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이별하고 좋은 것을 보는 습관을 기르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요즘은 그 주기가 더욱 짧아진 느낌이 든다. 매년 신기술이 등장하고 새로운 이론과 트렌드가 생겨난다. 인플루언서,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의 직업도 불과 3~4년 전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직업이다.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간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갈수록 무엇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후회하는 일이 많아진다. '지나간 인생'은 술자리의 주된 안주거리다. 지난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후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회한이 마음을 얼마나 오래 흐리게 만드는지가 다를 뿐이다.
내 인생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엇하나 자의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나를 눌러오기만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살면서 겪은 수많은 사건들 속에, 내 의견이 무시당했던 기억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두려워 양보하고 맞춰주기만 했던 지난 시절이 ‘한(恨)’으로 남아 인생을 무채색으로 덧칠한다. 하지만 아픈 기억과는 달리, 우리는 중요한 결정에 대한 의결권을 스스로 행사해왔다. 타인의 의견이나 당시의 상황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의사봉을 두드렸던 것은 언제나 바로 '나'였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다른 곳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이러한 본능의 작용이다. 이것으로 잠시 마음이 편할 수 있지만, 원인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사고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도적으로 살지 못했다는 자책과 실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삶을 남에게 맡겨왔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과연 그토록 양보하고 무시당하고, 나를 누른 채 살아왔을까?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며 살아왔을까? 현재의 나는 그토록 불만족스러운가? 차분히 자문하며 '생각의 회로'를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에 젖어들 때가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기인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어제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돌아갔더라면 지금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을 텐데’와 같은 생각들이다. 모임에 참가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면 당연히 피로감이 덜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언제나 후회로 연결된다. 후회는 좋은 기억을 지우고 나쁜 기억을 남기는 주범이다.
인간은 각자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동전을 그냥 보기도 하고 뒤집어 보기도 한다. 후회는 과거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불만족스럽고 나쁜 면들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당연하게도 그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긍정적 요소들은 의미가 퇴색된다. 자신의 선택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나의 선택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삶의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면 후회감은 자연스럽게 묻힌다. 편향을 벗어나 당시의 상황을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왜 내 뜻대로 살지 못했을까?' 이 물음은 최근 몇 년간 나 스스로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었다. 우울증으로 시름하며 모든 것을 부정하던 시절, 현재의 고통은 과거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삶은 모든 것이 비틀리고 어긋난 퍼즐 조각처럼 여겨졌다. 삶의 저변에는 원인모를 후회감이 깔려있었다. 사관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버텼던 것을 후회했고, 임관 5년 차에 전역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것을 후회했고, 아이를 세 명이나 낳은 것도 후회했다. 살아오면서 선택했던 모든 중요한 결정들을 부정했고 그 원인을 내 주위에 존재하는 사람과 환경으로 돌렸다. 그 안에는 당연히 ‘가족’도 있었다. 나는 그런 나를 더욱 용서하지 못했고 현재의 삶을 비참한 것으로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감정에 매몰되어,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하했다. 학급에서 발표도 못하던 내성적이었던 내가 많은 이들 앞에서 떨지 않고 브리핑할 수 있게 된 것, 아내와의 행복했던 연애와 결혼생활, 나에게 웃음과 삶의 의미를 선물해준 아이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는 동안 배운 업무추진과 인원관리 노하우, 책임의식과 근면 성실한 태도 같은 것들을 모두 인정하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눈물 속에 다시 과거를 펼쳐보기 전까지는 결코 떠올리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상처와 비난으로 인해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버린 기억들은 꺼내려고 해도 쉽게 꺼내지지 않는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좋았던 일들은 인생에서 완전히 퇴출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관점으로 자신의 선택을 바라보는가의 문제는 인생을 빚어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성공도 실패도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귀결된다. 내가 어떤 면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지, 후회만 남을지 결정된다. 어떤 강연을 들을 때, 연사의 외모에 집중하거나 말실수, 오탈자 등 트집잡기에 집중하다 보면 강연 내용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강연에서 무엇을 얻고 싶다면 연사에게 집중해야 한다.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한다면, 그 어떤 강연에서도 자신이 원했던 ‘하나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좋은 면에 집중하면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호감은 말투나 표정, 분위기 등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대방 또한 이것을 여러 경로로 느낀다. 상대로 하여금 본인조차 몰랐던 장점을 발굴해 줄 수도 있으며, 발전적인 관계의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인생을 불행한 과거로 만들 것인가? 만족할만한 현재로 만들 것인가? 인생의 그림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달려 있다.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불만족스러운 일들을 겪는다. 예측하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고, 술술 풀리던 일이 어그러지기는 일도 발생한다. 고통스러운 반전에 허물어져, 삶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나쁜 일을 더 오래, 유심히, 잘 기억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생존본능에 따라 진화적으로 뿌리내린 인간의 오래된 성향이다. 관점에 대한 고찰 없이 느껴지는 대로, 기억되는 대로 살다 보면, 나쁜 기억과 부정적 사고방식, 해소되지 않는 무거운 감정들 속에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연습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좋은 것을 보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일상 속에서 좋은 기억들이 많아지면 삶 저변에 행복감이 깔리고, 인생의 작물들이 풍요로워진다.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일상 속 보물찾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들과 같은 하루를 살아도 그 하루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실제로도 그들의 하루는 행복한 일들로 가득하다. 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인 세상을 살아간다.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실제의 세상도 달라진다.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감정도 달라진다. 감정이 선사하는 에너지가 나를 어떻게 움직이는 가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고, 미래도 변화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삶의 에너지는 내면으로부터 생성된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동기부여’의 본질이다. 좋은 것을 상상할 때 더 도전하고 싶고, 에너지도 끊어지지 않는다. 좋은 것에 집중하는 사고방식은 쉽게 정착되지 않는다. 연습을 통한 습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금방 뇌리에서 사라진다. 작은 노트와 펜을 갖고 다니며 오늘 있었던 좋은 일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편안한 시간에 5~10분 정도 메모를 보면서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 간단하고 별것 아닌 활동이 하루의 이미지를 변화시킨다. 하루가 얼마나 좋은 일로 가득 차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러한 행복감이 우리를 더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선순환의 동력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