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양보는 안된다.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에 반대한다.

by 작가 전우형

의협 대표와 정부여당, 보건복지부와의 합의를 거부하는 여타의 의사들, 진료 복귀를 결정하고 현 집행부가 사퇴하자 또 다른 집행부가 만들어져 진료거부를 논의하는 전대협, 제차 기한을 연장하고 재접수 기회를 주었음에도 의사국가면허시험을 접수하지 않은 의대생, 그리고 그러한 의대생 국시 거부 구제를 정부의 책임이라 주장하는 의협. 이 도돌이표 같은 의사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과거 정치풍자만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의사 집단을 대표하는 협상 파트너는 없는 것 같다. 자신들이 뽑은 대표가 이루어낸 합의라면, 설사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의 올바른 자세다. 따르지 않는 의사협회나, 진료 복귀를 결정한 집행부가 사퇴하고, 다시금 그것에 반발하는 새로운 집행부가 만들어지는 전공의 단체는 솔직히 실망이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며 진료거부를 이어가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협상 파트너로서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지 증명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구제하라며 또다시 집단행동을 입에 담고 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합의문 또한 효력이 없다는 것이 의협의 주장이다. 그동안 제자들을 선동해왔던 의대 교수들까지 나서서 의대생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진료현장을 떠날 것이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이 와중에 의대생들은 자신들은 구제를 요청한 적 없다며 분해한다. 참으로 '촌극'이 따로 없다. 정부가 정말 국시 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구제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왔는지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1. 국시는 누가 거부했는가?


정부에서 의대생들에게 시험 취소해달라고 했는가? 국회에서 국시 보지 말라고 뜯어말렸는가? 국민들이 의대생들에게 지금 시험 볼 때가 아니라며 집단행동에 동참해 악덕 의료정책 중단해달라고 부탁했는가? 누구도 그런 부탁, 강요, 종용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모두가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달라고 부탁하고 달래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시 거부를 유지해온 결정은 의대생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만약 누군가 그들을 강요하거나 종용했다면 그것은 집단 내부 여론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의대생들을 설득하고 구제할 의무도 그들에게 있다.



2. 의대생들을 구제하고자 정부에서 노력하지 않았는가?


정부는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수 차례 구제책을 제안했다.


1. 9월 1일부터 시작 예정이었던 국시를 일주일 미뤄 9월 8일로 조정했다.

2. 9월 4일까지였던 접수기한도 9월 6일까지 연장해주었다.

3. 강요에 의한 국시 취소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접수를 취소한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연락도 돌렸다. 강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국시 접수 취소를 취하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정도로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였음에도 신청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의대생들이 국시 치를 마음이 없음을 확고히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3. 구제 노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인가?


정부는 국시 접수를 취소한 의대생들이 재차 접수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했고, 또한 제안했다. 이것을 거부하고 있는 쪽은 의대생들이다. 기한을 연장해도 신청하지 않는 의대생들을 정부에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국시원에서 의대생 개인을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며 시험 응시를 애원이라도 해야 하는가? 현재 의대생들을 설득해서 시험을 치르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판으로 끌어들였던 의협과 전공의 선배 의사들의 몫이다.



4. 정부가 의대생 구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가능한가?


이미 이들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정부는 이들에게 잡으라고 로프를 던지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뛰어내린 의대생들이 잡는 것을 거부하고 그대로 떨어지기를 원했다. 구제는 스스로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강제로 먹게 할 수는 없다. 시험 볼 의지가 없는 사람을 정부도 구해낼 방법은 없다.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대생들이 구제마저 거부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게 떠밀면서 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진료거부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에 대해 그들의 상식을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5. 만약 뒤늦게라도 시험 응시 의사를 밝힌다면 국가에서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가?


의협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국시를 취소한 사람도 있지만 응시를 원하고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다. 더불어 뻗은 손을 발로 차 버린 쪽은 의대생이다. 이미 그들은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정부가 재차 손을 뻗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이십 대 중반이다. 그 나이에 이미 아이 가진 부모가 된 사람들도 많다. 어린 마음에 실수했다고 이해해줄 나이는 지났다. 성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의사로 국시 거부를 선택했다면 그들의 책임은 1년 유급되어 내년에 응시하는 것이다. 그 책임을 정부에게 묻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도 안되며, 선례를 만들어서도 안된다. 스스로 시험을 포기한 사람에게 국가가 응시기회를 다시 준 적은 없다. 다른 국가고시 응시자들이 시험을 취소했다가, 시험 시작 후 마음이 바뀌었다며 응시하고 싶다고 했을 때 허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시험 응시는 각자의 선택이며, 미응시의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 현 정부는 '독재'정부가 아니기에 강제로 시험을 포기시킬 수도 없고, 강제로 시험을 응시하게 할 수도 없다. 정부가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아직 의사조차 되지 않은 의대생들에게 강력한 특권의식을 심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더 이상의 구제 노력은, 정부가 의대생을 특권층으로 여긴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것과 같다. 의대생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과도한 특혜가 제공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기회는 공평해야 하며, 국가고시를 원하는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기회는 언제나 시간과 함께한다. 스스로 시험을 포기한 사람을 구제해야 할 어떤 의무도 정부에게는 없다.


국민들은 구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국시 접수를 취소한 의대생에 대한 구제를 반대한다'는 국민 청원에 대한 동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현 상황에서 정부차원의 부당한 구제행위가 더 강구된다면 국민의 뜻을 짓밟는 일이며, 의대생을 제외한 다른 국민들을 역차별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한차례 의사 집단에 백기 투항했다. 이미 국민들의 성토는 이어지고 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까지 '억지 구제'해서는 안된다. 국시 거부는 의대생들이 철회한다고 해결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스스로 시험을 거부한 시점에, 칼자루는 정부에게 넘어왔다. 이제는 그들이 철회의사를 밝히든, 밝히지 않든 정부는 더 이상 흔들리거나 특권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시험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더 이상의 국시 기회는 부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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