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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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영을 병원으로 데려다 놓은 뒤, 나는 잠시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병원 앞을 서성거렸다.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병실로 옮겨지는 동안 희영은 두 번 뒤돌아보았다. 한 번은 양팔을 거머쥔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내가 알아서 들어갈게요, 하던 그때. 또 한 번은 우리가 빠져나가면서 완전히 닫지 못했던 병실 문 앞에 멈춰 섰을 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나를 희영은 무심히 쳐다보았고, 곧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병실 안으로 사라졌다. 거리가 멀어 보일리 없었으련만, 나는 희영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꼈다.
인사란 그런 것이니까. 서로에게 해줄게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때, 신을 찾는 것과 같은 거니까. 사람들이 신을 찾는 건 스스로의 무력(無力)을 자각했을 때이고, 그 자각은 물리적 이별 앞에서 가장 확실하고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유한하기에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고 자신을 둘로 나눌 수도 없다.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도,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목숨을 잃은 사람을 살려낼 수도 없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을 만질 수도 지킬 수도 없다. 그러니까 다시 병실로 돌아간 희영을 지킬 방법은 신에게 위탁하는 것 외에는 없다. 신은 그런 인간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안해 낸 존재이니까. 그래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를 대신해서 탓할 대상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까. 정말이지 그런 일로 자책하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내가 그런 생각에 빠진 채 희영이 사라진 복도를 우두커니 보고 있었을 때, 익숙하지만 친근해질 수 없는 목소리가 바로 뒤편에서 들려왔다. 그 의사였다. 그는 당신이 부탁해야 할 대상은 이름도 모르는 신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고압적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영우 씨. 저랑 얘기 좀 하시죠.”
나는 잠자코 그를 따라갔다. 의사는 탕비실 앞의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의 앞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온종일 무언가에 시달린 듯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의사는 우선, 이라고 말한 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영우 씨는 면회가 제한될 겁니다.”
“그리고요?”
의사는 커다란 인내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처럼 잠시 사이를 두며 이마를 짚었다. 곧 작은 신음이 터지는듯한 그의 목소리가 아프게 밀려 나왔다.
“왜 거길 데려간 겁니까?”
의사는 대답 여하에 따라 즉각적으로 휘두를 수도 있다는 태세로 종이컵을 쥐고 있던 손을 우그러트렸다. 나는 마분지 조각처럼 구겨진 종이컵을 잠시 쳐다보다가 천천히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물었다.
“꼭 답해야 하나요?”
그리고 의사가 허락하지 않던 호칭을 작정하듯 끝에 덧붙였다.
“성호 씨?”
성호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이미 풀어져 펄럭거리던 의사 가운을 뒤로 젖혔다. 성호는 다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노려보았고, 곧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휴. 됐습니다. 혹시나 하고 믿었던 내가 바보지.”
성호는 손을 내저으며 돌아섰고, 나는 빠르게 멀어져 가는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희영 씨가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 집. 희영 씨가 제 발로 걸어갔다고요.”
성호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그대로 걸어갔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복도 너머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메아리쳤고, 이어서 문이 밀렸다 다시 밀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옆의 비상계단으로 내려와 병원 입구를 나섰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이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주차장으로 가는 잠깐동안 나는 생각했다. 희영과 가고 싶었던 곳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청소를 마치고 희영이 그랜드피아노 앞에 섰을 때, 나는 마침내 그녀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희영은 갑자기 토하기 직전인 사람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뛰쳐나갔다. 어질어질한 걸음으로 벽을 짚으며 마른 풀더미 사이로 간신히 공기가 통하는듯한 거친 파열음을 토해냈다.
나는, 두근거렸다. 각각의 심실에서 뻗어 나오는 굵고 가는 혈관 하나하나마다 뜨거운 전깃줄 같은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규칙적으로, 그러나 점차로 빨라지는 맥동(脈動)을 따라 헤아릴 수 없는 돌기 같은 것들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마비되려 하는 양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석고에 갇힌 것 같은 무릎을 두드렸다. 작은 균열을 일으키며 굳어가던 몸에 깊은숨을 불어넣던 나는 곧 정신없이 희영이 달려 나간 허술하기 그지없는 여닫이 문을 지나 폐허 같은 앞마당으로 몸을 던졌다.
얼기설기 덧칠된 나무 울타리에 한 손을 얹고 허리와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저 아래를 끝없이 내려다보는 희영이 있었다. 감은 눈을 부르르 떨며 다른 한 손으로는 답답한 가슴을 미친 듯이 쓸어내리는 희영이 있었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는 희영을, 거의 의식조차 잠잠해지려 하는 희영을 한쪽 어깨에 팔을 감아 들어 올리며 녹슨 울타리 문을 발로 찼다. 이미 떨어져 나갔어야 했을 무언가가 툭 하고 이탈되는 소리와 함께 윤활의 부재를 여지없이 드러내는듯한 이음새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끼익 하고 귓전을 긁고 지나갔다. 그 소리 때문이었을까.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떠는 희영을 끌고서 나는 오래된 한옥과 신식 건물이 뒤섞인 골목을 지나 한적한 도로 앞에 섰다.
택시를 가쁜 눈으로 찾으며 나는 희영을 부축한 손에 조금 더 힘을 실는다. 그리고 안간힘을 쓰듯 안주머니 속으로 다른 손을 비집어 넣는다.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고 초조하게 통신사의 로고가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뒤집힌 사다리꼴 모양의 패턴을 그린다. 통화기록을 열자 계속해서 부재중 전화의 뒤늦은 알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한다. 나는 그중 하나의 번호를 누른다. 거의 동시에 건너편에서 익숙하지만 결코 친숙해질 수 없는 목소리 하나가 거친 노성을 터트린다. 나는 그에게 대강의 사정을 전하다가 휴대전화를 든 손을 쭉 뻗어 흔든다. 다가오던 택시가 비상등을 점멸하며 내 앞에 선다.
문을 열고 낑낑거리며 희영을 태우는 나를, 택시기사는 룸미러로 바라만 본다. 특별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눈으로. 무관심하나 우리의 사정을 적잖이 궁금해하는 눈으로. 그러나 당신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사정으로도 엮이지 않겠다는 눈으로. 나는 택시기사에게 병원의 이름을 말한다. 그 사이에도 분명 위급해 보이는 숨소리를 터질 듯 헉헉거리는 희영을 향해 괜찮아요? 하는 맥없는 말로 다독이면서. 쿵쿵쿵. 안쪽에서 들리는 심장소리처럼 그녀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