀가 고개를 마구 흔들 때마다 철썩거리는 파도처럼 이마에 부딪힌다.


그녀를 바라보는 의사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팬다. 의사는 두통을 참아내듯 이마를 쓸고 눈을 비빈다. 그는 희영을 진정시킬 방법을 모색하지만,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그의 어떠한 노력도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키는 듯하다. 이제는 몸을 거의 공중에 띄우다시피 한 채로 거푸 발길질을 해대는 희영에게 얼굴과 어깨를 몇 차례 맞은 의사의 몰골은 점점 더 낭패스러워진다. 그 옆의 간호사며 상황을 지켜보던 보호사의 안색 역시 검게 물든다.


결국 의사는 물러선다. 의사는 씩씩대는 희영을 본다. 희영은 그런 그를 노려보다가 눈에 흰자가 도드라지며 입가에 거품을 문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교성이 좁은 병실을 가득 채우며 사람들이 귀를 막게 만든다. 의사는 차마 더 머물지 못하고 병실을 나선다. 그가 몇 걸음 걸어온 침침한 복도로, 두터운 벽을 통과하며 오히려 선명해진 듯한 일단의 아수라장이 비명을 지르며 따라온다. 의사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았어도 길을 헤매지 않을 만큼,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을 만큼 그가 수없이 오갔던 길이다. 그리고 매번 같은 분량의 절망을, 아니 매번 밀도가 짙어지는 절망을 실어 나르던 길이다.


**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갈 때쯤 저는 당신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커피를 내립니다. 그 시간이 되면 내려앉은 햇빛이 온통 쏟아져 들어와 차갑던 공간이 따뜻해집니다. 찬찬히 떨어져 내리는 곧은 물줄기를 바라보며 저는 가끔 밖을 살핍니다. 그렇게 당신을 기다립니다. 하루가 어땠는지 물으며 별것 없는 대답을 주고받기 위해. 내가 별일 없었는지 물으면 당신은 하루가 길었다고 대답하겠지요. 하지만 힘들지는 않았다고 할 겁니다. 모든 것이 좋았다고. 해석할 수 없는 얼굴로 저 쏟아지는 햇빛 앞에 서겠지요. 저는 다만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말할 겁니다.


우리의 대화는 늘 그랬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될까 봐 극도로 조심스러웠습니다. 해가 될지를 걱정하느라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목울대 바로 앞에서 멈춰 세웠습니다. 그러곤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그랬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나는 기억이 종종 뒤바뀌니까요. 어쩌면 그 순간 당신은 내가 웃어 보이는 이유를 이해해보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어색한 웃음을 어색하지 않게 흉내 내며 거울처럼 저를 비추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인색함이 없는 사람. 세상 어떤 사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누군가를 수용하고 견디는 일에 이력이 난 사람. 남을 받아들이는 공간을 만들어내느라 늘 숨이 막히는 사람. 호흡이 가쁘고 혈색이 파리하며 종종 퓨즈가 나가듯 낯빛이 꺼지는 사람.


당신의 그런 얼굴을 보며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압니까? 내가 어떻게 하고 싶었는지 압니까? 내가 무슨 말을 웃음 뒤에 감추고 있었는지 압니까? 하지만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만큼은 나까지 이해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 하나만 바라보며 긴 줄을 선 그 사람들 사이에 나는 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줄을 더 길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 강인하고 기죽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도 그들을 달래고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해했습니까, 받아들였습니까. 사랑, 받았습니까.


나는 오늘도 다섯 시가 되면 커피를 내릴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을 선물로 여겨 왔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든 선물이 될 겁니다. 나는 그때 도착하는 사람이 누구든 그 잔을 나눌 것이고,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도로 선반 위에 올려둘 것입니다. 어질러진 것들을 깨끗이 정리하며 당신에게 일거리를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간 당신을 기다렸어도 그 순간만큼은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도 기다리지 않은 얼굴로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


주차해 둔 곳으로 걸어가던 나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 앉아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거기 앉은 채로 보내야 할 것들을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다가오는 것들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한 연습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짐을 덜어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검은색 등 가방을 멘 남자가 차들이 드문드문 나타나 가까워지고 사라지는 4차선 도로의 끝을 목을 앞으로 쭉 내민 채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색 외투를 걸친 그 남자는 한참을 추위에 떤 행색이었다. 목과 턱을 당기고 외투의 얇은 카라를 세운 채로 웅크려 팔짱 낀 상체의 바깥쪽을 연신 문질러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차들이 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갈 때마다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찌푸려질 대로 찌푸려진 그의 얼굴과 두 번쯤 눈이 마주친 뒤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 위로 도착 예정시간을 알리는 작은 화면이 보였다. 그 작은 화면은 가끔 두 자릿수나 세 자릿수로 된 버스 번호와 함께 잠시 후 도착 예정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버스 제동음이 들렸고 허술한 가죽피리를 부는 듯한 삐- 소리와 함께 인위적으로 눌러 저장해 두었던 공기의 여압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멀어지는 먼지와 마찰, 엔진 소리를 끝으로 주위의 소란은 잦아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고요했다. 텅 빈 버스 정류장을 돌아보며 나는 문득 극심한 피로감 같은 것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나는 귀에도 얇은 덮개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다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원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원하면 모든 소리도 끌 수 있었으면. 소리란 소리는 모조리 빨아들이는 거대한 공동(空洞) 같은 것이 있어서 원할 때마다 그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으면.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고 내가 원하지 않는 소리를 억지로 귀에 욱여넣을 수 없는 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거기서 오로지 희영에 관한 기억만을 곱씹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희영의 눈동자를, 입매를, 하얀 목과 손등을, 짙은 청색 혈관을, 움직일 때마다 얇은 피부 위로 살처럼 솟았다 사라지는 가늘고 분명한 뼈대들을, 뾰족한 복숭아뼈와 늘 앞으로 걸을 준비를 마친 것 같은 팽팽하고 곧은 힘줄들을 온 힘을 다해 그리고 싶었다. 풍경을 그리듯이, 사진을 담듯이, 그녀의 형상을 그대로 빚고 싶었다. 더 잊어버리기 전에. 그녀가 더 사라져 버리기 전에. 내가 더 무너져 내리기 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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