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63)

63.

by 작가 전우형

63.


그건, 어릴 때부터 내가 인이 박히도록 보아온 모습과 닮아있었어요. 지독하리만치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던 구조가. 그 가혹함이.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무너지지 않던 관계가. 엄마에게 도망치자고 소리치던 날이 떠올랐어요. 어깨에 학교가방을 메고, 도시락 가방을 한 손에 들고서, 나는 현관문을 나서다가 돌아섰어요. 그리고 시위하듯 말했죠.

엄마, 나랑 같이 가자. 우리, 이 집 떠나자. 이건 집도 아냐. 선생님이 그러던데, 한쪽만 힘든 건 가족이 아니래. 그런 가족은 어차피 오래 못 간데. 나는 엄마가 왜 아빠한테 기죽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제도, 어제의 어제도, 일주일 전에도 똑같이 고민해 봤는데, 모르겠어. 엄마가 대체 뭘 잘못한 거야? 결혼 전에 아빠한테 빚이라도 졌어? 뉴스에도 나오던 사기결혼 같은 거라도 당한 거야?

엄마는 쏘아붙이는 나를 말없이 바라봤어요. 엄마는 내 볼을 쓰다듬었고, 이제 막 흐르려던 눈물을 먼저 닦아냈어요. 엄마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어요. 오래전에 말을 잃은 사람처럼, ‘화’를 내는 기능이 고장 난 사람처럼 엄마는 묵묵히 그 순간을 견디기만 했어요.


중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둔 날이었을 거예요. 선생님은 졸업식 안내가 포함된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며 부모님 참석 여부를 확인받아 오라고 했어요. 나는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불참에 체크해서 냈어요. 그런데 졸업식날 아빠가 엄마와 함께 졸업식장에 나타난 거예요. 나는 믿을 수 없어 부모님들이 앉은 스탠드 쪽을 힐끔거렸죠. 졸업식이 끝나갈 때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선 곳으로 걸어 나왔어요. 나란히 앞에 선 엄마, 아빠를 향해 나는 인사했죠. 두 분이 함께 서 계신 건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어요. 떨떠름한 기분으로 인사를 마치고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어요.

아빠는 그런 우리를 못마땅하게 쳐다봤어요. 적잖이 귀찮아 보이는 얼굴이었어요. 대체 뭐가 불만이야?라는 말이 목젖 바로 아래까지 치솟았지만 그날은 졸업식이었어요. 학생과 선생님, 부모님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어요. 내가 부르르 떨며 주먹을 쥐자 엄마는 가만히 내 등을 쓰다듬었어요. 그리고 토닥토닥 두드렸어요. 나는 아빠를 쏘아보며, 엄마 귀에 대고 물었어요. 엄마,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온 거야? 그걸 쓸데없이 귀만 밝은 아빠가 못 들을 리 없었죠.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나요. 하지만.


내가 철없이 내뱉는 질문조차도 엄마에게 수모를 더할 뿐이라는 걸 깨달은 시점이 아마 그 졸업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나도 입을 다물었으니까요. 어떤 질문은 그 자체로 지독한 고통일 수 있단 걸 나는 어린아이처럼 우는 엄마를 보고서 알았어요.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혼란 투성이었어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야기처럼, 갑자기 시작되었고,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죠. 하지만 그 후로 어느 때고, 수시로, 나는 듣기 시작했어요. 엄마의 울음소리를.

속은 겨울호수처럼 차갑고 겉은 닿는 것을 모조리 태울만큼 뜨거운 꼬챙이들이 세포 하나하나를 꿰뚫고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새까맣게 탄 살갗 아래 드러난 속살을 얼음덩어리로 지지는 느낌 같달까. 조각난 어금니 사이로 세척수를 머금은 바람을 마구 쏘아대는 것처럼 진저리 나는 느낌이랄까. 처음이라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슬픔을 머금은 울음소리를 제대로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테니까. 지금껏 들은 울음소리는 기껏해야 자기 편할 대로 내질렀을 내 응어리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 느낌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분명히 각인됐어요. 어떤 울음은 협곡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야 해서 오래 걸리지만, 그렇게 터져 나온 울음은 산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무섭고 끝을 알 수 없다는 걸. 그런 울음은 맹수가 내뿜는 살기처럼 한 사람의 심령을 옭아매기도 한다는 걸.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한없이 고요했던 폭력의 구조로부터. 이상하게 포기가 되더라고요. 이대로는 엄마는 절대 여기서 도망치지 않겠구나. 그때부터 나는 이른 독립을 준비했어요. 엄마가 도망치지 못하는 건 아빠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눈 감을 때마다 떠오르던 엄마의 눈이, 확신을 심어주었어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거든요. 뜻 없이 나를 쳐다보던, 나를 보는 것만이 그 순간의 유일한 위안인 것처럼 절실하던 엄마의 흑갈색 눈동자가. 나는 그게 싫었어요. 죽도록 답답했어요.


물론, 그건 어쩌면 단순한 착각이었을지도 몰라요. 내가 당신을 보며 한순간 엄마를 떠올렸던 건. 어쩌면 희영 씨에게는 성호를 기다리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보석 같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를 잡아끈 건 희영 씨의 눈이었어요. 아주 오랜 시간 무언가를 견뎌온 사람의 눈. 헤아릴 수 없는 압력 속에서 점차 투명하고 단단해져 가는 그런 눈. 하지만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들을 그 속에 가두어두는지, 오히려 어떤 테두리 안에서만 자신은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을 가둔 껍질을 더욱 견고하게 담금질하는지, 나는 소스라칠 만큼 잘 알게 되었거든요. 어쩔 수 없이, 보기 싫어도 보아지고야 마는 그런 일들이, 내게는 늘 일어났어요. 그 느낌. 엄마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이상한 느낌. 나는 희영 씨를 볼 때마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거예요.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해 여름(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