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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Apr 08. 2023

언제 집에 가?

에세이

언제 집에 가?

아이의 물음을 들으며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아빠를 재촉했을 거라고. 내게 대답이 없자 아이는 연거푸 매달린다.

아빠, 집에 언제 갈 거냐고. 응? 이제 가자. 응?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묻는다.

아빠, 얼마나 남았어?

나는 대답한다.

이십 분쯤?

아이는 잠잠해진다. 그러나 곧 아이는 묻는다.

아빠, 언제쯤 도착해?

아마 열두 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

아이는 또 잠잠해진다. 그러나 곧 아이는 묻는다.

아빠, 아직 더 가야 해?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빠, 아직 더 가야 하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한숨이 터진다.

응.

아빠, 어지러워.

창문 열어.

드르륵, 창문이 내려가고 바람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창문을 닫는다. 다시 내린다. 바람이 터진다. 창문이 다시 닫힌다. 나는 노래를 튼다.

아빠, 그 노래 싫어.

나는 소리를 키운다.

아빠, 그 노래 싫다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신호 두 번. 신호 두 번만 더 받으면 집이다. 아이를 내려줄 수 있다. 나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목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주무른다. 그러다 음악 소리를 줄인다.


나는 아빠와 여행한 기억이 드물다. 어렸을 때 나는 멀미가 심했다고 들었다. 설을 앞둔 귀성길은 정체가 심했다. 히터 냄새를 참지 못했던 나는 늘 창문을 열고 거기에 코와 입을 갖다 대고 있었다. 아빠는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나는 삼양라면을 끓였다. 아이들을 위해 멸치칼국수를 끓였다. 막내는 육개장 사발면을 먹겠다고 했다.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칭얼대던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늦잠 자던 첫째 딸은 샤워하러 들어갔다. 나는 계란을 풀었다. 아내가 김치냉장고에서 2년 묵은 김치를 새로 꺼내 왔다.


오늘은 날이 꽤 추웠다. 꽃샘추위였다. 막내가 학교 학년 대표로 교육장배 육상대회를 출전해서 늦잠 잔 첫째는 내버려 두고 경기를 보러 다녀온 참이었다. 살집이 없어 추위를 곧잘 타는 막내는 대기열에 앉아서 반팔 차림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입고 있던 스웨터를 덮어주었다. 덕분에 멀리서도 아이가 어디 있는지 잘 알아볼 수 있었다. 경기는 예선 탈락으로 진작에 끝이 났지만 나머지 아이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남아 있었다. 언제 집에 가냐고 아이들이 보채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냈을 때 나는 문득 지쳐있단 걸 느꼈다. 오전 내내 떨어서 지쳤는지 아내는 이미 이불속으로 들어가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잠시 멍한 채로 앉았다. 특별히 뭔가를 보거나 찾지 않으면서 무심히 핸드폰에 떠오른 화면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보고 있는데 아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눕고, 아내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한주 내내 수백 킬로 거리를 오가며 수업하고 또 수업받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 연구 스케줄은 듣기에도 살인적이었다. 나라면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일정들을 아내는 뭉텅이로 쳐내며 버티고 있었다. 나는 잠든 아내를 바라보다가 곧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오후 4시가 넘어갈 즈음이었다.


책을 펼치고 앉자, 건넌방에서 첫째 아이의 동영상 강의 소리가 들렸다. 둘째, 셋째는 욕실에서 물놀이 중이었다. 아내는 먼저 일어나 작업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아내는 안방 컴퓨터를 켰다. 아내는 노래를 틀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프린트를 했고, 볼펜을 딸깍딸깍 거렸으며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중얼거리며 따라 읽기도 했다. 욕실에서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급기야 사나운 욕설이 들렸고 나는 무슨 일이기에 형제간에 욕을 하느냐고 꾸짖었다. 둘째는 불쾌한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그 아이는 내 질문의 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형제간에 그런 욕을 하냐고. 쳐다보는 아이를 향해, 나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만하고 나와.


책을 펴고 앉았는데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욕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내는 저녁으로 된장찌개를 끓일지를 물어왔다. 나는 저녁은 됐으니 아이들이나 차려주라고 했다. 아무것도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거실로 나온 아이들은 또 무언가를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조용히 하라며 아이들을 달랬다. 나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껴입고 양치질을 했다. 노트북과 책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휴대전화와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논길로 부러 골라 달리는데 농기계가 자주 보였다. 밭은 고운 황토로 고랑과 이랑을 만들었고 논은 바닥을 뒤집어엎었는지 고른 황무지처럼 보였다. 곧 저곳에도 농업용수가 채워지고 모가 심어지겠지. 내가 벼농사가 아직이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걸 듣고는 아내가 말하던 게 생각났다. 벼는 풀이야.


그래, 금방 자라긴 하더라.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며 거대한 바퀴에 흙을 잔뜩 묻힌 트랙터를 추월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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