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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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나는 짓눌려 있었어요. 눈을 감은채 바다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어요. 안과 밖의 감각이 서서하지만 분명히 둘로 나뉘는 걸 느꼈어요. 한없이 차갑고 둔한 감각과 외부의 침입에 응하듯 세포 하나하나에서부터 불꽃이 맹렬하게 피어나던 감각을. 숨이 차오르고 눈이 갑자기 뜨였을 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잔존하던 공기가 부르르 떨며 새어나가는 게 보였어요. 점처럼 작고 투명하던 기포들은 푸른 불덩이가 일렁이는 위를 향해 천천히 멀어졌어요. 그리고 차례로 부풀어 올랐죠. 그때부터였을까요? 막히던 숨이 오히려 차분해졌고, 나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해진 채로 무한히 멀어져 가던, 이제는 하나의 공간처럼 거대해져 버린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내려갈수록 빛을 잃어갔지만 극단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소리들이 나를 떠받치듯 감싸던 그 어두운 곳에서.
나는 눈을 떴고, 빈칸을 채우듯 오래된 장면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오버헤드 프로젝터로 투영한 필름처럼, 그 장면들은 얇고 반짝이는 무언가로 곱게 포장돼 있었어요. 군데군데 흐릿한 얼룩이 지문처럼 묻어있긴 했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었어요. 수년만에 만난 친구의 목소리가 바로 어제처럼 익숙한 감각으로, 나는 꽤 긴 시간, 그것들을 바라보았어요. 한 장씩, 한 장씩, 스테이지를 새로운 필름으로 바꾸며. 그리고 또 하나씩, 나는 휴대전화를 가득 채운 알림을 정리하듯, 그 기억들을 밀어 없앴어요. 혼란을 정돈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당신이 무대에서 멈추어 있던 그날처럼.
그곳은 푸르다 검어지는 심해처럼 무거웠어요. 작은 소리 하나도 바위처럼 거대해지는 곳에서 당신의 길고 매끈한 손은 뜨겁게 굳어가고 있었죠. 나는 뒤늦게 도착한 천정이 돔 형태로 높이 솟은 그 건물 밖에서 불안하게 넥타이를 만지고 있었어요. 밖에서도 느껴질 만큼 차가운 공기에 움찔 놀라며, 문 손잡이를 잡은 채 안을 살폈어요.
당신을 주시하던 시선들에 스민 의구심이 형태를 갖추어가는 걸, 때늦은 박수와 응원 속에서 나는 보았어요. 그러나 침묵은 단단했고, 화살비처럼 조롱과 냉소가 날아들기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당신을 비추던 곧고 압축된 빛줄기 속에서 당신의 하얗게 언 낯빛은 더욱 도드라졌어요. 생기를 거둔 손. 그랜드피아노와 자신, 그 사이 어딘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하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을 회색빛 눈동자. 길고 매끈한 현에서 반사된 빛이 아프게 객석을 찔러댔어요. 인력(引力)에 묶인 듯 서로를 놓아주지 않는 음표들 속에서 단 하나의 가쁜 음이 고요히 불거지는걸 나는 분명히 들었어요. 멈추었던 호흡이 매우 느리게 다시 뛰며 가속이 붙는 소리를. 그리고 당신은 가슴을 움켜쥐었죠. 소리가 증폭되는 구조를 타고 더 멀리, 선명하게 객석을 할퀴는 기침소리. 자갈처럼 불쑥 튀어 오르는 놀람과 경악. 당신이 쏟아지듯 쓰러진 무대를 사람들은 멀리서 두리번거렸어요. 뭐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 소란스러운 군중을 밀치며 나는 달려 나갔죠. 그러다 무언가에 걸려 몸이 기울었어요. 나를 내려다보던 시선과 가린 입을 기억해요. 하지만 도저히 가려지지 않던 웃음소리도 기억해요.
구급차 안에서, 당신은 곱게 놓여 있었습니다. 뿌리가 깨끗이 정돈된 꽃처럼 당신은 미동도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차가운 손을 양손으로 쥐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 그 손을 매만지며 한기를 가늠했습니다. 당신의 가슴은 오르내렸고, 코에서는 미약한 기운이 밀려 나왔지만 나는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었어요.
그날 오후, 나는 카페 테이블에 홀로 앉아 시끌벅적한 동네 아주머니 네 분의 수다를 듣고 있었지요. 가끔 귀를 막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한 오후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며 나는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3시 18분. 그리고 3월 18일. 토요일... 토요일이라니. 당신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라는 걸, 나는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알아차린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서둘러 카페를 정리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3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죠. 초청장에 쓰인 시작 시간은 4시 30분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겠지만 토요일 오후잖아요. 이미 터무니없다는 걸 받아들이고는 차라리 편안해졌어요. 정체가 심한 도로 위에서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늦은 걸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휴대전화로 오늘 당신이 연주한다고 했던 곡을 재생했어요. 이전에 당신이 해주었던 곡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당신에게 전할 말을 짚어나갔죠. 하지만 그때 준비했던 어떤 말도 들것에 누운 당신에게는 전할 수 없었어요. 그토록 완연한 단절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어요. 두렵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119 구급대원이 함께 구급차에 오르는 내게 희영 씨와 어떤 관계인지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고민 끝에 자신 없는 목소리로 친구,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요. 구급대원은 후송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다 내게 되물었어요. 그럼 보호자 연락처는 아십니까? 나는 휴대전화를 검색해서 성호 씨 번호를 알려줬어요. 구급대원은 그에게 전화했고 잠시 후 운전석의 구급대원에게 병원 이름 하나를 말했습니다.
도착했을 때 응급실 입구에는 성호 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호 씨는 구급차에서 함께 내리는 나를 놀란 듯 쳐다보다가 당신을 옮겨누인 이동식 병상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적잖이 덜그럭거리는 이동식 병상의 바퀴 소리가 멀어져 가는 걸 나는 아프게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 거리감이 부러진 갈비뼈처럼 욱신거렸습니다. 부러진 자리가 붙을 때까지 도리 없이 기다리는 방법뿐이라지요, 그 상처는. 숨을 평소의 반만 들이켜도 고인 눈물이 어쩔 수 없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고통 때문에, 시야가 자꾸만 흔들렸습니다. 똑바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어지럼증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빠를 따라 처음 올랐던 그 낚싯배의 출렁임처럼, 한번 시작된 어지럼증은 며칠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괜찮겠지요. 또 어떻게든 살아, 가겠지요. 그는 내가 할 수 없는 걸 해내는 사람이고, 나처럼 걱정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일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넘치는 사람이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