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도 살피지 못한 채 '악수'만 반복하는구나
중앙일보 기사('20.9.1.)
대한 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의료) 정책 추진을 중단해 둔 상태"라는 정부의 주장에 "중단이 아닌 '유보'일 뿐이다"며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대전협은 미래 통합당 보건복지위 위원들과 간담회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건 간단하다. 정책의 원점 재논의"라며 "그것만 명문화된다면 대부분 전공의는 현장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31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 관련 "이미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고 교육부 정원 통보 등 의사 수 확대 정책의 추진을 중단해 둔 상태"라며 "코로나 19의 위기 극복 이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를 하자는 제안을 지속해서 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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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협이 원하는 것은 4대 의료정책에 대해 '원점 재논의'라는 문구를 명문화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현재 정책 추진은 중단한 상태며, 코로나 위기 극복 이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를 하자'라고 제안했다. 대전협에서는 이 두 가지는 문구의 차이가 있을 뿐 큰 차이가 없다면서도, '원점'이라는 단어가 명문화되지 않으면 진료거부행위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그들이 왜 '원점'에 집착하는 걸까?
* 원점 : 시작이 되는 출발점 또는 근본이 되는 본래의 점(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대전협에서 요구하는 '원점 재논의' 명문화는, 의대 정원 확대 등 4대 의료정책을 '최초의 백지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논의에 참여하더라도 의대 정원을 증가시키는 문제를 백지화시킬 자신이 없기에 일단 백지상태를 명문화시킨 후, 더 이상의 진행을 무조건적인 반대로 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의협, 대전협은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지만 다른 의사단체에서는 오히려 정원 증가폭은 부족하며 공공 의대 규모 역시 더 커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Zfhw03LQ_d4
대전협의 이러한 요구는 도가 지나치다. 국민은 의사협회 및 대전협에 의료정책을 맡긴 적이 없다. 의료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국회나 정부에서 의사들의 의견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의사들의 입맛대로 정책이 결정되어야 할 의무는 없다.
앞서 정부에서는 의료계 각 단체와 정책 논의를 지속해 왔다고 한다. 의료계에 '의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의사들이 빠져있었다는 억울함이 감정적으로 이번 사태를 이어가는 원인으로 보인다. '왜' 의사들이 정책 논의 과정에서 한차례 배제되었을까? 현재 한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의견만을 고수하는 대전협의 모습을 보며 그 이유를 추론해본다. 대화가 통할 때 협상도 가능하다. 협상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의견을 교환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합의가 도출되려면 '대화'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해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고 반대만 한다면 이것은 합의 의사가 없는 것과 같다. 그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는 의사단체의 대표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양새다. 의협 대표가 임시 협상 테이블에 나왔고, 그와 1차적 합의를 이루었음에도 그 합의안을 내부에서 다시 반대하고 있다. 이는 의협 대표가 협상 파트너 자격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반정부적 입장을 대놓고 보이며 매우 강한 정치색을 드러내어 왔다.
정부에서 '의사'단체와 협상을 서두르고, 국무총리, 국회 복지정책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다 갔다는 것은, 정부에서도 최선의 양보를 한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협상할 생각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같다. 자신의 요구사항만 주장하는 일부 이익집단에 정부가 협상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 애석하다. '원점', '철회'는 의사단체가 요구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책을 중단한 상태에서 재논의하자고 제의했다. 다른 의료 대표들과 국민들의 의견이 이번 정책의 완전한 철회를 향한다면 정책이 '원점'으로 전면 백지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주장만으로 진행되던 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백지상태에 '방점'을 찍고 시작하자는 의사들의 주장이 상식선을 넘어섰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에, 현재의 주장은 의사들의 '생떼'다. 정부는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행위다.
확실한 명제는, 의료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이고, 의료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의사들의 '허락'을 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사 간 정책에 대한 이견이 발생했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의료인과 국민을 설득해서, 그들이 원하는 '원점'을 도출해내는 것이 최선이다. 의사의 주장과 의견을 듣더라도, 다른 이해당사자나 국민이 찬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집단 휴진으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며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독과점'이 된 '민간'의사이기에 집단행동으로 병원을 벗어나는 것도 자유겠지만 그 모습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우호적 여론을 바라는 것은 오만일 뿐이다.
혹시 정말 향간에 떠도는 사진에서처럼, 현직 대통령을 무너트리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로 현재의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면...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검찰에 이어 정치의사라니. 의사들의 밑바닥을 너무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뿌린 설문내용이 더 충격적이다.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 국민의 존경을 듬뿍 받아야 할 훌륭한 의사분들께서, 어째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의 내용을 마음에서 내팽개치고 진료거부에 나선 것일까. 환자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해줄 의사도 고르지도 못하도록 모두 자리를 비운 걸까.
나는 입시지상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매년 전교 1등'이라는 문구부터 반감이 든다. 순수하게 학문과 의학에 매진해오신 분들이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트려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아름다운 전통 이어받자"와 같이 격이 떨어지는 말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원래 그랬던 걸까, 아니면 의사가 되면 변하는 걸까. 의사가 정치행위를 하는 것에 관여할 이유도 없지만, 적어도 의사가 정치에 소질이 없어 보이긴 한다. 우물 속 세상에 갇혀 국민정서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설득능력도 없이 반대만 부르짖는 일부 집단의 의견에 동조할 이유는 없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 하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류,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정당, 정파,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겠다고 되어있지만, 의사도 인간이고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초심'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모든 의사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기대해봐야 남는 것은 실망뿐이다. 선서문을 입으로나 읊었지 마음으로 읽었을까. 다만, 정치를 하더라도 수준은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트려서 감옥으로 보내자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 지지율이 떨어져서 탄핵당하고 감옥으로 갔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성적 1등 하기 위해 사회에 관심을 끄고 살아서 몰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생명을 돌보는 의사분들이, 정치색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린 분을 협회 대표로 뽑았다는 것도 안타깝다. 정권타도만을 외치는 사람이 대표인 집단과 정부가 건전한 논의가 가능할 리 없다. 의사협회의 목소리가 정책 협의 과정에서 배제되어온 이유를 스스로 성찰해볼 시점이다.
'벽'과 협상하는 사람은 없다.
기왕 정치를 제대로 할 거면, 정치공부도 하고, 국민정서 파악 노력도 기울이면서 정치하시기를 조언드린다. 이번 집단행동에서 과연 의사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4대 의료정책을 재논의해보려다 최초에 의사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던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는 결과만 맞이하지 않을까? 이번 사태 이후 민간의사의 집단휴진을 대비해 공공의료인력을 확충하자는 의견에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여론변화에 대한 현실감각을 잃은채로는, 의사분들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시길 바란다. 가다가 아니 감은 가지 않는 것만 못하니. 의사'만' 행복한 사회를 원하지는 않지만, 의사'도'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의대생들이나, 전공의 중 피해를 보지 않고 사태가 잘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두가 선의로 나선 것은 아닐지 몰라도, 집단행동에 어쩔 수 없이 동참했던 인원들도 적지 않았을 거라 본다.
기피과 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수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만큼 이번 논의를 통해 건설적인 합의가 도출되는 것이 이번 집단휴진 사태로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도의는 행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련의들의 가혹한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나 역시 한주에 110시간 가까이를 일했던 시절이 있었고, 매일같이 태세를 유지하고 언제 불려 갈지 모르는 삶을 살아보았다. 극심한 노동과 자유의 억압은 심신을 피폐하게 함을 여실히 느꼈다. 명문화된 수련의의 주당 근무시간 88시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그 이상을 근무하는 현실이 존재할 것이다.
의사도 '워라벨'은 필요하다고 본다. 병원 경영 상 전문의를 많이 고용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전공의들을 최대한 활용한다고도 들었다. 수련의라고 해서 노동환경이 보장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버텨야만 하는 의료시스템 상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수정해나가는 것에 적극 찬성이다. 현재 많이 치솟은 전문의 임금을 조정해서 전문의를 병원에서 더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 물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의사 내부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면 어쩔 수 없을것이다.
다만 국민의 생명줄을 쥔 의사이고, 의료기술의 전문가라고 해서 정부 정책의 무조건 철회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마지노선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이의제기는 개인의 자유지만, 코로나로 인한 국가위기에 집단 휴진을 지속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무리 전문가로서 맞는 말을 해도 국민들에게 바로 들리기는 힘들 것이다. 일단 현장으로 돌아가고, 국민들의 마음을 보살피며 설득해 나가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